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의 죽음이 정열을 불러오다
글쓰기를 좋아하지만, 애초부터 ‘작가’는 넘볼 수 없는 직업이었다. 자신만의 고유한 사상이나 독특한 문체를 지녀야 ‘작가’라고 불릴 수 있을 텐데, 아무리 봐도 내 글은 평범했다. 그래서 직장을 다니며 얻은 사유들을 책으로 엮어내고 싶다는 소망이 들 때마다 언감생심이라며 애써 외면해왔다. ‘이게 될 리가 없잖아, 꿈 깨’라고 거듭 되뇌면서.
그러다 한 인문학 공동체에서 고전을 읽고 글을 쓰며 알게 됐다. 글쓰기는 선택받은 자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활동이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지극히 보편적인 활동이라는 걸. 책을 읽을 때도 글쓰기를 전제해야 한 번을 읽더라도 깊게 읽을 수 있다. 이유도 모른 채 반복하고 있는 괴로움이 있다면, 그 괴로움을 만드는 인과를 들여다보는 도구로서 글쓰기는 아주 유용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고유한 사상이나 독특한 문체는 살면서 맞닥뜨리는 모든 사건들을 소중히 여기고 바라보는 가운데 만들어지는 이야기를 풀어내기만 해도 충분하다는 걸 알았다. ‘그냥 내 이야기를 쓰면 되겠구나.’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마음 한편에 꾹꾹 눌러놓았던 소망이 또 한 번 올라왔다. 이때부터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고전을 읽고 쓰는 공동체에서는 함께 생활하며 공부하는 사람들끼리 서로의 글을 봐주기도 하고 꾸준히 써낸 글들이 어느 정도 모이면 책으로 내기도 했다. 혼자 글을 쓰면서 이게 잘 쓴 글인지, 사람들이 얼마나 공감할지 알 수 없던 나로서는 그 문화가 참 부러웠다. 공동체에 출간기획서를 보내면서 나도 피드백을 받으며 글을 쓸 수 있는지 조심스럽게 문의했다. 평소라면 절대 할 수 없는 무모한 제안이었는데,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 모르겠다. 나도 ‘작가’가 될 수 있겠다는 희망을 어렴풋하게나마 발견해서 조그마한 기회라도 잡고 싶어서였을까. 어쨌거나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 ‘거절’이었다. 당연했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나라도 거절했다. 그들이 서로의 글을 봐주는 행위는 서로의 삶을 공유하기에 가능했다. 오랫동안 함께 하며 서로에게 쌓인 신뢰를 바탕으로 삶을 성찰하는 글을 쓰고 나누는 사람들에게, 삶을 전혀 공유하지 않은 이방인이 자기계발서 같은 목차만으로 책을 제안했으니 받아들여질 리가 만무했다.
결과야 어떻든 간에 글은 계속 쓸 예정이었으니 크게 달라질 건 없었다. 마음은 별일 아니라고 계속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몸이 주는 사인은 달랐다. 거절당한 다음날 점심을 먹고 단단히 체했다. 체증으로 며칠 고생하고 나서야 그 거절 사건이 내겐 꽤 충격이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일상생활의 혁명
몸이 나은 후에도 이 사건이 왜 그렇게나 충격적이었는지, 내게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처음에는, 거절당해도 괜찮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많이 힘들구나, 꿈을 못 이룰까 봐 좌절한 건가 싶었다. 근데 더 시간이 지날수록 내 경험을 부정적 감정만으로 단순하게 정의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거절당한 이후 너무나 흥미로운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거절당했던 시기는 내 이야기를 써보자 다짐하고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 지 4개월쯤 접어들고 있을 때였다. 소망했던 일이고 시간도 확보했으니 글을 쓰는데만 몰두할 거라 기대했는데 웬걸, 전혀 아니었다. 글을 쓰는 시간보다 글을 쓰려고 의자에 앉는 시간이 훨씬 오래 걸렸다. 좋아하는 일이니 열일 제쳐놓고 할 법도 한데, 왜 이러는지 내가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시간에 더 중요한 일을 하지도 않는다. 스마트폰을 보거나 누워서 생각에만 잠겨있을 때가 많았다. 그렇게 하루가 흘러가면 잠자리에서 다시 다짐을 한다. ‘내일은 무조건 의자에 앉아 글을 써야지.’ 다음날 눈을 뜨면? 다시 스마트폰 삼매경.
