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태국 이커머스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구글, 베인 및 테마섹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태국 이커머스 거래액은 2019년 50억 달러(약 6.5조 원)에서 2021년 210억 달러(약 27.3조 원)로 3년 만에 4배 넘게 성장했습니다. 아세안 국가 중에서는 인도네시아 다음으로 큰 규모를 보이고 있습니다.
태국 이커머스의 강자는 마켓플레이스형 대형 사업자들입니다. 쇼피와 라자다가 대표적인 강자이며, 그 뒤로 알리익스프레스와 JD 센트럴이 있습니다. 네 개의 서비스 모두 중국계 자본력이 뒷받침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쇼피는 텐센트계 자본이며, 라자다와 알리 익스프레스는 중국의 알리바바의 서비스입니다. JD 센트럴은 중국 징둥닷컴과 태국 현지 유통 리더인 센트럴 그룹 간 합작법인입니다. 징둥닷컴은 텐센트가 17%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가 2021년 12월 2.3%로 지분율을 줄인 중국의 대표적 쇼핑몰 사업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태국 이커머스 시장의 흥미로운 점은 이커머스 거래액의 50%가 소셜 셀러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 유저들은 페이스북, 라인이나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상품을 구매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비유하자면 인스타그램을 통해 판매하는 소위 '팔이 피플'이나 당근 마켓 등에서 개별 대화를 통해 거래를 하는 비중이 높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판매자와 구매자 간 대화를 통해 거래가 이루어지기에 C-커머스(Conversational Commerce)로 불리기도 합니다. 거래의 특성상 정확한 거래액을 산정하기는 어려우나, 시장의 전문가들은 전체 이커머스 거래액의 40%에서 많게는 50%까지도 추정하고 있습니다. (출처)
외국인들의 눈에 소셜 커머스는 낯설기도 하지만 불편해 보입니다. 세련되고 편리한 디지털 플랫폼에 익숙해져 있는 시각으로 보자면, 라인 메신저로 해당 서비스의 계정을 추가하고 그들과 대화를 통해 사이즈나 색깔 등 제품의 특성을 재확인하고 재고를 확인하고 가격을 흥정하는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태국에서는 많은 이들이 소셜 커머스를 편리하게 이용하고 있으며, 만족도도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실제 이용자들은 가격 정보를 바로 확인할 수 있고, 실시간 답변을 통해 궁금점을 해결하며, 리뷰를 통해 유저들의 피드백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습니다.
태국에서 소셜 커머스의 거래 비중이 높은 이유는 역설적으로 고객들 관점에서 여전히 이커머스에 대한 신뢰가 낮기 때문입니다. 태국은 2000년대 인터넷 혁명을 건너뛰고, 2016년 4G가 본격화되면서 모바일 혁명이 시작된 나라입니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 2000년경부터 약 20여 년간 축적해온 이커머스에 대한 고객 경험, 소비자의 신뢰, 제도적 보호 장치, 물류 인프라의 보완, 결제 안전성 등이 태국에서는 미미한 상황입니다. 따라서 즉각적 대화를 통해 셀러가 믿을만한지 확인하고, 사진 등을 실시간으로 체크하면서 불안감을 줄여가는 방식을 선호하는 것입니다. 여전히 현금 거래를 중요시하여, 계좌 이체 방식을 통해 입금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것도 소셜 커머스가 선호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태국의 소셜 커머스는 이제 시작 단계입니다. 셀러 입장에서 보자면 답장을 실시간으로 해야 하고, 대부분의 거래가 계좌 이체로 이루어지기에 입금 여부 및 금액을 확인하고, 해당 입금 건과 주문자의 이름을 대조하여 주소, 주문하는 상품이 무엇인지 수작업으로 확인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합니다. 소규모 거래일 때는 한두 명의 사람이 직접 응대할 수도 있으나 규모가 커지게 되면 감당 불가능한 수준에 이릅니다.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 가운데 사기도 종종 발생하고 있습니다. 2021년 한 해에만 디지털 쇼핑으로 파해 건수가 약 2만여 건에 달하고 있습니다. (출처)
이런 까닭에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는 소셜 셀러를 수용하기 위한 다양한 기능들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인스타그램은 인스타그램 릴스를 통해 쇼핑 기능을 도입하고 있고, 틱톡은 2021년 11월 쇼핑 기능을 론칭했습니다. 태국에서 라인은 소셜 셀러를 위한 라인 쇼핑의 기능을 고도화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향후 소셜 커머스는 고객과의 인터랙션을 어떻게 더 강화할 것인지의 ‘감성적 요인’과 고객/셀러 관점 편리성이 어떻게 더 강화될 것인지의 ‘기능적 요인’에 따라 진화 방향이 결정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소셜 커머스의 본질은 고객과 셀러 간 인터랙션을 통한 신뢰 관계 형성에 있습니다. 즉, 감성적 요인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대부분 고객들은 채팅창을 통해 질문을 한 후, 셀러의 응답속도를 신뢰의 척도로 삼습니다. 당근 마켓에서 셀러의 답변의 속도나 형태, 그리고 온도를 통해 셀러의 신뢰도를 확인하는 것과 유사한 형태입니다.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면 개인이 라이브로 물건을 홍보하고 판매하는 ‘라이브 소설 커머스’ 또는 ‘인스탠트 소설 커머스’로 진화 발전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한국에서는 이미 홈쇼핑이라는 익숙한 형태가 있으나, 태국에서는 인스타그램이나 틱톡 등 기존의 소셜 플랫폼이 해당 기능을 제공하면서 발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실시간으로 셀러의 표정과 목소리가 전달되고, 잠재 구매자의 질문에 실시간으로 답변하는 것이야말로 신뢰도를 제고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많은 팔로어수를 보유한 KOL 또는 인플루언서 기반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개별 브랜드들이 해당 인플루언서에게 제품 홍보를 부탁하는 형태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말하자면 TV 홈쇼핑이 모바일 플랫폼으로 진화된 형태일 것입니다. 태국 현지에서 틱톡과 라인 모두 라이브 커머스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이 이러한 방향성의 일환입니다.
