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해외 댄스 이벤트
춤을 잘 춘다는 것의 기준이 뭘까?
A와 B 중 누가 더 잘 추는지 평가했을 때, 각자의 평가 기준이나 취향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이다.
춤에는 정답이 없고 틀린 춤도 없기 때문이다.
춤은 그저 박자에 맞추거나 흥에 겨워 몸을 움직이는 동작이다.
하지만 음악에 더 어울리는 춤은 있다.
보기 좋은 춤과 자연스러운 춤은 주관적일 수 있지만, 위태로운 동작은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러니 전체적인 춤을 보고 누가 더 낫다고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스텝이나 몸의 균형 등 한 부분을 콕 집어서 비교하는 것은 가능하다.
음악의 박자에 맞게 추는지, 파트너와의 합은 맞는지 역시 평가할 수 있는 항목이다.
웨스트 코스트 스윙에는 이렇게 세부적인 것들을 평가하는 시스템이 있다.
WSDC라는 세계 협회에서 지정한 방식으로 이벤트와 레벨에 대한 규칙이 정해져 있고 등록된 대회에서 댄서들이 얻은 점수들도 모두 기록하여 레벨로 표시하고 있다.
처음 시작하면 뉴커머(Newcomer) 혹은 노비스(Novice)라는 초보자 레벨에서 시작한다.
게임을 시작했을 때 튜토리얼부터 시작하거나 튜토리얼을 스킵하고 레벨 1부터 시작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리고 노비스 레벨에서 16점을 따면 다음 레벨인 인터(Intermediate)로,
인터에서 30점을 따면 어드(Advanced)로,
어드에서 60점을 따면 올스타(All-Star)로 레벨이 올라간다.
춤 경험치를 쌓아야 다음 레벨로 넘어갈 수 있어서, 마치 게임에서 캐릭터를 키우듯이 내 춤 경험치를 쌓고 레벨 업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웨스트 코스트 스윙의 레벨 시스템은 다른 댄서들과 비교해서 누가 더 잘하는지를 보고 등수를 매긴다.
그리고 대회에서 몇 명 중 몇 등을 하느냐에 따라 얻을 수 있는 점수가 달라진다.
1등은 3점, 2등은 2점, 3등은 1점, 그 이하는 0점.
참가자가 5명에서 10명 정도라면 이런 식으로 점수를 받게 된다.
참가자가 늘어날수록 더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고, 몇 등까지 점수를 받을 수 있는지도 달라진다. 만약 130명 중에서 1등을 했다면 25점을 받을 수 있다.
경쟁이 치열한 만큼 이겼을 때 얻는 결과도 달콤하다. 여기에서도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을 체감할 수 있다.
대회에서 파트너는 임의로 정해지며 음악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똑같이 무작위로 정해진 상황에서 즉흥적으로 추는 춤을 얼마나 잘 추는지를 평가하는 것이다.
레벨에 따라 심사 기준은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보통 기본기를 잘 갖추었는지, 박자는 잘 맞추는지, 음악에 잘 맞춰서 추는지 등을 평가한다. 기준에 맞게 잘 춘다면 경쟁자들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내가 대회에 처음 참가했을 때는 모든 게 무작위로 정해지는 시스템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운도 실력이라지만 대회에 나갈 때마다 파트너나 음악 운이 좋지 않다면 낙담할 수밖에 없다.
앞서 이 단계를 거쳐 간 사람들 중에는 운도 극복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면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전에 지쳐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처음에는 춤추는 것 자체를 즐기던 사람도 레벨 시스템을 알게 되면서는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고 경쟁하게 된다.
나도 그랬다. 재미를 찾아 취미로 시작했던 춤에서 어떻게든 점수를 따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레벨 업에 집착했다.
내가 A보다 잘 춘다고 생각하는데 그 사람보다 점수나 레벨이 낮으면 억울해서 기를 쓰고 점수를 얻으려 하는 것이다. 너무 점수에만 목을 매다가 춤 자체가 재미없어지는 일도 생겼다.
춤이 재미있어서 더 잘 추려고 시작했는데 점수만 신경 쓰다가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었다.
싱가포르에서 이벤트가 열렸을 때, 초보자였으니 노비스 레벨로 대회에 나갔다.
그리고 예선도 통과하지 못했는데, 충격적이었던 것은 한 명의 심사위원도 나에게 점수를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A는 점수를 받았고 예선도 통과한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대체 내가 저 사람보다 뭐가 모자라서 떨어지고 저 사람은 뭔데 붙는 거지?’
속을 끓이다가 답답해서 주변 사람에게 물어봤다. 괜히 속 좁아 보이고 싶지는 않아서 시스템을 탓했다.
“춤만 재밌게 추면 됐지 춤에 레벨은 왜 있는 거예요?”
“더 잘 추려고 만들어진 규칙이야.”
“더 잘 추는데 꼭 다른 사람이랑 비교해야 해요?”
“비교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누구와 춰도 얼마나 잘 출 수 있느냐를 보는 거지. 대회 방식이 파트너 랜덤, 음악도 랜덤이잖아? ”
“그게 특히 더 운에 따른 것 같아요. 항상 못 추는 파트너만 만나면 대회도 항상 떨어지잖아요.”
“그런 면이 없진 않지. 그래서 못하는 사람이나 잘 추는 사람 상관없이 누구랑 춰도 잘 출 수 있는 사람이 레벨이 높은 거기도 해.
이제 막 시작한 사람이나 초보자는 잘 추는 사람이랑 춰야 잘 추는데,
올스타나 챔피언들은 초보자랑 춰도 잘 추고 상대방이 잘 추게 만들어주거든.”
평소에 어떤 음악에도 춤을 출 수 있고 모두가 파트너라고 여겼지만 어떻게 춰야 하는지, 어떤 댄서가 되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상대방도 잘 추게 만들어주고, 상대방을 이해하면서 함께 추는 것.
파트너에게 맞춰서 춘다고 내 수준이 떨어지는 게 아니라 상대가 잘 출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사람이 잘 추는 게 아닐까?
레벨 시스템을 욕하기만 하다가 새로운 관점으로 보니 춤추는 목적이 달라졌다.
잘 추는 건 아직도 어렵고 막막하지만, 파트너를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대회의 목적이 누구와도 잘 추기 위함이라면, 대회의 기준에 맞춰 춤을 더 잘 추기 위해 노력할수록 누구와도 잘 출 수 있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