어떻게든 노력해서 의자에 앉아도 그다음이 또 문제다. 글을 잘 쓸 수 없었다. 분명 머리로는 온갖 아이디어를 쏟아내고 있는데도 글로 엮어낼 수 없었다. 몇 편은 꾸역꾸역 썼지만, 억지로 쓴 티가 너무 났다. 마치 직장인들이 회의를 위한 회의를 하는 것처럼 글을 쓰기 위해 글을 쓰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렇게 계속 써낼 수는 없다. 뭔가 바뀌어야 했다.
변화를 갈망하던 그때 공동체에 제안했고 거절당했다. 그 후 며칠간 아팠다. 그리고는? 일상생활에서 혁명(?)이 일어났다. 이제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의자에 앉는다. 노트북을 켜고 글을 쓴다. 쓰다 보면 안다. 어디쯤에서 생각이 막혀 글이 맴맴 도는지. 그럼 거기까지가 오늘의 분량이다. 이제 일을 하고 책도 읽는다. 몇 개월간 계속 이 습관을 유지하고 있다. 마음과 몸이 따로 놀아서 수없이 다짐만 하고 정작 글을 쓰지는 못했던 지난날에 비하면 굉장한 변화다. 그런데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갑자기 왜?
이미지의 죽음
한 달쯤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거절 사건과 동시에 내 안에 무언가가 크게 죽음을 맞이했음을. 그것 때문에 많이 아팠지만, 그 후엔 마음이 크게 가벼워졌음을. 좀 더 쉽게 설명하기 위해 인도의 철학자, 지두 크리슈나무르티의 언어를 빌려야겠다.
당신이 전혀 비교하지 않을 때, 이상(理想)도 대립도 없고 이중성의 요인도 없을 때, 당신이 있는 그대로의 당신과 다르려고 애쓰지 않을 때, 당신 마음속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당신의 마음은 반대되는 것을 더 이상 만들지 않고, 고도로 총명하고 고도로 민감하고 엄청난 정열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노력은 정열의 낭비인데 당신은 정열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정현종 옮김, 2002, 100쪽)
크리슈나무르티는 우리가 무언가와 비교할 때와 비교하지 않을 때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려준다. 비교 속에서는 이상, 대립, 이중성이 존재한다. 공동체에 제안할 때까지 난 그것들 속에서 살았다. 공동체에서 공부하며 서로의 글을 봐주는 사람들이 이상적으로 보였고, 그 이상에 비해 이 글이 사람들이 공감해줄지 갈팡질팡하며 혼자 글을 쓰는 나는 왜소해 보였다. 나도 누군가에게 피드백을 받는 모습을 상상하기도 하고, 작가가 되어 사람들 앞에서 내 책을 소개하는 꿈을 꾸기도 했다. 정답처럼 ‘보이는’ 이상을 세우니 현실은 마치 오답처럼 ‘보였다’. ‘보이는’ 건 사실이 아니라 짐작일 뿐이다. 한마디로 “이미지”들. 이미지는 완벽해 보이는 이상과 그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현실이라는 대립구도를 만들어 정작 실제 모습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중적이다. ‘이래야 한다’는 생각은 자동으로 ‘지금 이대로는 부족해’라는 생각을 낳으니까.
한번 생긴 이미지들은 ‘해야 할 일 목록(to-do list)’을 잔뜩 만들어낸다. 원하는 이상에 다가가려면 글을 적어도 일주일에 한 편씩은 써야 한다. 매일 3∼4시간씩 꾸준히 글을 써야 하고, 글을 잘 쓰기 위해 책도 많이 봐야 하고, 누군가로부터 피드백도 정기적으로 구해야 한다. 이 목록들이 날 채찍질해주고 꿈을 좇기 위한 동력이 되어줄 거라 기대했지만, 오히려 내 발목을 붙잡고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왜? 요구목록을 가지고 있다는 건 ‘지금 그대로의 너는 안 돼’라는 자기부정도 내 안에 가지고 있는 거니까. 요구목록이 점점 무거워져 나를 짓눌러올 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요구로부터 잠시나마 도망쳐 스마트폰으로 무의미한 영상들을 보는 것뿐이었다. 그건 노력 없이도 할 수 있는 일이니까.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나 지금 뭐 하고 있지’, ‘한심하다’라는 생각들로 또 괴로워지긴 하지만.
