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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비내린 Apr 08. 2020

길 잃은 세대의 정체성

24일 차 자기발견

나는 주류보다 비주류를 좋아한다.


모두가 좋아할 만한 영화나 드라마 보다, 조금은 불편할 수 있는 진실을 알리는 영화와 드라마를 선호했다. 세상을 삐딱하게 보는 시선은 다소 부정적일 수도 있다. 좋게 좋게 넘어가자는 사람들에겐 이런 것도 신경 쓰냐고 묻곤 했지만, 나는 의문이 생기면 풀릴 때까지 집요하게 이유를 찾아냈다.


'당연한 것이 당연한 게 아니게 되는 순간' 나는 견고할 것만 같던 고정관념에 허점을 발견했을 때 희열을 느꼈다. 그리고 이 허점을 넘어설 때 일적으로도 내적으로도 성장했다. 나는 '남들이 이렇게 해왔으니까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말을 싫어한다. 당시에는 없었던 프로그램 기술, 과거의 프로세스로 만들어진 업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공기업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 일이다. 나는 인수인계를 받으면서 '남들이 해온 대로 하면서' 덕지덕지 붙어진 불필요한 작업들을 발견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서류를 몇 번 작성하다 오래지 않아 의미 없는 일이란 걸 깨달은 나는 이 서류가 어디에 쓰였는지 직원분께 여쭤보았다. 알고 보니 예전에 구분돼서 작업하던 서류를 최근에 통합하면서 현재 그 서류를 쓰지 않고 있었다.


아마 초기에 서류를 통합할 때는 혼선을 줄이려고 기존 서류도 그대로 작업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왔을 시점엔 모든 직원이 새로 만든 서류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이전 서류는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나는 과감하게 그 작업을 없앴다. 불필요한 작업에 시간을 줄이니 본래 업무에 더 시간을 투자할 수 있었고, 업무의 간소화를 여러 번 거치면서 나중엔 3명 분의 작업을 동시에 할 만한 수준의 업무 프로세스를 만들었다. 원래 했으니까 하던 대로 했다면 꿈도 못 꿨을 일이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저 너머에 있다는 믿음, 그리하여 모든 것에 열려 있는 자세가 내가 지향하는 목적이자 정체성이다. 나는 나이와 직업의 상관없이 모두의 가치관이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 누구나 자유롭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 그리고 낡은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점을 받아들이는 사회를 꿈꾸고 있다. 여기서 파생되는 세 가지 개념 '개방성', '자유', '존중'은 내가 지향하는 목적에 향하고 있다.


나는 일에서든 일상에서든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최선일까'를 물었고,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사람의 책을 읽으며 따라 하려 애썼다. '이 정도면 적당히 하자'고 결론이 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이유를 찾았고, 내가 하는 방식 또한 낡은 방식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다음에 일을 맡을 사람에게 '더 좋은 방법'이 있다면 그것을 해봐라고 얘기했다.



Bird's eye view


인디게임 <눈과 눈과 눈>에서 Bird's eye view라는 개념이 나온다. Bird's eye view란 새의 시야에서 대상을 바라보는 것을 의미한다. 게임 속 인물은 감옥의 한 장면을 보여주면서, 새의 시선으로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봤을 때 우리는 누가 죄수이고 누가 교도관인지 알 수 없다고 말한다. 새의 시선에서 내려와 우리에게 익숙한 위치에서 감옥을 바라봤을 때 비로소 왼쪽이 수감자, 오른쪽이 교도관이란 사실을 깨닫게 된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시선이 어디에 있냐에 따라 오해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편협한 시각을 깨려면 새의 시선에서 모든 걸 평등한 시점으로 돌려놓고 봐야 한다. 2015년에 이 게임을 접하면서 한동안 'Bird's eye view'라는 단어가 머리에 맴돌았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관점으로 보는 태도를 만들었던 일련의 경험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새의 시선에선 모두가 동등해 보인다


우리의 시선에서 비로소 왼쪽이 수감자, 오른쪽이 교도관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21세기 플뤼루스 27번가


한국의 직장인 커뮤니티, 취향공유 모임은 20세기 거트루드 스타인(Gertrude Stein)의 살롱문화에서 건너왔다. 그는 누구보다 먼저 피카소의 재능을 알아보고 후원해준 사람으로, 젊은 예술가들의 교류를 주도하던 사람이다. '플뤼루스 27번가' 아파트에서 파리의 예술인들이 모여 예술적 관점과 생각들을 나누고 이에 영감을 받아 예술작품을 발전시켰다.

피카소의 '거트루드 스타인의 초상'


거트루드 스타인은 전후 세대의 허무함과 절망으로 방황하는 예술가에게 '그대들은 모두 길 잃은 세대(You are all a lost generation)'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당대 가난한 예술가의 작품에서 진가를 알아보고 후원을 아끼지 않았던 그였기에 할 수 있었던 말이었다. 그의 적극적인 후원이 없었으면 마티스, 피카소 등의 작품도 빛을 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지금은 위대한 미술의 사조인 야수파와 큐비즘의 명칭은 전시작품을 본 기자의 비꼬는 말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사실적인 묘사에 근거한 전통적인 미술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로 야수파와 큐비즘 미술에 비난과 조롱이 쏟아졌지만, 우리가 알고 있듯이 오늘날에는 현대미술 역사의 가장 영향력 있는 미술운동으로 기록되고 있다.


지금을 살아가는 밀레니얼은 '좁아진 취업문', '불안한 직장생활'로 혼란의 시기를 겪고 있는 길 잃은 세대이다.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라는 사회의 압력과 자아실현을 통해 꿈을 꾸려는 가치관이 서로 부딪히는 시기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시계추는 후자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모든 걸작들은 세상에 선보일 때 언제나 추한 모습을 하고 있다."라고 얘기한 스타인의 말처럼 기존의 관념에서 벗어나는 생각은 비난받기 쉽다. 그리고 이런 비난이 두려워 우리는 진짜 생각들을 마음속에 숨기고 살아가고 있다.


나는 변화의 흐름에 편승하기보다 흐름을 주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혼란의 시기를 극복하는 방법을 20세기 파리의 어느 살롱에서 젊은 예술가들이 자유롭게 토론하던 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내가 사람과 사람 간의 연결 그리고 개인의 성장을 돕는 서비스를 지향하는 이유다.


이미지 출처: https://www.metmuseum.org/ko/art/collection/search/488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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