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배드 지니어스>에 나타난 그릇된 욕망
태국인 사이에서 출신 대학은 간판이자 계층 이동 사다리입니다. 동문 출신끼리 앞서거니 뒤서거니 끌어주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다 보니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사교육 열풍이 강합니다. 성인 대상 영어 교육도 활발합니다. 입시 학원이 모여 있는 방콕 <파이타이 역> 주변을 보자면 한국인에게 매우 익숙한 풍경입니다.
태국 직원들과 친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출신 대학으로 대화가 이어졌고, 크게 다섯 가지 부류였습니다. 에이백, 쭐라룽겐, 마이돌, 타마셋 대학을 졸업한 경우와 소수지만 영국과 미국 등 영어권 국가에서 대학을 마친 경우입니다. 특이한 점은 쭐라룽겐이나, 마이돌, 타마셋 대학 출신들 상당수가 영국 대학에서 석사를 마치고 온 경우였습니다. 그들 사이에서 학연은 매우 중요한 대화의 시작점이었고, 이너 서클에 들어가기 위한 그들의 교육열은 한국에 비할 바가 없었습니다.
태국의 교육열을 단적으로 엿볼 수 있는 계기는 2017년에 출시된 영화 <배드 지니어스>였습니다. <배드 지니어스>는 태국의 교육열을 비꼰 컨닝 스릴러물이자, 태국 고등학생들의 시험 전장을 다룬 케이퍼 무비입니다. 영화는 시험 종료를 5분 앞두고 샤프심을 교체하는 순간 몰입도를 극대화시킵니다. 시험장의 좁은 책상을 무대로 학생들의 뒷거래와 음모를 긴장감 있게 편집했고, 태국의 전형적인 교육열과, 학교에 스며든 자본주의 논리와 불평등을 우회적으로 비꼰 수작입니다. 그 인기를 몰아 2020년 동일한 제목의 12부작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영화는 '흙수저'와 '금수저'를 대비시킵니다. 주인공이자 흙수저인 ‘린’이 아버지의 설득으로 명문 고등학교로 전학을 가면서 얘기는 시작됩니다. 전학 간 학교에서 절친이 된 ‘그레이스’와 돈이면 뭐든지 되는 다이아몬드 수저 ‘팟’의 제안으로 ‘린’은 부정행위의 세계로 빠져듭니다. ‘린’은 부자 친구들에게 돈을 받고 시험 정답을 공유해줍니다. 또 다른 흙수저 친구인 모범생 ‘뱅크’까지 부정행위에 얽히며, 태국의 교실에 스며든 자본주의 폐해와 교육 시스템의 붕괴를 흥미로운 시각으로 파헤칩니다.
영화 <배드 지니어스>는 컨닝이라는 소재로 스릴과 재미, 그리고 태국의 교육 시스템에 대한 비판을 동시에 선보이는 작품입니다. 영화감독인 <나타우트 폰피리>는 실제로 일어난 국제 시험 부정행위와 관련된 사건들을 모티브로 1년여간 각본을 쓰며, 태국의 부패한 교육 시스템과 계급 불평등 문제를 영화 속에 담아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2017년 뉴욕 아시안 필름 페스티벌 개막작으로 선정되고, 최우수 작품상, 아시아 라이징 스타상을 수상했습니다. 또한, 2017년 판타지아 국제 영화제에서 슈발누아 경쟁부문 감독상과 아시아 영화 관객상 금상을 수상했습니다. 무엇보다 Rotten Tomato에서 신선도 100%라는 점은 작품성과 흥행성을 동시에 잡았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영화 내내 라인 메신저로 소통하는 주인공들을 보면서 라인이 얼마나 대중적으로 파고들었는지 보는 것도 덤이었습니다.
