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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녕 Aug 23. 2021

위험천만한 호기심

타인의 불행을 알려는 욕망 멈추기

하루 중 많은 시간을 스마트폰과 함께 보낸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과 같은 사회적 관계망 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 SNS)에 올라온 친구들의 일상을 보며 댓글을 달고, 유명인들이 올린 글이나 사진들 중 관심 가는 것만 추려서 봐도 몇 시간이 금세 흘러간다. 거기다 드라마나 쇼 프로그램의 짤막한 영상들까지 보다 보면, 어떤 날은 온종일 SNS만 보기도 한다. 예전에 내 SNS 페이지에 가뭄에 콩 나듯 올리던 글마저 지금은 아예 올리지도 않고 있으니, 내 SNS 아이디는 다른 이들의 일상을 보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셈이다.


    친구들을 직접 만나지 않고도 그들의 글을 보며 어떻게 지내는지 아는 재미가 참 쏠쏠했다. 어느 날, 회사에서 겪은 힘든 일을 토로한 친구의 글을 보게 됐다. 상사는 매일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고 일은 야근을 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여느 직장인들과 다름없는 애환을 적은 글이었다. 글마다의 일화가 매우 흥미진진해서 자꾸 그의 다음날이 궁금해졌다. 점점 이 친구의 블로그를 방문하는 횟수가 잦아졌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의 글을 읽는 일이 일과가 돼버렸다.


    한번은 그가 회사를 관둘지 말지 심각하게 고민하는 글을 올렸다. 지금까지의 상황만 보면 당장 관둬도 이상할 게 없었다. 하지만 그는 퇴사를 망설이고 있었다. 높은 연봉을 포기하기 싫었고, 다른 직장을 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컸다. 고민하는 시일이 길어질수록 그는 더 괴로워하고 힘들어했다. 근데 이상했다. 그가 고통스러워할수록 내일 이 친구가 어떤 얘기를 할지 궁금해졌다. 그의 고통과 내 호기심의 요상한 관계를 알아차린 순간,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가 잘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읽고 있나?’ 아니었다. 그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드라마 시청하듯 보고 있었다. 드라마는 갈등이 고조될수록 재밌다. 친구의 갈등을 기대하는 무서운 마음을 느낀 순간, 바로 그와의 SNS 인연을 정리했다. 더 이상 그를 호기심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도록.



호기심, 타인의 고통을 향한 관심


호기심은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힘의 원천이라고 한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꿈꾸고, 계속 갈 수 있게끔 만드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인공지능 시대에 필요한 능력 중 하나인 창의력을 가능하게 만드는 마음이라고도 배웠다. 마냥 좋고 이롭다고만 믿고 있던 이 마음이 친구의 힘든 나날들을 흥미진진해하며 엿보게 만들었다니, 호기심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우선 호기심이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polupragmosunê이며, 이는 알려는 욕망이라기보다는 경거망동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과 관계없는 일에 연루됨을 의미합니다. 플루타르코스는 《호기심에 관하여》의 서두에서 호기심의 정확한 정의를 ‘philomateia allotriôn kakôn’으로 정의했고 이는 타자의 병, 불행의 소식을 알려는 욕망과 그것으로부터 얻는 쾌감입니다. 그것은 타인이 잘 되어 가고 있지 않은 데에 대한 관심이고, 타자의 결점에 대한 관심입니다. 타자가 범하는 실수를 아는 쾌감입니다. (미셸 푸코, 『주체의 해석학』, 심세광 옮김, 동문선, 2007, 256쪽)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는 호기심이 “자신과 관계없는 일에 연루됨”을 뜻한다고 말한다. 바꿔 말하면 자신이 아니라 타인에게로 향하는 관심, 즉 ‘타인에게 관심 갖기’이다. 그런데 단순히 타인의 모든 것에 관심 갖는 게 아니다. 유독 그들의 불행을 깊이 알고 싶어 한다. 타인의 고통을 알고자 하는 욕망, 그리고 그 욕망이 채워질 때마다 느끼는 쾌감까지가 호기심에 담겨있다.



    친구가 힘든 일을 겪는 걸 보면서 즐거움을 느꼈던 이유는 알고 싶어 하는 욕망이 충족되어서다. 그 후엔? 더 궁금하고 더 파헤치고 싶다. 평소에 관심 없던 연예인이더라도, 스캔들이 터지면 그 연예인뿐만 아니라 스캔들 상대까지 샅샅이 정보를 찾아보게 되지 않던가. 요즘은 인터넷에 너무 많은 정보가 흘러넘치니 마음만 먹으면 연예부 기자보다 더 많은 걸 알아낼 수 있다. 이때 우리의 관심은 이미 대상을 떠났다. 그들이 지금 얼마나 힘들지, 호기심에서 비롯된 일들이 도가 지나쳐서 그들에게 얼마나 상처를 줄지는 인식하지 못한다. 그저 그들의 은밀한 얘기를 더 깊게, 더 세세히 알아냈다는 나만의 만족감과 쾌락을 향해 달려갈 뿐이다.

