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각과 청산이라는 결말
2015년과 2020년은 동남아시아 OTT 시장에서 중요한 해입니다.
2010년대 중반, 넷플릭스(Netflix)가 미국 OTT 시장을 평정한 이후 본격적으로 글로벌 사업을 확대하자, 동남아 시장의 유력 사업자들은 자체 OTT 서비스를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15년에 네 개 서비스가 동시에 시작됐습니다. 싱가포르 싱텔(Singtel)이 주도하는 훅(HOOQ), 홍콩 최대 통신사 PCCW 주도의 뷰(Viu), 그리고 호주 캣차(Catcha) 그룹이 만든 아이플릭스(iflix)가 론칭했습니다. 라인TV 역시 태국에서 2015년 론칭되었습니다. 하지만 5년 뒤인, 2020년 3월 훅은 청산되었으며, 7월에 쿠팡에 인수되었습니다. 2020년 6월 아이플릭스는 텐센트가 인수했습니다. 라인TV는 2021년 12월 사업을 종료했습니다.
왜 동남아의 넷플릭스라 칭송받던 아이플릭스와 훅이 코로나가 시작된 2020년에 동시에 청산이나 매각되었을까? 사후적인 평가는 편향을 수반합니다. 하지만 태국에서 라인TV 사업을 바라보며 이를 해석할만한 몇 가지 관점이 생기기는 했습니다.
가격대가 잘못 선정되었습니다. 동남아에서 구독(Subscription-VOD, SVOD) 모델을 채택하기 위해서는 가격대를 잘 선정해야 합니다. 프리미엄 시장의 강자 넷플릭스를 기준으로 더 좋은 로컬 오리지널 콘텐츠를 수급하거나, 아니면 저가로 포지셔닝해야 합니다. 아이플릭스나 훅이 동남아로 사업 무대를 좁히는 순간 넷플릭스 대비 경쟁력이 뛰어나기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저가로 포지셔닝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하지만 두 개 사업자의 문제점은 넷플릭스와 가격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태국에서 넷플릭스는 월 99밧 (약 3,500원)이 기본이고 최대 419밧 (약 15,000원) 수준입니다. 반면, 아이플릭스는 3달러 (약 3,500원), 훅은 5달러 (약 6,000원) 수준으로 넷플릭스의 기본 가격대 대비 유사하거나 오히려 더 높은 수준입니다. 아무리 로컬 콘텐츠를 보강한다 하더라도 넷플릭스 대비 경쟁력이 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습니다.
SVOD 모델을 택하는 순간 니치 플레이어 전략을 펴야 합니다. 싱가포르를 제외하고 동남아 전체적으로 구매력이 저조합니다. 중진국인 말레이시아, 태국을 제외하고는 은행계좌 보유율과 신용카드 보급률이 현저하게 떨어집니다. 따라서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관점에서 동남아 시장 전체를 해석할 경우, 심각한 전략적 오류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최고 경영진이 어디에서 생활하는가가 시장에 대한 왜곡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명확한 확장 한계를 지닌 SVOD 모델을 택했음에도 아이플릭스와 훅은 매출과 사용자수 성장에 집착했습니다. 그 결과 통신사 제휴 밖에는 답이 없었습니다. 사업의 성공을 고객의 니즈 충족이 아닌 파트너사의 역량에 집중하는 순간 사업의 어려움은 배가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통신사와의 제휴 모델은 오히려 복잡성만 증대시킬 수 있습니다. 아이플릭스는 통신 사업자들에게 도매가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수익모델을 제공했습니다. 통신사 관점에서는 아이플릭스를 끼워 팔면서 이용자가 고가 요금제로 상품을 변경하거나 기존 고객의 이탈 방지를 막는 니즈가 존재했습니다. 아이플릭스는 제휴 모델을 통해 단기간에 20여 개국에 진출할 수 있었습니다. 훅은 싱텔과 제휴를 추진했습니다. 하지만, 통신사 제휴는 '독이 든 성배'와 같습니다. 제휴를 통해 단기간 매출 증대와 사용자수 증대를 가져올 수는 있으나 지속가능성은 항상 의심해봐야 합니다. 통신사와의 계약이 한순간에 틀어질 수 있고, 사용자들의 브랜드 로열티도 제고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통신사들 관점에서는 언젠가 본인들이 직접 하고 싶은 니즈가 강해질 것이고, 그 순간 계약은 종료되고 경쟁사는 늘어날 수 있습니다.