태국의 교육열은 한국인이 보기에도 친숙합니다. 교육제도도 유사하고, 간판 삼아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열정도 유사합니다. 몇 가지 특징을 꼽아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태국은 한국의 교육제도와 유사합니다. 6-3-3-4년 구조로 한국과 동일한 구조입니다. 유치원 3년을 포함해 초중고 총 15년간 무상교육을 제공받습니다. 대학 진학률도 아세안 국가 중 상당히 높은 편에 속합니다. 2018년 월드뱅크 데이터 기준으로 태국은 동남아시아에서 싱가포르 다음으로 높은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그다음으로는 말레이시아 45%, 인도네시아 36%, 필리핀 35%, 베트남 29% 순이었습니다.
대학 서열화도 심합니다. 좋은 대학은 간판이자 계층이동 사다리로 작동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재수를 하는 경우도 많고, 대학 졸업 후 간판을 따기 위해 영국 등 대학에서 석사를 하는 경우도 상당수입니다. 태국 내에 170여 개 국립 및 사립 대학이 존재하고 있으며, 주요 대학으로는 출라롱콘, 마히돌, 탐마삿, 까사셋, 치앙마이, 수리나리, 송클라, 에이백 대학과 킹 몽콧 공과대학 등이 있습니다. 등록금은 학교별로 차이가 나며 국립대학을 기준으로 한 학기에 보통 20,000밧(약 70만 원)으로 정도입니다. 반면, 사립대학인 에이백의 경우, 한 학기에 약 55,000밧으로 약 200만 원 수준입니다.
이 중에서 출라롱콘 대학은 한국으로 비유하자면 서울대로 태국 내 가장 명망 있는 학교입니다. 방콕의 시암 역 부근에 있어 위치도 좋습니다. 탐마셋 대학과 까사셋 대학은 한국의 연대, 고대와 유사한 위상입니다. 마히돌은 가장 좋은 사립 대학교로 의대 분야가 특화되어 있습니다. 치망마이 대학은 치앙마이에 위치한 태국 북부 지역의 최고 명문대이며, 마지막으로 에이백 대학은 방콕 외곽에 위치하며 법학 대학을 제외하면 모두 영어로 수업을 진행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학비가 비싸서 중산층이 주로 많이 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라인이나 외국계 회사에 에이백 출신이 많았던 이유도 영어를 기본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태국 입시의 특징 중 하나는 대학마다 입학 사정 제도가 매우 복잡하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원하는 대학에 가기 위한 입시 전략이 중요합니다. 대입 제도는 크게 대학 자체 전형을 보는 방식과 국가시험 및 고교 내신 성적을 합산하여 전형하는 방식으로 구분됩니다.
첫 번째, 대학 자체 전형은 주로 국립대학교나 의과대학, 기술대학 등에서 자체적인 선별 기준을 정하여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고교 내신이나 국가시험 점수를 제출하라고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다만, 같은 학교라도 학과에 따라 제출 서류, 비중 등이 상이하여 매년 원하는 학과의 선별 기준으로 잘 확인해야 합니다.
두 번째, 국가시험과 고교 내신을 합산해 전형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고교 3년간 내신 성적을 20%로 반영하고, O-Net을 30%, A-NET을 50% 반영합니다. A-NET은 다시 GAT 시험과 PAT 시험으로 구분됩니다. A-NET 내 GAT 및 PAT 시험 성적 배분률은 대학에서 결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입시철만 되면 학생들이나 학부모가 각 대학의 입학처에 입시 요강을 확인하려고 전화를 수시로 하고 있습니다.
1/ 고교 3년간 내신성적(GPA): 20%
2/ O-NET(Ordinary National Educational Test): 30%
- 시험과목 : 태국어, 수학, 과학, 사회․종교․문화, 영어 등 5개 과목
- 시험기간 : 년 1회 시험(2월 말 또는 3월 초)
3/ A-NET(Advanced National Educational Test) : 50%
- 연 2회 시험(3월, 10월) 기준 좋은 성적 선택 가능
- GAT 시험과 PAT 시험으로 구분
3-1/ GAT(Genaral Aptitude Test) : 10-50%
- 시험과목 : 태국어 2, 수학 2, 과학 2, 사회, 종교, 문화 2, 영어 2 중 5개 과목 선택
3-2/ PAT(Professional Aptitude Test) : 0-40%
- 시험과목 : 수학, 과학, 공학, 건축학, 교육학, 예술 분야 중 1개 분야와 외국어(불어, 독어, 일어, 중국어, 아랍어, 발리어) 1개 과목 선택
그러다 보니 사교육 열기가 높습니다. 학교 선생님이나 대학생에게 과외를 받는 경우가 상당수이기도 합니다. 스타벅스와 같은 커피숍에서 오후에 과외를 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고, 학원도 성행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이전만 하더라도 태국 교육 사업은 오프라인 중심이었으나, 코로나 시기에 온라인 강의 시장 역시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오프라인 학원은 온디맨드(OnDemand)와 엔컨셉(EnConcept) 등이 있습니다.