나아가 대면을 통한 커뮤니티형 커머스도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사업 기회입니다. 방콕은 서울처럼 BTS와 MRT역 중심으로 상권과 주거 지역이 형성되어 있고, 한국의 아파트와 유사한 형태의 대형 또는 중소형 규모의 콘도 단지가 발달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당근 마켓처럼 셀러-구매자 간 대면을 통해 물건을 사고파는 ‘커뮤니티형 커머스’도 ‘인스턴트 소셜 커머스’의 일환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두 번째는 기능적 진화입니다. 고객 관점에서는 한국의 지그재그와 같은 애그리게이션(aggregation) 형태의 서비스 니즈가 증대하고 있고, 셀러 관점에서는 개별 고객의 주문과 결제, 배송 현황 및 재고 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백오피스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태국은 소셜 셀러의 천국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다양한 소셜 셀러가 생겼다 없어지고 있습니다. 투잡으로 소셜 셀러 사업을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입니다. 대화를 통해 물건을 사고 판다는 특성상 대부분의 거래 상품이 패션이나 라이프스타일 소모품이며, 대부분 2030 여성 고객들입니다. 특히 패션의 경우 대부분 고객들이 인스타그램에서 스캔하듯 사진들을 탐색하다 맘에 드는 스타일을 골라 쇼핑을 합니다.
따라서 다양한 패션 소셜 셀러들을 연령대, 취향, 원하는 스타일이나 색깔 등으로 구분해서 탐색하고자 하는 니즈가 존재합니다. 한국의 ‘지그재그’가 이런 콘셉트로 시작해 여성 고객들의 트래픽을 모으는 데 성공했듯이 태국 역시 이런 니즈가 클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한국은 카페 24와 같은 쇼핑몰 서비스가 존재하나 태국은 셀러들이 상품 정보를 인스타그램, 라인 오피셜 어카운트, 페이스북으로 나누어 업로드하고 있어 이를 한 곳에 모아 구현하기 위한 기술적 장벽을 넘어서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셀러 관점에서는 다양한 정보를 한 곳에 모아서 관리할 수 있는 기능이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라인, 페북 메신저, 인스타그램의 DM 정보를 모아서 관리할 수 있어야 하며, 서로 다른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간 고객 정보도 일치시켜야 합니다. 고객들이 주로 계좌이체를 통해 입금을 하기에 해당 정보를 빠짐없이 관리하는 것도 필수입니다.
태국의 소셜 셀러 대부분이 본인이 직접 이런 정보들을 관리하다가 규모가 커지면 아르바이트생을 모집해 대신 맡기게 됩니다. 따라서 아르바이트생이 갑자기 퇴사하더라도 모든 정보가 빠짐없이 관리될 수 있는 플랫폼에 대한 니즈는 커지고 있습니다. 중소사업자를 대상으로 한 네이버의 ‘스마트 스토어’나 카페 24가 좋은 예가 될 수 있으나, 다양한 플랫폼의 정보를 한 군데 모아야 한다는 기술적 어려움은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태국의 이커머스 시장은 소셜 셀러를 어떻게 포용할 것인가가 관건입니다. 쇼피나 라자다도 초기에는 가격이 높고 정형화된 가전이나 테크 상품을 주로 취급했다면 최근에는 소셜 셀러 모집을 통해 패션과 라이프스타일 카테고리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소셜 네트워크 플랫폼도 소셜 셀러를 더 양성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페이스북은 마켓플레이스 기능을 통해 해당 기능을 제공하려 하고 있고, 라인 역시 오피셜 어카운트나 라인 쇼핑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틱톡은 동영상 숏폼 플랫폼이라는 특성을 기반으로 라이브 커머스로 영역을 넓히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이 시장의 강자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기존 대형 쇼핑몰이 주도할지, 메신저 기반의 소셜 네트워크가 주도할지, 또는 한국의 당근 마켓, 지그재그, 카페 24와 같은 제3의 사업자가 혜성처럼 나타날지 기대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