무료 광고 모델이 그나마 동남아에서는 답입니다. 하지만 수익성 관리는 면밀해야 합니다. 뷰는 애초에 하이브리드 모델을 택했습니다. 월 2달러의 저렴한 유료 모델도 제공했지만, 광고를 보면 무료로 콘텐츠 감상이 가능한 AVOD 서비스도 제공했습니다. 뷰는 콘텐츠도 차별화했습니다. 아이플릭스가 로컬 콘텐츠에 집중하고, 훅이 할리우드 콘텐츠에 집중했다면 뷰는 한국 콘텐츠를 활용해 명확하고 차별적인 포지셔닝을 잡아갔습니다. 라인TV는 태국에서 무료 광고 모델(AVOD)을 채택했고, 철저하게 광고 영업에 기반해 매출을 확대해 나갔습니다. 그나마 이 모델이 넷플릭스나 디즈니 플러스 대비 차별화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일 것입니다. 2018년 아이플릭스는 무료 광고 모델을 채택했고, 2019년 훅 역시 이 길로 들어섰습니다. 하지만 월정액 모델과 광고 모델이 혼재되면서 복잡성이 가중되었습니다.
[2020년 기준, OTT 시장 경쟁 구조]
이제 동남아 OTT 시장은 미국계 대형 사업자와 중국계 사업자가 끌어가고 있습니다. 각 나라마다 통신사 기반의 중소형 OTT 서비스가 존재하나, 콘텐츠를 늘리자니 수익성 압박을 심하게 받을 것이고 가격을 올리자니 넷플릭스와의 경쟁이 우려될 것입니다. 따라서 점진적으로 통신사 주도의 OTT 서비스는 쇠락의 길을 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편, 텐센트의 WeTV와 바이두의 iQ가 2020년을 전후로 동남아 시장에 뛰어들며 사업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다만, 2021년 중국 정부의 규제가 강화되며 바이두는 적자가 심화되고 있고, 텐센트 역시 규제 당국의 칼날을 정면으로 맞고 있어, 이들의 해외 사업이 얼마나 활발할지는 지켜봐야 하는 부분입니다.
이제 OTT 사업의 본질을 주목할 때입니다. 어찌 보면 본질은 단순합니다. 더 좋은 콘텐츠를 더 빠르게 수급하거나, 오리지널 콘텐츠를 직접 만들어 마케팅하고, 플랫폼의 효율성을 높여 화질과 안전성을 높이되 서버 비용은 최소화해야 합니다. 문제는 본질에 집중하면 집중할수록 수익을 내기가 어렵다는 점입니다. 콘텐츠 가격은 계속 올라가고, 마케팅은 치열해지고 있으며, 사용자가 늘수록 서버비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느는 역설에 빠지게 됩니다.
전 세계 OTT 사업자 중에 수익을 내는 사업자는 넷플릭스 정도입니다. 넷플릭스의 경우에도 북미 사업은 흑자이나, 그 외 해외 지역은 적자입니다. OTT 사업자들을 이를 '계획된 적자'라 포장하나, 막상 엑셀을 돌려보면 그 계획은 무기한으로 연기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OTT 사업의 본질은 넷플릭스처럼 단가가 높은 시장을 완전히 장악하거나, 아니면 밑 빠진 독에 더 빠른 속도로 투자금을 투입할 수 있느냐입니다. 아이플릭스, 훅, 라인TV 모두 두 개 옵션이 실행이 불가능했기에 청산 또는 매각의 방식을 택했습니다. 실상 OTT 사업 모델의 수익 가능성은 검증된 바가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훅의 2019년 매출은 전년도의 1,000만 달러(약 120억 원)에서 2,190만 달러(약 260억 원)로 두 배 이상 증가했지만, 손실 규모가 전년도의 5,660만 달러(약 680억 원)에서 6,250만 달러(약 750억 원)로 확대되었습니다. 한편, 아이플릭스는 인수가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수 천만 달러 수준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아이플릭스는 7차례의 투자 라운드를 통해 3억 4,800만 달러(약 4,172억 원)의 자금을 유치한 바 있어, 투자금도 회수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동남아시아 OTT 시장은 여전히 잠재력이 높습니다. <Media Partners Asia>에 따르면, 2020년 4월 기준, 영상 스트리밍 시청 시간이 1월 대비 약 2배 증가했습니다. 태국,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필리핀에서 시청자가 소비하는 모바일 영상의 분량이 580억 분에 달할 정도입니다. 다만 동남아 시장의 낮은 구매력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와 넷플릭스 대비 어떻게 차별화할 것인가의 전략적 질문이 남습니다.
OTT 사업은 누구나 탐내는 사업이나, 실상은 무지개 끝에 금 덩어리가 없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사업이기도 합니다. 한국이든 동남아든 OTT 시장이 어떻게 결론 날지 흥미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