하지만, 교육열에 비해 학업 성취도는 매우 낮은 편입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도로 진행하는 국제학원 성취평가(Programme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 PISA) 결과 매번 낮은 수준으로 측정되고 있습니다.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PISA)는 만 15세 학생들의 수학, 과학, 읽기의 성취 수준을 평가하여 국가별로 성취도를 비교하기 위한 지표입니다. 태국은 2018년 결과에서 수학은 78개국 중 57위, 과학은 78개국 중 53위, 읽기는 77개국 중 66위를 기록했습니다.
태국 대학의 글로벌 순위도 하락하고 있습니다. Round University Ranking (RUR Ranking)는 전 세계 700개 대학을 교습, 리서치, 국제적 다양성, 재무적 안전성 등 4개 국면에서 매년 평가하여 순위를 매기고 있습니다. 마이돌 대학은 2011년 296위에서 2021년 414위로 하락했습니다. 프린스 송클라 대학은 537위에서 647위로 하락했습니다. 탐마셋 대학은 538위에서 591위로 하락했으며, 킹 몽콧 공과 대학은 544위에서 771위로 하락했습니다. 상위 대학 중 출라롱콘만 389위에서 325위로 상승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어 실력 역시 매우 저조합니다. 스위스 교육기관 에듀케이션 퍼스트가 2019년 전 세계 100개국 대상으로 영어 실력을 평가한 결과, 태국의 영어능력지수(EPI)는 47.62로 100개국 중 74위를 차지해 ‘매우 낮음’ 평가를 받았습니다. 주요 아시아 국가 중 영어 실력이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를 받은 국가는 싱가포르(66.82)였습니다. 이어 필리핀(60.14), 말레이시아(58.55), 홍콩(55.63), 인도(55.49), 한국(55.04), 대만(54.18), 중국(53.44), 베트남(51.57), 일본(51.51), 인도네시아(50.06), 등이 다음을 차지했습니다.
그래서 주로 영어를 배우기 위해 영어권 대학으로 유학을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2020년 기준 한해 유학생은 약 15,800명으로 추산되며, 영국은 6,785명으로 43%를 차지했습니다. 뒤를 이어 미국은 37%, 호주는 16%, 캐나다는 4%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태국의 사교육 열풍과 영어에 대한 열기는 영화 <배드 지니어스>에서도 드러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좋은 대학을 들어가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은 과장되었을지언정 태국 교육의 현재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태국 교육의 구조적 모순은 사업 관점에서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앞으로도 태국 교육 시장에서는 인강을 비롯한 사교육과 성인을 대상으로 한 영어 교육이 더욱더 성장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국과 태국의 교육열은 묘하게 궤를 같이 합니다. 영화 <배드 지니어스>에서 나온 미국 유학 시험 부정행위는 실제 2009년 한국인 강사가 호주에서 저지른 일을 모티브로 했습니다. 영화 속에서 호주 시드니에서 먼저 문제를 푼 주인공이 시차가 있는 태국 부유층 자제들에게 스마트폰 메신저로 정답을 전송하는 부정행위는 실제 한국인 사례를 차용한 것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그 한국인 강사는 호주가 아니라 태국으로 가서 문제를 풀었고, 미국 동부에 거주하는 학생들에게 이메일로 답안을 전송하는 방식을 택했다는 점입니다. 영화 <배드 지니어스>가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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