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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녕 Aug 30. 2021

항상 부족한 돈, 언제쯤 만족할까

돈 쓸 때는 브리콜뢰르처럼

돈 쓸 때는 브리콜뢰르처럼

하루를 일, 일, 일로만 채우던 시절, 한 친구가 물었다. 매일 그렇게 일만 하면 돈은 어디에 쓰냐고. 대답하기 참 난감했다. 돈을 쓸 시간이 있고 없고를 떠나 돈은 항상 부족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 번도 내가 돈을 어떻게 쓰는지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내 몸과 마음을 다 갈아 넣어 번 돈을 너무나 쉽게 쓰고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제야 돈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따져봤다. 빚을 갚는 것 이외에 크게 나가는 돈은 주로 옷 쇼핑이었다. 회사에서는 정장을 입어야 했기에 정장을 사는데 꽤 많은 돈을 들였고, 그에 못지않게 평상복도 꾸준히 사서 입었다. '옷은 많아도 막상 외출하려면 입고 나갈 옷이 없다'는 국민적 룰(?)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소비패턴을 살펴본 날, 처음으로 이 룰에 의심을 품었다. ‘이제까지 산 옷만 해도 엄청 많을 텐데, 그 옷들은 다 어쩌고 매번 새로운 옷을 사는 거지?’


    한 가지 재밌는 실험을 하기로 했다. 계절마다 입는 옷이 다를 테니, 실험기간은 일 년. 이 기간 동안 옷을 절대 사지 않고 가지고 있는 옷으로만 생활하기. 실험의 목적은 정말 입을 옷이 없는 건지, 아니면 잘못된 느낌만으로 무분별하게 쇼핑하는 건지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일 년을 보냈다. 실험을 끝내고 내린 결론은 옷은 너무나 차고 넘친다는 것. 단지 조금 불편한 건 그 순간 가장 입고 싶은, 마음에 쏙 드는 패션 스타일대로는 입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매번 가장 유행하고 상황에 딱 들어맞는 옷을 입고 싶어 하는 게 문제였다. 돈을 쓰고 싶은 잦은 유혹들은 매번 도처에 널려있었지만, 정말 돈을 쓸 뻔한 고비가 딱 두 번 있었다. 프랑스로 여행 갈 때, 눈에 띄고 예쁘면서도 한국적인 옷을 입고 싶었다(그 당시 개량한복이 유행이었다). 잠시 테니스를 배울 때는 윔블던 대회에 나오는 테니스 선수들이 입는 멋들어진 옷과 테니스화가 필요했다(고 생각했다). 운동할 때는 뭐니 뭐니 해도 기능성 옷을 입어줘야 하지 않나. 하지만 실험의 성공을 위해 꾹 참았다. 다 지나고 보니 매 상황마다 가장 들어맞으면서도 내 맘에 쏙 드는 최고의 옷을 입으려는 욕심만 내려놓는다면, 옷을 사지 않는 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차선으로 선택할 옷은 차고 넘쳤기 때문이다.



남이 좋다는 물건 사려니 매번 부족한 돈


옷뿐만 아니라 다른 데서 돈을 쓸 때도 똑같다. 이사를 가면 그 집 그대로 적응해서 살지 않는다. 전등부터 벽지까지 몽땅 교체하기도 하고, 북유럽 풍으로 인테리어를 했다가 레트로 감성으로 바꿨다가 모던한 인테리어를 추구하기도 한다. 핸드폰은 이제 2년마다 바꾸는 게 당연하게 여겨질 정도다. 항상 최고로 마음에 들도록 집을 꾸미고 필요한 용품들을 갖추는 방법은 간단하다. 매번 사면된다. 내 마음에 쏙 들도록 완벽하게 구현된 용품으로.


    어찌 보면 당연하다. ‘최고’라는 기준은 결국 트렌드고, 물건을 팔고 싶은 기업은 자신의 판매 분야에서 자꾸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낸다. 돈을 벌려면 자꾸 전보다 더 좋은 것, 더 새로운 것을 만들어 팔아야 하지 않겠나.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아, 요즘 대세는 저거구나’라고 느끼도록 연예인들의 일상생활을 보여주며 한강뷰 집, 요리할 때 쓰는 편리한 조리기구, 새로운 생활용품들을 거침없이, 그러나 오래전부터 계속 써왔던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노출시킨다. 이 또한 돈을 벌기 위해서다. 1년의 실험을 하기 전까진 난 유행에 민감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매번 최고로 꾸미기 위해 새로운 옷을 사는 것 자체가 이미 유행에 휩쓸려가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운동복만 해도 꼭 레깅스여야 할 필요가 없는데도 굳이 레깅스를 몇 벌이나 사지 않았던가.


    계속 새로운 옷을 사다 보니 쌓여가는 옷을 위한 별도의 방이 필요하고, 늘어나는 책 때문에 서재가 필요하다. 주방에도 ‘에어프라이기’처럼 편리한 조리기구들을 이것저것 놓아야 하니 집은 점점 커져야 한다. 돈을 주고 산 물건들의 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 몇 배나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하는 셈이다. 그래서 돈은 벌어도 벌어도 항상 모자라다.



    결국 미디어가 만드는 기준, 남이 좋다고 하는 기준에 맞춰 물건을 사는 한, 우린 죽을 때까지 ‘돈! 돈! 돈!’을 외치며 살 수밖에 없다. 그럼, 내 기준에 맞춰 물건을 사는 게 답일까. 이미 미디어가 만드는 기준이 내 기준이라고 믿고 사는 사람들에게 내 기준에 맞춰 물건을 산다고 뭐가 달라질까. 지금도 그들은 스스로의 기준을 두고 나름 합리적인 소비를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살고 있지 않을까. 그럼 무조건 아껴 쓰는 건? 사고 싶은 게 있어도 꾹꾹 참는 사람들은 자신이 나중의 행복을 위해 지금을 희생한다고 느낀다. 정말 희생만이 답일까.



