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책에 손이 잘 안 간다. 한때는 카페에서 책을 읽는 것이 낙이었고, 출퇴근하며 전자책을 보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요즘엔 읽을거리도 많고, 볼 거리도 많다. 정치, 경제, 사회, IT 뉴스 기사와 각종 블로그도 봐야 하고, 틈내서 영화와 드라마도 챙겨봐야 한다. 하지만 나만 이렇게 핑계를 대는 건 아닐 거다. 성인의 절반이 1년에 책 한 권을 읽지 않는다고 하니 말이다. 그나마 읽는 사람들의 독서량도 점차 줄어드는 추세고.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왠지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선다.
식당에서 시끄럽게 울던 아이는 스마트폰으로 틀어준 영상을 보고는 금세 조용해진다. 눈을 떼지도 않는 걸 보니 아주 푹 빠진 것 같다. 하지만 영상과 달리 책은 쉽지 않다. 책을 읽으려면 글자부터 배워야 할뿐더러, 책을 읽는다는 건 단순히 글자를 읊는 것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글자라는 기호를 읽으면서 그 안에 든 의미를 파악하고, 글로써 묘사된 내용을 모두 이미지로 상상한다. 어릴 적 내가 셜록 홈스 전집을 재미있게 읽었던 건, 단순히 이야기가 재미있어서만은 아니었다. 홈스와 왓슨 콤비의 활약상을 머릿속에서 상상하며 그려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TV는 정말 바보상자일까? 실제로 하루 3시간 이상 TV를 본 사람들의 인지 처리 능력이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하지만 요즘 영화를 보고 글을 쓰면서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느낀다. 오히려 영상은 책에서 한두 문장으로 쉽게 표현할 수 있었던 내용을 시각적 청각적 이미지로 복잡하게 표현해낸다. 우리는 그 안에서 언어적 표현 외에도 비언어적 표현과 상황적인 맥락을 통해 등장인물의 내면 심리를 상상하고, 더 나아가 영화적 비유와 상징으로 함축되어 있는 감독의 메시지를 파악하기 위해 영상을 해석하기도 한다.
책이든 영상이든 그것은 매개체다. 만화나 오디오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이를 통해서 지식과 통찰을 얻기도 하고, 감동과 영감을 얻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이를 받아들이는 태도다. 책을 아무리 많이 읽는다 하더라도 내 것으로 소화시키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우리가 그것을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인다면, 어떤 미디어든 간에 도움이 안 되긴 마찬가지다. 오히려 특정 미디어에 친숙해지는 것은 표현 방식에 영향을 주는 것 같다. 책을 많이 읽으면 글을 쓰고 싶고, 영화를 많이 보면 영화를 찍고 싶어지는 것처럼. 그니까 글을 잘 쓰고 싶은 나는, 핑계 좀 그만 대고 책을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