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열린다고? 그러면 열릴 때까지 두드려라!
Java가 뭐야? 자바 커피인가? 아님 잡아보라고?
전산 프로그래밍 언어 중에 Java라는 신생 Programming Language가 나온다. 1991년 Sun Microsystems의 ‘제임스 고슬링’에 의해 Oak라는 신생 프로그래밍 언어 시작해서 1995년 Java라는 현재 명칭으로 변경된다. 프로그래밍 언어는 컴퓨터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코딩할 때 사용하는 컴퓨터 언어를 말한다. 휴대용 기기와 같은 다양한 환경의 CPU들에서 동작할 수 있도록 크로스 플랫폼을 지원하는 코드를 만들게 되는데 이게 바로 Java이다.
당시 C 언어가 한창이었는데 기존 ‘순서 정열 언어’와는 달리 ‘객체 지향 언어’라고 해서 객체 단위로 기능을 만들어 놓고, 필요할 때 불러다 쓰는 구조를 가진다.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레고 블록'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동그라미 세모 네모 긴 거 짧은 거 다양한 색깔의 블록들을 미리 만들어 놓고, 집을 만들고 싶으면 거기에 적당한 블록들을 가져다 만드는 것과 같다. 블록들을 잘 조합하기만 하면 로봇도 놀이터도 만들 수 있다. 객채라 해서 미리 만들어놓은 모듈을 필요할 때마다 불러 쓰는 효율적인 구조를 가진 태생 덕에 많은 개발자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던 시절이다.
그간 IT 와는 전혀 관련 없이 살아온 30년, 새로운 시도는 내 인생 최대의 반전을 가져온다. Java는 Sun Microsystem이라는 회사의 것으로 썬교육센터에서 Java를 가르치는 공식 강사가 된다. 언급했듯이 그 당시 C가 한창이었고 Java가 뭐야? 하던 시절에 ‘뭔가 있어 보이는 구조’를 가졌던 태생상 Java는 빠르게 개발자들의 관심을 타기 시작한다. 이런 상황에서 그 당시, 우리나라에 열댓 명 밖에 안된다는 Java Programming Certification은 내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다.
썬 교육센터의 공식 강사가 되는 인터뷰 과정부터 ~ 개발 전문가들 대상으로 하는 비전문가 출신의 좌충우돌 강의 과정까지, 생생한 이야기들이 한 바가지다. 개발 귀신들 앞에서 새로운 언어일 뿐 개발경험 1도 없는 강사가 가르친다는 건 정말이지 살 떨리는 과정이다.
까만 밤 하얗게 지새우기가 수도 없던 서른 즈음 어느 날, 내 머리 정수리에 흰머리가 쫙 올라오는 걸 경험을 한다. 스트레스 지수로 친다면 백점 만점에 백점, 만점 받았던 시절이다 분명! 칼만 안 꽂았지 비장한 밤을 보내고 매일 아침 강의하러 나가는 가슴은 정말이지 쫄깃쫄깃했다! 그렇게 심장 쫄깃해지기 2년, 덕분에 내 수만 개의 세포들이 하나하나 살아 숨 쉬는 걸 느낄 수 있게 된다. 이때 세포 숫자를 세어본 초능력 경험 덕분에 지금까지도 남들보다 조금은 큰 멘털 키를 갖게 되었다는 게 아주 개인적인 강력한 믿음이다!
만 2년 강의 끝에 실무경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가을 초입에 잘 나가는 벤처사 과장님 한분이 나를 찾아온다. 당시 개발자였던 내 남자 친구 소개를 받고 찾아왔다 한다. 영업대표라는 직함을 건네며 당당하게 손을 뻗어 악수를 청하는 그녀 모습은, 한눈에 봐도 자존감이 무르익었음을 알 수 있다. Java 강의가 있던 기간이라 길지 않은 대화를 마치고, 벤처사 대표님 같이 한번 뵙자며 여의도 사무실 방문을 초청받는다.
