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물고 커피 내리면 그만이던 아침. 이제는 눈 뜨면 곧장 민물로 세수부터 하고 지그시 스트레칭을 한다. 그래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야 정신은 삶에 필요한 번거로운 일들을 조금씩 수행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100일쯤 되니 그것들에 더 이상 귀찮거나 힘겹지 않게 되었다. 담배를 피웠다면 분명 귀찮고 힘든 것, 굳이 안 해도 되는 일들이었다. 뭐 하러 그래. 그냥 담배 한 모금 빨면 그만인데.
요즘은 새벽 서너 시면 일어난다. 시간이 멎는 블루 아워를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고—분위기 자체도 마음에 들지만 나를 위한 필수적인 일과들을 마칠 무렵 (눈치껏)해가 뜨기 때문에 부담 없는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태양과 함께 본격적으로 뭔가 좀 더 해볼까 싶은 의욕이랄지 여력도 생긴다. 간직한 채로 낮잠도 잘 자고. 전에는 어쩌다 낮잠을 자게 되면 정신을 못 차리고 침울해져서 싫었는데 요즘 낮잠은 정신도 맑아지고 충전이 잘 돼서 오후를 더 잘 지내게 된다.
블루 어쩌고 핑계를 댔는데 그 앞서 한동안 모바일게임을 했다.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할 것도 오죽 없으면 그랬다. 퀘스트를 하려고 일찍 일어났다. 그런데 그게 도움이 됐다. 화면 안에서라도 이리저리 쏘다니며 시키는 걸 부지런히 했으니까. 아마 게임 덕분에 맷돌이 다시 돌기 시작한지도 모른다.
게임 밖에서는 메이저리그 경기가 벌어지고 있다. 이 시간에는 다저스 경기를 생중계로 볼 수 있고 이정후의 플레이도 볼 수 있다. 요 며칠은 다부져진 김혜성도 만날 수 있었다. 남들 일하는 거 봐서 뭐 하나 싶은 게 본래 내 포지션이었는데 언젠가 ㅅ친 이글스가 눈에 밟히기 시작한 게 이모양이다. 그러게 진작에 문현빈을 썼으면 됐잖아.
수없이 태어나고 죽는 이야기. 집 나갔다 돌아오는 기막힌 여정. 하려는 자와 맞서는 자. 수많은 교통에서 터져 나오는 꽃잎들. 고작 9회 말 투아웃이라서 야구를 인생에 빗대는 게 아니란 말이지.
그런 야구를 보면서 고기를 굽는다. 새벽 네 시건 다섯 시건 염병이건 굽는다. 고기 구워 먹으려고 미친놈처럼 일어난다. 신새벽 온 창을 활짝 열고 박명에게 전하는 고요한 외침이자 나만의 예배다.
삼겹살이 너무 먹고 싶었다. 담배를 끊고는 먹는 음식도 수면도 엉망이 되어서 그날은 그랬을 것이다. 너 고기 좀 먹어야 된다. 물에 빠뜨려 일주일 동안 불려 먹지 말고. 구워서 바로. 그래서 번거로운 데다 몸에도 나쁘고 사치이기까지 한 굽는 조리법 금지 조항을 깨고 딱 하루 해 먹어버릇한 게, 그리고 마침 100g에 1천 원도 안 되는 기똥차게 저렴한 삼겹살이 발견된 것이, 새벽녘마다 담배 연기 대신 고기 연기 피우는 존재를 빚어냈다.
계란말이용 사각팬에 삼겹살 두 줄을 쑤셔 넣고 시작했던 첫 경험을 잊을 수 없다. 담배를 끊어서일지 아니면 삼겹살을 둘러 먹는 풍경에서 돌아섰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서럽게 맛있었다. 한강 작가의 여름 수박 일화가 공감될 정도로 생을 긍정하게 되는 맛이었다. 거기에다 버섯과 채소를 함께 굽고, 다음날에는 쌈을 싸 먹고, 그다음 날엔 팬에 남은 고기 기름이 아쉬워서 일부러 고기와 채소를 남겨서 밥까지 볶아먹었다. 사람이 이렇다. 끊임없이 뭔갈 벌인다. 그러면서 자꾸 뭔갈 잃어버린다.
내가 이 이른 시각에 왜 일어나는 줄 아냐. 물론 얼른 고기도 구워 먹고 싶고 메이저리그도 보고 싶으니까이기도 하지만 조용하니까. 이 시간만 세상이 닥치고 조용하니까. 친절하니까. 그럼에도 오토바이 한두 대 드르렁거리긴 해. 어이가 없지. 너무 시끄러워. 자려고 누우면 오토바이가 저기서부터 미끄러지듯 다가와 남의 가슴만 쌩 긁고 멀어져 간다. 잡지도 못해. 자빠뜨리지 못해. 잡아 족치고 싶은데. 귀마개를 해도 오토바퀴벌레는 가슴을 울려. 울리지 않더라도 늘 마음을 졸이는 통에 곧 울리고 말아. 틀림이 없어. 언제든 산산이 부서질 밤이야. 나는 자야 하는데. 이제 그만 편히 자고 싶은데 화가 나거나 참담하거나 밖에 없어. 언제 이렇게 된 거냐. 나도 세상도. 불필요한 소리가 너무 많잖아. 나는 너무 오랜만에 태어난 걸까. 도저히 적응을 못하겠어. 어떻게 미치지 않을 수가 있어. 너희 장단에 맞춰야만 하는 거. 이 미친 세상에 속해서 매일 더러운 짓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는 것이야말로 미친 거지. 톡톡 튀는 살인마만 미친 게 아니야 미친놈들아. 살인마를 더럽다 말하지 말아라. 아직도 하얀 것이 깨끗하다 믿느냐. 하얗기 위한 더러움 꽁꽁 감추고. 내팽개치고. 모르는 척하고. 깨끗할수록 더럽다는 걸 설마 모르지 않겠지. 적어도 너는 부끄러움을 알겠지.
나답지 않게 번지점프처럼 짜릿한 일을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이 문뜩 든다. 그것은 아마 담배로 향했거나 억눌렸거나 무의미하게 태워진 에너지일 것이다. 나의 진가일 것이다. 그것을 잘 간수하며 바라보고 있다. 이 힘으로 사는 것일 텐데 돌아보면 참 어리석고 딱하지 않을 수 없다. 밥을 먹고 변을 보고, 해가 뜨고 달이 차는, 그 밖에 모든 섭리들의 꼭대기에 담배가 앉아 있었다. 모든 것들은 담배를 떠받들기 위함이었다. 흡연을 더욱 빛내기 위한 것에 불과했고, 전락했다면, 지금은 모든 순간이 주인공이 된다. 누구나 담배의 자리에 얼마든지 앉을 수 있고 잠시 앉아 쉴 수도 있고 언제든 흔쾌히 자리를 양보할 수 있다. 모든 존재가 아름답고 귀해진다. 음악은 더욱 생기 있게 방울거리고 이 몸 하나 미소 짓기 위해 음식을 짓고 또 본래대로 씻기는 시간들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다. 담배 구름 걷히니 별들이 빛난다. 앞다퉈 서로를 비춘다. 눈이 시웁다.
흡연은 과연 모든 걸 대신해 주는 천사일까, 모든 걸 빼앗는 악마일까, 오직 끔찍이 피워 보고(사랑해 보고) 지독하게 끊어 본(이별해 본) 사람만이 웃음 지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