알레르기 증상이 생겼다. 일하고 있던 어느 날 느닷없이 생긴 증상이었다. 초반에는 모기에 물렸을 때처럼 몇 개의 붉은 반점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만을 반복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겨 병원에 가길 미루고 미루다 한 달이 돼서야 진료를 받았다. 약을 처방받은 이후에도 심각성은 없었다. 계속 약을 먹다 보면 나아지겠지 싶었다. 실제로 완전히 나았구나 싶었던 적도 한번 있긴 했다. 하지만 아주 잠깐이었을 뿐, 증상은 오랫동안 지속됐고 갈수록 심해졌다. 알레르기 염증으로 기도가 막혀 숨쉬기 곤란한 상황까지 갔을 때는 건강을 돌보기 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병원에서는 일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이니 일을 안 하면 금세 좋아질 거라고 했다. 근데 전혀 아니었다. 기도가 막힐 정도까진 아니어도 알레르기 증상이 온몸을 뒤덮어 급히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아야 하는 날이 거듭되었다. 운동을 해봐도 소용이 없었다. 운동을 너무 심하게 해서 그런가 싶어 운동을 줄여 보기도 했다. 어떤 시도를 하든 알레르기 증상은 꾸준히 계속되었다. 답답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거야!
알레르기의 발병원인을 알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웠다. 5년 동안 병원을 매월, 어떨 때는 매주 다니고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수치로 증명되지 않는 알레르기 같은 병은 의사에게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의사는 5∼10분 정도의 짧은 시간 안에 몇 개의 문답으로 내 상태를 가늠할 뿐이다. 내 상태는 내가 많이 알고, 의학지식은 의사가 더 많이 안다. 그러면? 내가 의학지식을 배워야겠구나! 그렇게 동의보감 세미나를 찾아갔다. 자기소개 시간에 알레르기 증상 때문에 고민이라고 했더니, 한 사람이 말했다. “수승화강이 안 되는 거네요.” 듣고 있던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뭐가 문제인지 알 것 같다는 표정을 지었다. 5년 넘게 병원을 다녀도 알 수 없었던 알레르기 발병원인을 이들은 단박에 안다고? 대체 ‘수승화강’이 뭐길래?
수승화강과 음허화동
거듭 말하지만, 양생의 핵심은 수승화강이다. 신장의 물은 위로 올라가고 심장의 불은 아래로 내려가면 된다. 위아래가 잘 순환하면 몸은 대체로 항상성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물이 부족하고 불이 치성하면 순환에 치명적인 문제가 생긴다. 이런 상태를 ‘음허화동陰虛火動’이라고 부른다. 「동의보감」에서 가장 심각하게 거론되는 증상이다. 지구가 팍팍해지는 만큼 현대인의 몸 역시 ‘사막화’되고 있다. (고미숙, 『바보야, 문제는 돈이 아니라니까』, 북드라망, 2017, 221쪽)
수승화강(水升火降)은 말 그대로 ‘물은 올라가고 불은 내려간다’는 뜻이다. 몸에서 불을 주관하는 건 심장이고, 물을 주관하는 건 신장이다. 심장의 불을 ‘군화’라고 부르는데, 이 군화는 물이 있어야 혈을 순환시켜 기초대사를 유지시킬 수 있다. 마찬가지로 전신의 수분대사를 관장하는 신장 역시 불기운을 빌려 물을 돌린다. 그러니까 “신장의 물은 위로 올라가서 연료가 되어 주고, 심장의 불은 그 연료들을 데리고 아래로 내려와야”(고미숙,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그린비, 2011, 249쪽)하는 것이다. 우리 몸속에서 물과 불이 막힘없이 ‘순환’하기만 해도 많은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몸은 대부분 화(火)가 치성하기 때문에 수승화강을 지키는 게 참 쉽지 않다. 사람은 기초대사를 유지하기 위해서만 살지 않는다. 오랜 시간 생각하고 이리저리 몸을 쓰며 일상생활을 영위하는데도 에너지가 필요한데, 이 에너지를 ‘상화’라는 불기운이 만든다. 심장의 군화에다 간과 신장을 오가는 상화까지 몸에 지니고 있으니, 불기운을 다스리지 못하면 물은 점점 고갈된다. 물의 제어를 벗어난 불이 제멋대로 날뛸 때 몸 이곳저곳에 병이 생긴다. 인체의 물은 음양 중 음에 속하고, 한의학적으로 혈액, 정액, 골수, 눈물, 침 등을 말한다. 이런 분비물들이 부족해서 몸에 열이 나는 상태가 ‘음허화동’인 것이다. 열이 가득한 신체에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병증이 ‘불면증’이다.
지인의 손에 이끌려 용하다는 의원을 찾아가니, 잠을 푹 자야 알레르기 증상도 낫는다고 했다. 내게 불면증은 너무나도 오랜 숙제이자 난제다. 내 기억이 시작되는 유년기 시절부터 지금까지 잠을 푹 잤다고 느낀 날은 거의 없다. 밤에 잠을 자려고 누워도 잠이 오기는커녕 정신이 더 또렷해진다. 며칠씩 고민했던 일을 해결할 만한 아이디어가 갑자기 떠올라 다시 책상 앞에 앉을 때도 많았다. 몇 시간씩 누워있어도 잠은 못 들고 생각만 가득한 탓이다. 잠을 제대로 못 자니 낮에도 몸은 무겁기만 하고 기력이 없다. 그러던 중에 알레르기 증상도 시작됐다. 내 몸은 이미 음허화동의 상태였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막막했던 이 악순환의 복잡한 고리를 ‘수승화강’으로 끊어낼 수 있지 않을까.