2주 후 약속한 날 강의를 마치고 강의실을 미끄러지듯 빠져나와 택시에 올라탄다. 충분히 가고도 남을 시간이었는데 웬일? 도로에 서서 꼼짝을 안 한다.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금요일임을 간과했던 것이다. 이미 시간은 다가오고 급한 마음으로 택시 밖을 내다보니 퀵 아저씨가 빈 오토바이를 부릉대고 있다. 생각한 겨를 없이 바로 내려 아저씨한테 사정사정하자니, 퀵서비스는 사람은 안태운다며 짐만 배달한다는 것이다. 책임 안 져도 좋으니 데려다만 달라 사정하고 바로 올라타 쌩~ 여의도에 도착한다.
시계는 벌써 30분쯤 지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꾸벅하면서 한 손으로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간다. 인터뷰 온 사람 흩어진 머리 보랴, 퀵서비스 타고 온 사정 들으랴 다들 한바탕 웃었다. 덕분에 화기애애해지자 짐짝마다 안 하고 적극 데쉬한 나의 용기를 칭찬해주었다. 따신 커피를 앞에 두고 올려다본 사장, 의외로 젊었고 훤칠한 외모에 온화한 얼굴이었지만 압도적인 포스가 느껴졌다. 이야기가 코로 들어가는지 귀로 들어가는지 그렇게 여의도 벤처회사 인터뷰를 마쳤다.
강의하면서 필드 경험에 대한 갈증은 있었지만, 뭐에 홀린 듯 그렇게 나의 벤 체사 입사 역사는 써졌다. 여러 사람한테 홀린듯한데 그중 제일은 영업대표라는, 초지일관 당당한 과장님! 그녀의 당당함이 보기에 참 좋았더라! 금융 영업대표로 시작한 그녀는 오래지 않아 금융본부장 그리고 곧 새로운 사업담당 인원으로 승승장구한다. 보고 배울 다양한 롤모델이 많은 회사, 크지 않지만 열정이 가득한 회사로 다이내믹한 내 체질에 딱 맞았다.
그렇게 3년 차 되던 어느 날, 내 안에 있는 나의 소명에 이끌러 사장님 방으로 찾아가던 날을 나는 똑똑히 기억한다. 영업대표를 시켜달라! 며 미리 준비해 간 종이를 한 장 건네고는 침묵을 기다린다. 두드리라 그리하면 열릴 것이다! 그렇게 나는 꿈꾸던 영업대표가 되었다. Java 강의 2년과 Pre-Sales 기술 영업 3년을 통해서 단련된 나의 설득의 기술이 한몫, 빛을 발하게 된다. 내 마음의 롤 모델을 그리며 그렇게 하루하루 새로운 도전을 통해서 키 크는 성장을 경험하게 된다.
고사 빠! 고객과 사랑에 빠진 영업이라는 내 별명이다. 사람들은 내가 고객 이야기만 해도 눈에서 하트가 뽕뽕~ 나온다고 알려줬다. ‘영업대표’가 천직이라고 침 튀고 이야기하는 애는 너뿐이라며, 고객 생각만으로 벅차 하는 나를 보고 주변에서 붙여준 별명이다. 어느 날은 여직원들끼리 이런 투표를 했다 한다. 우리 회사에서 ‘보험’을 팔면 누가 제일 잘 팔꺼같어? 모두 입을 모아 두 명을 꼽았는데 그중 하나가 나였다고 한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나는 놈 위에 좋아서 하는 놈! 좋아하는 놈 못 말린다!
외국계 회사 가겠노라는 이야기를 노래처럼 하고 다녔다. 내가 다니던 벤처사 사장님도 다 아신다 내가 글로벌 회사에 가고 싶어 하는 것을. 꿈은 이루어진다는 것을 굳게 믿는 1인으로, 내게 드디어 외국계 회사인 C사, 입사할 수 있는 행운이 찾아온다. 고사 빠는 그렇게 첫 글로벌 IT 회사에 입사하게 되고 좋아서 죽겠다며 이름도 ‘Haha’로 지정한다. 설명이 필요 없어 좋고 모두들 내 이름을 기억하니 또 좋다! Everybody knows me! It's me~. Haha is laughing sound like me!
