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스 AI가 싱가포르로 이전한 이유

아세안은 미중 AI 경쟁의 대리 전쟁터가 되고 있습니다.

by 경영로스팅

2025년 4월, 실리콘밸리 한가운데서 뜻밖의 소식이 나왔다. 벤치마크 캐피털이 중국계 AI 스타트업 마누스 AI에 7,500만 달러(약 1,035억 원)를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미중 기술 경쟁이 날을 세우는 시점에, 미국 정부가 대중 투자를 엄격히 제한하는 상황에서 나온 결정이었다. 발표 직후 업계는 순식간에 들끓었고, 이 투자가 승부수일지 자충수일지에 대한 의문이 커졌다.

마누스 AI는 혜성처럼 등장했다. 불과 한 달 전인 3월, 중국 스타트업 버터플라이 이펙트가 세상에 공개한 ‘세계 최초 범용 AI 에이전트’를 자처하는 서비스였다. PPT 작성에서 주식 분석, 여행 일정 짜기까지, 마치 비서를 옆에 둔 듯 복잡한 일을 척척 처리했다. 심지어 AI 문제 해결력 평가인 GAIA 벤치마크에서 OpenAI의 Deep Research를 꺾고 1위에 올랐다. 마누스 AI는 ‘제2의 딥시크 모멘트’라고 불렸다.

시장 반응은 상상 이상이었다. 출시 사흘 만에 대기자가 200만 명을 넘었고, 서버는 과부하로 멈췄다. 중국에서는 베타 초대장이 10만 위안(약 1,890만 원)까지 치솟았다. 단순히 신기해서 써보려는 수준을 넘어, 이 기술을 당장 비즈니스와 일상에 투입하려는 열망이 그대로 드러난 셈이다.

벤치마크의 투자 발표는 마누스 AI의 몸값을 단숨에 5억 달러(약 6,900억 원)로 끌어올렸다. 불과 몇 달 전보다 5배나 높아진 수치다. 중국 AI 애플리케이션 스타트업 역사에서 전례를 찾기 힘든 기록이었다. 특히 공동 창업자 장타오는 텐센트와 바이트댄스를 거친 베테랑으로, 사용자 경험과 제품 완성도에서 남다른 노하우를 갖춘 인물로 알려졌다.

그러나 환호는 오래가지 않았다. 미국 재무부가 움직였다. ‘해외투자 안보 프로그램(Outbound Investment Security Program)’ 위반 여부를 조사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 제도는 2023년 바이든 전 대통령이 서명한 행정명령의 일부로, 미국 기업이 중국의 AI 같은 민감 기술에 투자하면 사전 통보해야 한다. 반도체, 양자기술, 군사 전용 가능성이 있는 AI가 주요 대상이며, 필요하면 투자를 제한하거나 막을 수 있다. AI가 전략 기술로 묶인 만큼, 벤치마크의 선택은 곧바로 국가 정책 위반 논란에 휘말렸다.

실리콘밸리 VC 업계에서는 이번 투자가 미국의 기술 경쟁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일부는 이를 중국 기술 생태계에 간접적으로 힘을 실어주는 투자로 해석했고, 전략적 판단보다는 위험 부담이 큰 선택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벤치마크는 마누스가 자체 LLM 모델이 아닌 래퍼 서비스(wrapper service)라는 점과, 모회사가 케이맨 제도 법인이라는 점을 근거로 비판을 반박했다.

논란이 커지자 버터플라이 이펙트는 6월 본사를 싱가포르로 옮기겠다고 발표했다. 장타오 창업자는 현지 컨퍼런스에서 “이제 본사는 싱가포르에 있다”고 선언했다. 이어 베이징 직원 대부분을 해고하고, 알리바바와의 중국어 버전 공동 개발을 중단했으며, 중국 내 서비스 접속도 차단했다.

싱가포르로의 이전은 곧 공격적인 채용으로 이어졌다. 연봉 130만 위안(약 2억 5천만 원)을 내걸고 세계 각국에서 AI 엔지니어를 모집했다. 중국에서 받던 연봉의 세 배에 달하는 파격 조건이었다. 정치적 부담을 줄이면서도 최고의 인재를 모으기 위한 노림수였다.

마누스의 행보는 다른 중국 출신 테크 기업들이 밟아온 길과도 겹친다. 셰인(Shein)과 틱톡(TikTok)도 싱가포르를 거점으로 삼았다. 이곳은 정치적 마찰을 피해 글로벌 자본과 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 드문 지역이다. 그렇다 보니 미중 양국 모두 싱가포르를 전략적 거점으로 두고 경쟁을 벌이고 있다.

마누스 AI를 둘러싼 이번 사건은 단순한 투자 이슈를 넘어선다. 중국은 딥시크 이후 AI 기술 개발 속도를 높이고 있고, 미국은 규제를 무기로 그 속도를 늦추려 한다. 특히 동남아는 양측이 영향력을 넓히기 위해 물밑에서 힘을 겨루는 대리전 무대가 되고 있다. 마누스의 싱가포르 이전은 아세안 지역을 중심으로 펼쳐질 AI 패권 경쟁의 서막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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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Ryan McMorrow, Nian Liu, George Hammond, and Joe Miller, “Manus and Benchmark: the AI deal that upset China and the US,” Financial Times, August 11, 2025.

** Hannah Wang, “Chinese firm behind AI agent Manus relocates to Singapore amid US chip curbs,” South China Morning Post, July 9, 2025.

*** “Manus Quickens Shift From China to Singapore as AI Race Heats Up,” Bloomberg, July 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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