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사라졌다

by 대한극장옆골목

조용한 밤. 침대 위에 가만히 누워있자면, 낮 동안 가라앉았던 생각들이 슬며시 떠오른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러다 보면 가끔은 제법 괜찮은 글감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때부터 오던 잠은 달아나고, 나는 글을 어떻게 쓸지 고민에 빠진다. 한참을 생각해서 글 한 편의 흐름을 다 짜놓고 나면,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린다.


아. 캄캄한 머릿속을 아무리 뒤져봐도 찾을 수가 없다. 생각의 흐름을 되짚어봐도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금방 돌아올까 싶어, 눈 감고 기다려봐도 소식이 없다. 아까 생각이 났을 때 바로 메모해 둘걸.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분명 나로부터 나온 생각인데, 대체 어디로 가버린 걸까.


한편, 오래된 기억이 불현듯 떠오를 때도 있다. 그것도 정말 사소한 기억들. 지나가다 본 간판이나, 어느 식당의 사장님 얼굴과 같이. 이게 내 머릿속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어색할 만큼,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것들이 뜬금없는 순간에 돌아온다. 그 사장님의 얼굴은 얄미울 만큼 선명하다.


사실 나를 떠난 생각은 갈 곳이 없다. 잠시 돌아오는 길을 잃었어도, 지름길을 찾다가 삼천포로 빠졌어도 그 길은 결국 나에게로 향하는 일방통행이다. 내 무의식 속 어딘가에서 잠을 자다가, 한참 뒤에 깨서 뻔뻔한 얼굴로 다시 돌아올 거다. 그때는 아마도 내가 좀 더 글을 잘 쓰게 되었을 때, 그 글감과 좀 더 어울리는 내가 되었을 때겠지. 이미 밤이 깊었으니, 그렇게라도 믿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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