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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브 Nov 10. 2019

어쩌면 그것도 여유가 있어서



쿨한 게 싫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평균보다 조금 더 많은 다정함을 타고 난 덕분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내가 손을 뻗지 않으면 그대로 관계가 끊어질 것 같다는 두려움. 가족이나 연인에게 문득 사랑한다고 말하거나 상처를 받은 친구는 물론 내게 상처를 준 친구에게도 손을 내미는 건 내 쪽이었다. 손발이 오그라들거나 자존심을 걱정하기엔 스스럼없이 건넨 손길 이후 밀려오는 따뜻함, 나를 바라보는 신뢰의 눈빛이 간절했고 그건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기도 했다. 영화 <우리들>에서 ‘선’은 자신을 때린 친구와 같이 놀았다는 동생 ‘윤’의 말에 왜 돌려주지 않았냐며 나무랐다. 그런 누나에게 ‘윤’은 천진한 얼굴로 말한다. “그럼 언제 놀아? 난 그냥 걔랑 더 놀고 싶은데.” 5살 아이의 성숙함에 성인 관객들이 깨달음을 얻는 명장면이  나는 서러웠다. 똑같이 때리면 상대는 떠났고 내가 붙잡아야 겨우 유지되곤 했던 지난 관계들이 떠올라 나를 아프게 했다. 쿨하고 싶어도 쿨할 수 없는 존재, 언제나 상대보다 더 많이 상대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무한한 애정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사랑의 울타리 안에 있는 건 생각보다 더 행복하다는 사실을 (지금은 신랑이 된) 남자 친구를 만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온전한 나의 편이 생겼다는 생각에 조금씩 여유가 생겼다. 내가 느끼는 이 행복을 주위 사람들도 느끼길 바랐고 더욱 사랑을 퍼줄 수 있었다. 그러나 두려움이 사라지자 그동안 모른척해오던 감정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당시 가깝게 지내던 친구들은 대체로 감정 표현이 서툴거나 자주 숨어 버리는 성향이 있었다. 편지에 가까운 메시지를 보내고 전화를 하고 마음의 동향을 살피며 기다리는 일. 묵묵부답이나 배려 없는 대답에 또다시 상처를 받아도 남자 친구에게 풀며 그 시간을 견디곤 했고 한참이 지나서야 조심스레 내밀었던 손을 찾는 친구를 다시 맞이하는 일. 이 일련의 과정에 피로감이 쌓이기 시작했다. 쏟았던 마음만큼 서운함은 배가 되었고 이런 일이 반복될수록 화가 났다. 결국 나는 더 이상의 따스한 존재가 그 인생에 없기를 바라며 한동안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었다가 회의적인 태도로 모든 걸 끊고 돌아섰다. 그게 내가 관계를 정리하는 방식이었다. 잘못은 언제나 상대 쪽에 있었고 상대는 다정한 나에게 버림받은 거라 스스로 정의했다. 한동안은 상대가 나만큼 고통받기를 바랐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후련한 건 내 쪽이었기에 그 역시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최근 몇 가지 일들을 겪으며 이러한 나의 정의가, 관계에 있어 한쪽만의 일방적인 잘못은 존재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정말 너무도 인정하기 싫지만, ‘상대가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라는 게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건 뼈를 깎는 다이어트도, 알쏭달쏭한 어른들의 언어도 아닌 바로 청첩장을 전하는 시간이었다. 꼭 축하받고 싶은 사람들을 제외하고 생각지도 못하게 먼저 축하를 해주며 청첩장을 기다리겠다고 한 분들에게까지는 감사를 표하고 싶었다. 지금은 퇴사했지만 함께 근무하는 동안 종종 따로 자리를 가지며 애틋하게 '꼭 청첩장을 달라’ 던 직장 동료들이 그 시작이었다. 원래의 나라면 당연히 하객 리스트에 없었을 이들이지만 그때의 마음이 고마워 기쁜 마음으로 카톡방을 만들고 조심스레 장문의 메시지와 함께 청첩장을 주고 싶다고 했다. 읽음 표시가 사라지고도 한참 뒤 축하는 둘째치고 곤란한 말투로 주말에 바빠 상황을 알 수가 없을 것 같다는 메시지들이 올라왔다. 당황스러웠다. 내 결혼 소식이 그들을 불편하게 했다는 생각에 무안해졌고 결혼 준비 스트레스 때문인지 쉽게 분노가 치밀었다. 원래 줄 생각도 없었는데 부탁한 게 고마워서 연락했더니 뭐 반응이 이 따위지. 구걸하는 듯한 상황을 견딜 수가 없어진 난 ‘그래요. 다음에 연락할게요'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미련없이 카톡방을 나왔다. 다음 날 그 방에 있던 (아직 함께 근무 중이던) 동료가 혹시 어제 카톡방을 나갔느냐고 물었고 잠시 망설이다 솔직하게 말했다. 다들 시간 내기 어려운 것 같던데 아쉬운 소리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고. 동료는 내가 나가고 난 뒤 밤늦게 나를 신경 쓰는 메시지들이 올라왔다며 카톡방을 보여주었다. 다들 옮긴 직장이 몹시 바빠 버거워 보였다는 말과 함께.  다음 날엔 남자친구의 지인에게 청첩장을 주는 자리가 있었다. 몇 개월 전 결혼한, 전 직장의 동료였는데 선뜻 축하 연락을 해준 것이 고마워 겸사겸사 부부 모임을 하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1시간이나 늦은 것에 대한 사과 한 마디 없이 시작해 서로의 이름도 모른 채 (동료의 와이프와 나는 이 날 서로를 처음 봤다) 자리는 끝이 났다. 어렵사리 건넨 청첩장은 '와' 한 마디와 함께 1초 만에 가방에 넣어졌고 우리의 결혼에 전혀 관심이 없는 그들은 서로가 얼마나 로맨틱한지, 신혼 여행지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했다. 생애 가장 무의미한 2시간이었다. 돌아오는 내내 남자 친구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도대체 우리에게 관심도 없는 사람들에게 왜 시간 낭비를 하는 거냐며, 지난밤의 속상함까지 담아 마구 쏟아 냈다. 나는 정말이지, 이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렇게 고민하며 청첩장 리스트를 만든 건데. 더 이상 이런 상황이 싫어 그동안 그렇게 매몰차게 관계를 정리해 왔던 건데. 흥분한 내게 남자 친구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한쪽 집안의 완강한 반대가 있었고 힘겹게 결혼에 골인한 분들이라고. 결혼의 의미가 남달라 우리에게도 말하고 싶었을 거라고. 그래서? 그게 뭐? 양가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하는 상황이 부러워 뒤틀린 태도를 보였다는 건가? 우리에게 어떤 힘듦이 있었는지 그들이 알까? 개인적인 이유로 무례한 행동을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을뿐더러 설사 이해를 한다 해도 그건 그저 이해의 탈을 쓴 동정 그 이상 이하도 아니지 않은가.