외국계 회사에서 영업대표에게 Quota란? 일단 불가능한 숫자를 준다고 보면 틀리지 않다. 잘해도 못 해도 늘 목에 차는 목표금액, Quota를 주게 마련이다. 첫 글로벌 회사의 영업대표 5년 이력 중 마지막 2년은, 최고의 성과를 매해 갱신하게 된다. 승승장구란 이런 것인가? 전도하는 내 마음에 + 시장의 트렌드가 맞아떨어지니 폭발적인 성과가 나왔다. 하늘에 절대 존재가 계시다면 드디어 나에게도 기회를 주시 나부다! 선택받은 느낌이 바로 이것일 것이고 영업대표로서 380%라는 어마어마한 성과를 내는 멋진 경험을 얻게 된다.
C사의 어마어마한 성과를 등에 업고 글로벌 No.1 IT 회사로의 이직이 순탄하다. 입사해보니 정작 밖에서 생각하던 그런 꽃놀이패는 아니다. 그렇지만 분명 아성에 걸맞은 훌륭한 회사임을 기업문화와 체계 등 다양한 곳에서 느낄 수 있게 된다. 정말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처음에 하늘을 날던 나의 오만도 좌충우돌, 덕분에 겸손해지는 과정을 겪게 된다. 최고의 회사에서 뼛속까지 겸손한 영업으로 다시 태어난다!
글로벌 No.1 IT회사, 이 회사를 먹여 살리는 대표상품이 아닌 후선 상품을 담당하다 보니, 이래 저래 치인다. 시집살이 3년을 보내듯 그렇게, 조용해지는 과정에 자숙하는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3년 차 되던 해 내 색깔을 찾겠다고 ‘영업대표’로 직무를 전환하겠다 마음먹는다. 그 길로 대기업 총괄 본부장께 상담을 청한다. 예전 이력을 물으시는 본부장님 말씀에 기다렸다는 듯이 준비해 간 리스트를 펼쳐 놓고 강하게 어필한다. 당시 독수리 여권을 가진 본부장께서는 ‘여자 영업대표’에 대한 선입견은 다행히 없는 듯했고 ‘자리를 적극 찾아보자’ 하셨다. 감사하게도 그 후로 영업대표 자리가 논의될때마나 대상 중 한 명으로 지목해주셔서 몇 차례 시도 끝에 드디어 ‘영업대표’라는 직무로 전환할 수 있게 된다.
첫 번째 시도는 흔히 ‘꽃놀이패’라 이야기하는 S사 담당 영업대표 자리기에 뒤도 안 돌아보고 적극 들이댔다. 이 고객사 출신이거나 S사 경험이 많은 외부인을 선호한단다 조용히 마무리되었다.
두 번째는 새롭게 부임한 공공 본부장께서 국방담당 영업대표를 여성으로, 발상의 전환을 하신단다. 그러나 한적극 하는 여성으로 그 시장의 보수성을 채 인지하지 못하고 들이댔었다 몇 년 전. 그렇게 제대로 깨지고 다짐했다 나는 다시는 공공영업을 하지 않겠노라고! 이 경험 덕에 오래 생각할 여지없이 정중히 고사했고 빠르게 마무리되었다.
세 번째 시도는 원래 내 구역였던 제조영업팀에 특별한 면접도 없다시피 전격 발탁되었다. 전 C사에서 P사를 담당하는 영업대표이던 시절이었다. P 고객사의 차세대 수준의 대형 프로젝트가 있었고 다양한 벤더들과 협업하는 상황이 생겼고 그때 각 벤더 대표로 참석해서 뵈었던 경험으로 구면인 박상무 님이 리더다.
내가 입사 이후에도, P사의 CIO를 필두로 주요한 분들과 내가 아직 친분을 유지한고 있다는 걸 알고 있던 박상무께서 P사 조직에 대해서 내게 물은 때가 있었다. 지인으로부터 늘 최신 버전으로 공유받고 있던 조직도를 펼쳤고, 내부의 역학 관계까지 상세하게 설명드렸다. 지금까지 파악하지 못했던 내용으로 처음 들으신다며 상당히 칭찬해주신다. 이렇게 별도 인터뷰도 필요 없다! 되고 부서 전입이 확정된다. 글로벌 No. 1 IT 회사의 영업대표가 되고 나와 고객 모두 WIN WIN 하는 소명을 꽃피우게 된다.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안 열린다고? 그러면 열릴 때까지 두드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