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차 자기발견
꽃비내린 같은 성격은 팀장이 싫어할 수 있어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지? C멘토님과 상담 중에 이 말을 듣고 당황했었다. 내 표정이 심각해진 것을 알았는지 멘토님은 무슨 의미인지 찬찬히 설명했다. C멘토님과는 웹기획 실무 교육으로 만난 인연인데, 6주간 수업을 진행하면서 내가 질문하는 방식이 눈에 띄었다고 했다. 가령, 멤버십 종류와 혜택을 벤치마킹할 때 멤버십 구조는 비동종 서비스를, 멤버십 혜택은 동종 서비스에서 벤치마킹을 해야 한다고 설명하면 다른 분들은 끄덕이고 넘어가지만 나는 왜 비동종 서비스를 벤치마킹을 해야 하는지 질문했다.
멘토님은 이런 내 행동을 지켜보면서 내 성격이 이 일을 왜 맡아야 하는지 충분히 알려주지 않으면 신뢰하지 못하는 성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팀장이라 해서 다 아는 건 아니기 때문에,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하기보다 질문을 대뜸 던지면 난처하게 만들 수 있다고 했다. 다만 팀장이 모든 질문에 답할 정도로 역량이 커서 배울만한 사람이면 무조건적으로 충성할 사람이라고 하셨다. 단 6일 간만 봤음에도 C멘토님은 내 성격을 정확히 꿰뚫어 보셨다.
그럼에도 나는 일을 하는 목적에 대해 질문을 하고 더 나은 방법을 고민해보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성향을 이해해주고 오히려 잠재력을 이끌어내 주셨던 리더분들을 만났는데, 나는 그런 분들과 함께 할 때 더 좋은 성과를 보일 수 있었다.
<실리콘밸리의 팀장들>에선 상사의 역할은 조언, 팀 구축, 성과 세 가지로 구분했다. 이 세 가지에서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요소는 바로 '완전한 솔직함'이다. 완전한 솔직함은 칭찬과 지적을 분명하게 알려주는 것을 말한다. 완전하게 솔직한 칭찬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보다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려주는 것이다. 완전하게 솔직한 지적은 더 잘할 수 있었던 부분에 대해 직접적으로 얘기하는 것이다.
완전한 솔직함을 보이려면 직원 개개인에 대한 개인적 관심뿐만 아니라 때론 꺼내기 힘든 주제에 대해서도 분명 직접 만나서 얘기를 나눠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최악의 경우 상사와 직원 모두에 피해를 줄 수 있다. 저자 킴 스콧은 러시아 우화에 빗대어 생생하게 설명했다.
어떤 사람이 개의 꼬리를 잘라야만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는 개를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하루에 1인치씩 잘랐다. 주인은 어떻게든 개의 고통을 덜어주고 싶었다. 그러나 결국에는 그는 사랑하는 개에게 더 많은 고통을 안겨 줬다.
진정한 리더는 팀원에게 당장의 상처를 줄 것을 두려워하며 문제를 회피해선 안된다. 팀원의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알려주지 않는다면 나중에 팀원이 깨닫고 후회하더라도 되돌리기 어려운 결과(미국의 경우 해고)를 맞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운 좋게도 이런 솔직함을 보여준 리더를 만날 수 있었다. M님은 첫날 자기소개를 하는 자리에서부터 남달랐다. 흔히 자기소개에서 묻는 나이라던가 사는 곳에 대해 묻지 않았다. 대신 어떤 장르의 음악을 좋아하냐고 물었다. 음악 스트리밍 회사여서 나온 질문일 수도 있지만 새로 온 사람들의 취향을 듣고 편하게 자기를 소개할 수 있도록 배려했던 게 아닐까 싶다.
그 자리에서 나눈 얘기는 아직도 기억이 나는데, M님이 회사에 지내면서 불편한 점이 없냐고 물었을 때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다. 팀원의 얘기에 공감을 하면서도 왜 회사에서 그렇게 하지 못하는지를 설명해주셨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M님에게 어떤 말이든 진지하게 들어줄 거라는 신뢰가 생겼다. 팀원의 말을 들어주기 어렵더라도 귀 기울인다는 자세를 보이는 것만으로도 팀원은 납득하게 된다. 따라서 리더는 완전한 솔직함으로 팀을 이끌어야 한다.
타 팀과 자료를 넘겨주는 방식을 두고 팀 내에 이견이 생긴 일이 있었다. 고객이 요청한 음원을 '음원요청파일'과 '가사요청파일' 그리고 '가사싱크요청 파일' 세 곳에 넣어야 했는데, 나는 세 번이나 중복해서 넣는 과정에서 업무 부담이 크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동일한 음원은 한 번만 전달해도 좋지 않느냐고 의견을 내놓았지만 다른 팀원은 업무 과중으로 바쁜 시기에 굳이 바꿀 필요가 있냐고 답했다.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나는 퇴근길에 왜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지 않았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그 원인을 한 팀원의 말에서 찾을 수 있었다. "형식을 바꾸면 나중에 취합하는 OO이 헷갈릴 수 있어요." 지금 이대로가 좋다는 의미가 아니라 다른 팀원의 업무 부담을 염려해서 반대를 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진행하기엔 업무는 과중되었고 정작 우리가 처리해야 할 CS업무들은 산더미였다. 문의가 들어오면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답을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자료를 전달하는 방식에서 시간을 뺐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는 오히려 형식을 바꿨을 때 취합하는 사람의 효율이 높아질 것이라 생각했다. 이를 위해서 협력하는 부서와도 얘기를 나눠봐야 했다. 답은 Yes. 그렇게 해도 괜찮다는 허락을 받았다. 해당 팀에서도 음원을 요청받으면 가사나 가사싱크는 같이 챙기기 때문에 굳이 따로 전달할 필요가 없었다. 이 사실을 알고 난 뒤 충분히 고민한 내용을 슬랙으로 팀원 전체에게 전달했다.