가진 걸 최대한 활용하는 '브리콜뢰르'


오늘날 ‘브리콜뢰르’(bricoleur)는 아무것이나 주어진 도구를 써서 자기 손으로 무엇을 만드는 사람을 장인에 대비해서 가리키는 말이다. (…) 이 ‘손재주꾼’은 여러 가지 일을 할 수가 있다. 그러나 그는 엔지니어와는 달라서 그 일의 목적에 맞게 고안되고 마련된 연장이나 재료가 있고 없고에 크게 좌우되지 않는다. 그가 사용하는 재료의 세계는 한정되어 있어서 ‘손쉽게 갖고 있는 것’으로 하는 게 승부의 원칙이다. (레비 스트로스, 『야생의 사고』, 안정남 옮김, 한길사, 2017, 70∼71쪽)


    여기 다른 유형의 사람이 있다. 그는 ‘브리콜뢰르’라고 불린다. “공이 튕겨서 돌아온다든가, 개가 길을 잃는다든가, 말이 장애물을 피하기 위해 직선에서 벗어나는 등의 우발적인 움직임”(같은 책, 69~70쪽)을 일컫는 ‘브리콜레’(bricoler)라는 말에서 파생한 용어다. 우리말로는 ‘손재주꾼’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들의 활동은 ‘브리콜라주’(bricolage)라고 부른다. 그들이 일을 하는 방식은 독특하다.


    하나의 작품을 만들 때, 엔지니어는 그들이 머릿속으로 예상하기에 가장 적합한 도구와 재료를 구해서 최고의 작품을 만드는데 온 힘을 기울인다. 예전보다 더 나은 작품, 다른 작품과 비교해도 우월한 작품, 또는 머릿속에서 그린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작품을 만드는 게 목표다. 그에 비해 브리콜뢰르에게는 가장 적합한 도구와 재료라는 게 딱히 없다. 그들은 먼저 자신이 가진 도구와 재료를 살펴본다.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작품의 의미와 기능을 구현하기 위해 가지고 있는 도구와 재료 중 어떤 것들을 사용할지 꼼꼼히 따진다. 가지고 있는 것들을 최대한 활용해서 작품을 만들다 보니, 그들은 하나의 이상적인 작품을 염두에 두고 작업할 수 없다. 하지만 머릿속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자신만의 새로운 작품을 내놓는다. 최고에 비해 조악할 수는 있지만, 다양하고도 예상을 넘어서는 작품이 바로 '브리콜라주'다.


    우리가 물건을 사기 위해 돈을 쓰는 방식은 엔지니어에 가깝다. 지금 이 순간 최고의 물건을 사고 싶어 한다. 내가 원하는, 그러니까 딱 맞는 색상, 크기, 감촉, 기능 등을 갖고 있으면서 유행에도 뒤처지지 않는 물건은 돈을 쓰지 않고는 절대 가질 수 없다. 브리콜뢰르라면? 어떤 물건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집에 있는 모든 물건들을 검토하겠지. 그 물건들이 도구이자 재료다. 내 마음에 쏙 드는 걸 만들진 못하겠지만, 그들은 우연이 만들어낸 모습을 즐긴다. 최고지만 예상되는 물건보다는, 미흡하지만 상상치도 못한 새로운 물건이 그들에게는 더 흥미롭고 값지다. 그래서 그들은 필요한 물건을 만드는데 많은 돈을 쓰지 않는다.



최소한의 돈으로 나만의 물건 탄생


브리콜뢰르처럼 사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이 우리 가족 중에는 엄마가 있었다. 엄마는 내가 어렸을 적부터 뭐하나 허투루 버리신 적이 없다. 내가 초등학교 때 사용했던 책장과 책상은 변신에 변신을 거듭한 끝에 지금은 낡은 부분은 떼어 내고 다른 널빤지와 합쳐져 거실 한편에 자리한 꽤 그럴듯한 펜트리가 되었다. 펜트리를 볼 때마다 자신만의 저장창고라고 하시면서 엄청 뿌듯해하신다. 우유를 담아두는 플라스틱 박스들도 현관문 바로 옆에 가지런히 쌓아서 신발장으로 만드셨다. 어떨 때는 옷을 개어서 넣어두는 선반으로 쓰기도 했다(우리는 박스로 만든 옷장을 ‘우유장’이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이젠 버려도 된다고, 좋은 거 하나 사자고 얘기할 때마다 엄마는 이렇게 대답하신다. “쓸 수 있는데 왜 버려!” 엄마의 쓸 수 있는 범위는 무궁무진하다. 책장이나 책상이 제 역할을 못해도, 널빤지 하나만 있어도, 버려진 상자라도 엄마에겐 언제나 꽤 쓸모 있는 재료인 셈이다. 이 재료들과 특정한 순간의 필요가 만나 우연히 새로운 물건이 탄생하는 과정을 정말 즐기시고 계시는 듯하다. 이 물건들은 만든 이후에도 계속 아낄 수밖에 없다. 세상에 하나뿐인 물건이니.


    브리콜뢰르는 뭐든 돈으로만 사서 채우기보단, 자신이 갖고 있는 것들을 재조합한다. 돈은 최소한으로, 필요한 만큼만 쓴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간다면, 적어도 밤을 모르는 노동에서, 나이 들어서도 계속 일해야 한다는 고민과 불안감에서 어느 정도는 해방될 수 있지 않을까. 거기다 우연한 조합으로 탄생한 나만의 물건이 주는 기쁨까지 누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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