공동체로부터 내 제안이 거부됐을 때 예상보다 더 크게 아팠던 이유는 내 이미지들도 거부당해서다. 덕분에 요구목록은 사라졌다. 날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자책하는데 시간을 허비할 필요도 없게 됐다. 아무도 발목을 잡지 않으니 글을 쓰고 싶으면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싶으면 책을 읽는다. 스마트폰도 필요할 때만 본다. 이게 크리슈나무르티가 말하는 “고도로 총명하고 고도로 민감하고 엄청난 정열을 갖게” 된 상태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상을 좇으며 요구목록을 수행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하지 않았을 때의 자책 사이를 오가며 엄청나게 낭비했던 에너지가 이제 오롯이 지금의 나에게 집중된다면? 그 힘은 우리가 무얼 상상하든 그 이상으로 적극적이고 강렬하다. ‘노력한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내포한다. 그 마음과 계속 싸우며 무언가를 하면 힘이 두세 배는 더 든다. 노력하지 않고 그냥 하면 된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방향 속에서 묻고 기다린다
사실 공동체에 한 제안은 99.999%의 확률로 거절될 줄 알았다. 그럼에도 제안했던 건 0.001%의 기대 때문이기도 했지만, 내 안의 많은 이미지들에게 떠밀려서다. 그것들의 무게를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저지른 일이다. 거절당하고 나서 갖고 있던 이미지들의 죽음으로까지 이어질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대체할 다른 이미지들을 찾아 나서지 않았던 건 우연일 뿐일까? 단지 운이 좋아서? 그렇다면 곤란하다. 자기부정 속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에너지의 낭비를 다신 반복하고 싶지 않다.
이미지를 더 이상 만들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어쨌든 글을 쓰겠다는 ‘방향’이 있어서다. 공동체의 답변과 상관없이 난 계속 글을 쓸 생각이었다. 일하면서 얻은 질문들에 스스로 답해보는 건 오래전부터 갖고 있던 소망이었고 나와의 약속이었다. 나중에 그 질문들에 답을 얻은 순간이 온다면? 그래도 쭉 쓸 예정이다. 글쓰기가 내 삶을 이롭게 만든다는 확신이 섰으니까. 그 방향 덕분에 공동체로부터 거절당했을 때도, 실패했다며 좌절하기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글을 쓸까 고민했다. 다행히도.
글을 쓰겠다는 방향이 있어서였을까. 하루에 글을 한 글자도 못쓰고 누워서 스마트폰만 하고 있을 때도, 억지로 쓴 글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거절당한 후 아팠을 때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물었다. ‘글쓰기가 너무 좋다며? 근데 왜 스마트폰만 하고 있어?’, ‘왜 억지로 쓴 글이라고 느껴?’, ‘거절당해도 괜찮다며? 도대체 왜 아픈 거야?’ 자책하는 게 아니다. 잘못하고 있다고 판단해버리는 순간 잘해야 한다는 요구가 생긴다. 그럼 다시 이중성에 빠져 다른 이미지를 만드는 건 시간문제다. 단지 질문만 던지고 기다렸다.
질문은 내 삶에 집중하겠다는 선언이다. 질문한 순간부터 관계 속에서 내 말과 행동을 관찰하고, 마음이 들려주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아무런 비난도 하지 않고 나를 이렇게 오랜 시간 대면해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나를 비난도, 위로도, 어떤 생각도 더하지 않고 계속 주시하는 훈련을 했다. 그렇게 나에게 집중하고 있으면, 과거의 기억이나 미래의 이상향을 지금의 나와 비교할 시간도, 여력도 없다. 외부의 대상과의 비교는 더더욱. 무엇과도 비교하지 않을 때 이미지는 생기지 않는다. 그때부터는 뭔가를 안 한다고 자책하거나 더 잘해야 한다고 닦달할 필요가 없다. 지금의 나로도 괜찮고 충분하다며 애써 위로할 필요도 없다. 오로지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