     


호기심은 모두를 불행에 빠뜨린다


사려 깊지 못한 내 시선에 더 많은 친구들이 고통받기 전에 'SNS 엿보기'를 멈춰야겠다고 생각했다. 통제하지 못한 호기심 어린 시선은 타인에게 해를 끼친다. 같은 호기심의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 약한 동물이나 곤충일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면 쉽게 이해된다. ‘싸우면 누가 이길까’, ‘OO 참교육하기’라는 제목의 영상들이 꽤 있다. 시청자들의 호기심에 부응하기 위해 곤충과 동물을 억지로 싸움 붙이기도 하고, 사람에게 해가 된다는 이유만으로 특정 곤충을 갖가지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기도 한다. (지구 입장에선 그 곤충이 더 해로울까, 사람이 더 해로울까.)


    그건 대상이 동물이나 곤충일 때뿐이고, 사람에게는 직접적으로 해를 가하지 않으니 괜찮지 않냐는 변호는 옹색하다. 행위는 모두 마음이 짓는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즐기는 마음에 빠져들면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건넬 때도, 회사에서 일을 할 때도 그 마음 위에서 하게 된다. SNS 여기저기에 차마 입에는 담지 못할 욕과 비난이 섞인 댓글을 익명으로 다는 사람들도 다 호기심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남에게 상처 주고도 들키지만 않으면 괜찮다고 생각하겠지만, 한 치 앞 밖에 볼 줄 모른다고 광고하는 꼴이다. 남을 공격하는 마음에 빠져든 사람은 이름을 드러내고 하는 일들에서는 사사건건 가식으로 치장해야 한다. 가식과 진짜 마음의 간극만큼 사람은 괴로워지기 마련이다. 이게 바로 호기심을 조심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정말 자신에게도 손해가 막심하지 않은가!


    소중한 시간을 타인을 바라보는데 허비해버리는 것도 문제다. 처음에는 어쩌다 발견한 글을 읽는데 단 몇 초만 필요했다. 하지만 다음에 올라올 글이 점점 궁금해지더니, 언제부턴가 컴퓨터 앞에 앉을 때마다 그의 SNS 화면을 '새로고침'하고 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의 SNS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내가 하던 일에 집중하는 시간은 점점 짧아졌다. 이걸 과연 온전히 내 삶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렇다고 남을 위한 삶이라 말하기도 부끄럽다. 단지 타인의 불행을 좇는데 자신의 생명력을 소진하는 바보 같은 삶일 뿐이다.



내 갈 길에 집중하기


타자에 대한 악의적이고 사악하며 적대적인 시선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의 목적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관찰해야 하고 유지해야 하는 곧은 행보 내에서 자기 자신에 몰두할 수 있기 위해서입니다. 자기 자신에 몰두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해독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주체는 집중 훈련을 통해 자신의 모든 활동과 주의를 자신의 목적으로 이끄는 긴장을 향해 되돌려야 합니다. (같은 책, 258쪽)


    내 호기심 때문에 모두가 불행해지는 일을 막으려면, 타인에게 향한 시선을 자신에게로 돌려야 한다. 나를 돌아보고 잘못한 일이 있을 때마다 반성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자기 자신에게 몰두해야 한다”는 말은 자신이 나아갈 바를 정하고 그 길에 집중한다는 뜻이다. 호기심에 나도 모르게 정신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내가 가고자 하는 바와 동떨어진 사유에 휘말리지 않도록 스스로를 다잡는 행위이다.



    그러면 타인은 무슨 일을 겪든 신경 쓰지 말아야 할까? 그건 자신이 나아갈 바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르다. 우리는 한 명 한 명이 개별적인 존재이기도 하지만, 부모님의 자식이고 한 나라의 국적을 지녔으며 ‘인간’이란 종이면서 생명을 지닌 존재이다. 내가 나아갈 바를 생명을 지닌 존재가 나아갈 바로 인식한다면, 여기에서 나와 타인,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 인간과 자연의 구분은 의미가 없어진다. 그러니 호기심이 생기면 두 가지부터 점검하자. 이 호기심이 모두를 이롭게 하는 관심 또는 질문이 될 수 있는지. 그리고 내가 나아갈 바에 집중하는데 도움이 되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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