'팀원이 무엇을 우려하는지 이해하고 있지만, 다만 이대로 진행한다면 우리 팀원의 업무가 과도하게 증가해서 지금 하고 있는 CS일도 계속 부담이 될 것'이라고 얘기했다. '누구 주장이 옳고 그르다'에서 '우리 팀에게 좋은 것'이라는 관점으로 옮겼을 때 모두가 공감할 수 있었다. 그 결과 타 팀과 협의를 통해 전달 방식을 바꿨고 업무 부담도 줄일 수 있었다.
이 경험에서 배운 리더의 자질은 다음과 같다. 의견을 말할 때는 항상 팀 그리고 조직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 이에 더해 리더는 아래 세 가지를 명심하고 상대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첫째, 부딪히는 주제에 대해 각자가 가정한 전제가 주관적인지 아니면 객관적인지 확인할 것
둘째, 상대방이 내 의견을 반대한다면 어떤 점이 우려되는지 물어볼 것
셋째, 우려되는 점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는지 명확히 답할 것
한 번은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는 팀장님과 일한 적이 있다. 그분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인턴에게 일을 분담하기보다 혼자 다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정작 내가 맡은 프로젝트의 메인 PM이었지만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셨다. 보조로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클라이언트를 상대하면서 곤란한 적이 있었다. 클라이언트가 요구하는 사항이 계약 범위를 넘어서는 것인지 아닌지를 모르는 상황에서 이를 중재할 사람이 필요한데 도움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리더가 일을 분담하지 못하면 구성원이 힘들게 된다. 팀의 전체 상황을 모니터링하면서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데 세세한 일에 신경 쓰다 보면 정작 구성원들이 어려워하는 점을 못 알아챌 수 있기 때문이다. 리더는 일을 버릴 줄 아는 사람이 돼야 한다. 일을 버리지 못하고 혼자서 하려는 사람은 상대가 자기가 하는 만큼 잘 해낼 거라고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리더는 실무자가 아닌 관리자로서 일의 배분을 잘할 때 팀의 성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혼자 다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 중요하다.
일 잘하는 방법에 관한 여러 저서를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맡길지 여부를 판단하라고 얘기한다. 그중 나는 아이젠하워의 업무진행방식을 가장 마음에 들었다. 순서는 다음과 같다. 처음에 빈 책상을 가, 나, 다, 라로 4등분하고, 현재 하고 있거나 앞으로 할 것들을 4등분한 영역에 분류한다.
나는 (가), (다), (라)로 업무를 구분하고 우선순위를 잡는 것은 잘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업무를 분담하는 일은 잘하지 못했다. 인턴경험 정도만 했기 때문에 분담할 기회가 별로 없었기도 했지만, 혼자 하기 부담스러운 일이라도 다 해내야 유능하다고 오해한 것도 컸다. 나는 데이터를 정리하는 업무를 맡으면서 처음으로 업무를 분담해도 괜찮다는 것을 알았다.
기획운영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당시, 탈퇴회원과 활성회원 간 차이를 분석하는 업무를 맡았다. 이를 위해선 Admin에 흩어진 데이터를 모아 하나의 시트로 정리해야 했다. 문제는 데이터 량이 많아 정리하는 데 4일이 걸리는데 분석 보고일은 3일까지인 것이었다. 나는 큰 마음먹고 차장님께 솔직하게 정리하는 데 오래 걸린다고 말씀드렸다. 놀랍게도 차장님께서 '그럼 다른 아르바이트생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라고 간단하게 해결해주셨다. 처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협업을 요청한 경험이었다.
협업을 요청하기 위해선 동일하게 데이터가 정리돼야 했기 때문에 정리하는 양식부터 언제 업무를 시작하고 예상시간은 얼마인지 까지 세세하게 고려해야 할 부분이 많았다. 이렇게 협업할 상대를 고려하고 업무를 재정의하면서 업무를 분담하는 것이란 비슷한 수준의 퀄리티를 생산할 수 있도록 업무를 규격화하는 것이란 것을 깨달았다. 추후 팀장으로서 팀원들을 이끌 때도 이런 방식은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
리더의 여러 자질 중에 '완전한 솔직함', '설득력', '일을 버릴 줄 아는 것' 세 가지를 중요한 자질로 꼽았다. 그중 팀원의 신뢰를 얻기 위해선 완전한 솔직함을 가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 팀에서 일하는 이상 서로 남남처럼 굴며 일할 순 없다. 팀원이 잘 못하는 부분이 있어도 팀원의 성장을 위한 밑거름으로써 솔직한 지적이 필요하다. 물론 이것이 '너의 성격이 문제야'라고 지적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성격은 고칠 수 없는 그 사람만의 고유한 것이기 때문이다. 대신 상대의 '행동'을 지적하면서 어떤 방식으로 개선해야 할지를 얘기하는 것이 팀원의 성과를 올리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