인생의 마지막 친구라고 믿었던 그 사람을 영원히 지우기로 마음먹었던 그때, 나는 그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진심을 다했다. 부담을 느끼지 않을 선을 지키며 꾸준한 연락을 했고 동굴에서 가끔씩 나올 때를 기다렸고 늘 그 자리에 있을 거라는 믿음을 주었다 - 고 생각한다. 기억이 맞다면 당시의 그는 쉽지 않은 상황들이 겹치며 지친 상태였다. 아무리 조심한다 해도 상처는 생기고 관계는 어긋날 수 있다는 걸 안다. 그렇다고 해도, 그러한 상황이 누군가에게 함부로 대할 수 있는 권리가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힘들다고 해서 소중한 이에게 무례하게 굴 자격이 주어지는 건 아니니까. 분명 그건 이기적인 거라고 생각했다. 평소와 달리 차갑고 시큰둥한 반응, 좀처럼 속시원히 말하지 않는 이유. 스스로 내린 정의처럼, 상처를 받은 건 무조건 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데...  정말 그랬을까.  시간이 흐른 뒤 그 순간을 복기할 때면 자꾸만 질문 하나가 맴돌곤 한다. 정말 그때 나는 그 친구를 이해했던 걸까. 오랫동안 가까이 지내며 시간을 공유한 사이인데 평소와 다른 행동을 보였다면 평소와 다르게 접근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상황이 만든 일시적인 행동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한 건 아닐까. 가장 도움이 필요할 때 내 상처에 연연하며 잠깐의 기다림조차 허용하지 않았던 나야말로 진짜 이기적인 건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상대의 힘든 상황을 고려해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피하고 싶었던 태도였기 때문이었다. 상대의 상황을 안쓰럽게 여기는 건 그도 원하는 바가 아닐뿐더러 오만한 태도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이 관계에 연연하기엔 나 역시 많이 지쳐 있었다. 어쩌면 마음 한 구석, 이미 안전한 울타리에 안착했으니 이 관계가 아니어도 괜찮다고 - 실은 그렇게 간절하지 않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먼저 다가서는 것도, 먼저 돌아서는 것도 여유 있는 쪽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된다면 어디까지가 배려이고 어디서부터가 동정인지. 그때도 지금도, 나는 여전히 혼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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