맞불 놓지 않기
내 몸이 음허화동의 상태가 된 건 필연적이었다. 태생적으로 가뜩이나 몸에 열이 많은데, 거기에 불을 지르는 생활을 반복했다. 무엇보다 밤을 새 가며 ‘열심’히 일했다. 일하는 게 즐겁기도 했지만, 어디서든 인정받으려면 남들보다 더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물론 노는 것도 ‘열심’히 했다. 대부분의 시간을 일로 보낸 건 스스로의 선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날 위로해줄 무언가가 항상 필요했다. 일하고 남은 시간을 열심히 일한 내게 주어진 보상처럼 여기며, 친구들을 만나 맛집을 찾아다니고 취미를 함께 하는 모임에 나가기도 하고 헬스장에 가서 운동도 했다. 그런데 이게 다 ‘심장에 열 받게 하는’ 일이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하루 24시간 동안 쉼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일상이었다. 항상 무언가 열심히 하고 있는데, 찬찬히 들여다보면 참 이상한 게 많다. 맛집을 찾아가 잔뜩 먹고 다시 운동하고, 일한다고 의자 앞에만 앉아있으니 건강이 걱정돼서 다시 헬스장을 등록한다. 밤늦게까지 야식을 먹고 술까지 마신 후 다시 소화제나 숙취해소제를 먹는 건 거의 하나의 코스가 됐다. 그렇게 다음 날이 걱정되면 그냥 안 먹으면 되는데, 그게 어렵다. 그래서 일하고 먹고 마시는 걸 양껏 한 다음 신체에 입힌 피해를 보상하기 위해 운동하거나 약을 먹는다. 화에 화로 대응하는 맞불작전인데, 몸에는 치명타다.
맞불작전은 큰 산불처럼 물로 쉽게 끌 수 없는 거센 불길을 잡을 때나 쓰는 방법이다. 자칫 맞불을 잘못 놓으면 원래의 불을 진화하는 게 아니라 또 다른 피해를 낳을 수도 있다. 몸에서 맞불작전을 벌일 만큼 과하게 불을 지르니, 몸을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시작한 운동은 오히려 더 피로한 몸을 만들고 말았다. 피곤하고 무거운 몸인데, 계속 불타고 있으니 잠들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잠들기 위해서라도 몸속 불은 절대 키우면 안 된다. 키우더라도 신장의 물로 조절할 수 있을 만큼이어야 한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지향하는 삶이 ‘미니멀 라이프(Minimal Life)’다. 불필요한 일이나 물건을 줄여 단순한 삶을 추구하는 생활방식을 말하는데, 한마디로 삶에 ‘맞불을 놓지 않는 것’이다. 단지 하고 싶은 일을 참고 가진 걸 많이 버린다고 해서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다. 내 삶에 중심적인 것과 부차적인 것, 필요한 것과 욕심인 것을 구분하는 안목을 갖추고, 내 몸과 여건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필요한 일들을 해나가겠다고 결단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야만 음허화동의 신체에서 수승화강이 잘되는 신체로 탈바꿈할 수 있다.
마음의 불 끄기
오랫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일하는데 쏟아왔으니, 일을 관둔 뒤부터는 자연스럽게 삶이 단순해지고 그만큼 몸의 불기운도 잦아들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알레르기 증상은 여전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운동을 너무 열심히 하다가 고관절까지 다치고 말았다. 그때 깨달았다. ‘일’이 문제가 아니었다는 걸. 진짜 문제는 무얼 하든 몸에 불을 지르는 내 ‘습관’이었다.
몸을 빨리 낫게 해서 다시 취직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적지 않은 나이에 취직이 어렵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그래서 일을 관두고도 열심히 살았다. 운동을 하건, 책을 읽건, 사람들과 만나 시간을 보내건 간에 몸에 불을 지르는 생활을 계속했던 것이다. '열심'은 내가 어떤 상황과 조건에 있느냐에 관계없이 목표만을 바라보고 달려가는 마음이다. 어떻게든 빨리 나아서 다시 일을 해야 한다는 마음이 날 더 긴장시키고 한시도 쉬지 못하게 만들었다. 마음이 더욱더 심장에 불을 지른 격이다.
마음이 달라지지 않는데 삶이 바뀔 리 없다. 혹여나 마음은 그대로인데 보이는 모습이 달라졌다면, 또 다른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을 뿐이다. 수승화강을 이루려면 ‘목표’라는 마음의 불도 꺼야 한다. 인생에 정답이 있다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삶을 즐길 수 있다. 지금까지 목표를 위해 한없이 달리기만 했다면,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르자. 내가 어떤 목표를 향해 살고 있는지, 그게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혹여나 내가 지금 처한 상황이나 조건을 무시한 채로 달려만 가고 있는 건 아닌지 세밀하게 살펴보자. 그래야만 심장의 불을 끌 수 있고 알레르기 같은 만성질환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수승화강의 신체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