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에서

by 자진유리




아몬드 몇 알을 움켜쥐고 바깥에 나갔다. 하늘로 손바닥을 펼치고 허수아비처럼 가만 서있는데 어디서 난 무거운 기운이 가뜩이나 흐리멍덩한 얼굴을 사정없이 뭉개뜨리는 것 같다.

햇볕에도 압력이 있는 줄은 몰랐다.

얼마나 속안에서만 살고 있는지 별걸 다 느낀다.


빨랫감이 쌓여야 오늘처럼 옥상이라도 밟고 종량제 봉투가 가득 차야 대문 밖에라도 겨우 들락거리는데 담배를 끊고는 그마저도 빈도가 줄었다.

편의점 갈 일 없지, 쓰레기도 획기적으로 줄었고—모르겠지만 담배꽁초 이상으로 줄었다—불필요하게 외출할 일도 없으니 빨래도 잘 없다. 가끔 손빨래만 하는 삶이라면 참 좋겠다


흡연자의 내가 지금 나의 느슨하고 추레한 꼴을 봤다면 그의 무모한 기준으로부터 불쑥 올라오는 불안과 황폐감에 절망하거나 쓸데없이 눈에 힘을 빡 줬을 테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이제는 이 삶이 너무 편하고 제발 죽는 날까지 변치 않았으면 소원이 없겠습니다.



한참 서있었는데 소득이 없다.

바닥에 두고 간다 알아서 먹어라.








햇볕을 반드시 쫴야 된다느니, 비타민 디가 어쩌고, 세로토닌이 가로토닌으로 전환될 때까지,

놀구있네.

호들갑 좀 떨지 마.

나는 담배 끊는 내내 메추리알만한 알전구 빛으로만 살았어.

다만 내 앞에 화분을 믿었지—얘가 이상해지면 내게도 문제가 있을 것으로 알자.

내가 가끔 옥상에 나와 보는 건 얘처럼 내 머리카락도 좀 처진 기분이 들어서야.

겸사겸사 까치네들 간식이나 좀 주고.

나 먹을래도 없는걸 까치놈한테 왜 주느냐.

그나마 들을 만한 소리를 하니까.

아침도 사부작 깨워주고.


그나저나 희한하지.

수없이 담배 피우던 공간인데 이제는 담배 맛도 담배 피우는 나도 기억이 잘 안 난다. 당신 얼굴처럼ㅋ

이제 담배 얘긴 그만둬야 할까 봐.

이렇게 쉽게 끊을 수 있을 줄 몰랐어.

아니야 그렇지 않아.

너무 힘들어서 기억까지 싹둑 끊어진 거야.

담배만 보낸 게 아니었지.

그게 말이지.

예전에 집 공사할 때였나. 아버지가 정리 도와준답시고 오셔서 쓰레기 버린다고 내 멀쩡한 구두들을 몽땅 갖다 버린 적이 있어.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뒤로 구두 신을 일이 좀처럼 안 생기는 거야. 미루어보면 웬만하면 버리지 말아야 될 것들을 미리 분류해 뒀지만 누군가 담배 버리면서 같이 버린 게 아닌가 싶어. 근데 그게 뭔지 모르겠어. 담배는 너무 많은 것과 얽혀 있어. 나는 맹세코 버린 적이 없단 말이야. 대체 뭘 데려간 거야 허락도 없이.


이런 와중에 단골가게 원두 값마저 오른다는 거야.

고된 생두 시절이 되올 순 없으니 이제 커피도 아예 끊어야 될까 봐.

괜찮아 커피 역시도 커피가 아니어도 된다는 걸 알았으니까.

가령 코피를 마셔도 똑같거든.

세상은 참 웃겨.

형상이 웃긴 건지 심상이 웃긴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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