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뚜벅 걷다, 보다, 느끼다

by 늘보

1. 뚜벅뚜벅 걷다, 보다, 느끼다


나는 무식하게 꾸준하고 요령이 없는 사람이다. 가끔 이런 나를 답답해 하는 사람들도 있고 스스로도 답답할 때도 있다. 앞뒤가 꽈악 막힌 것은 아니지만 고지식한 면이 군데군데 묻어있다. 21세기에 사는 사람이지만 기계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글을 쓰지만 손으로 쓰는 것을 더 좋아한다.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자동차를 이용하는 것을 더 편해하기는 하나 가끔은 걷기 시작하면 목적지가 나올 때까지 힘들어도 시간이 오래 걸려도 끝까지 걸어간다. 할말이 있어도 머리 속에는 온갖 생각들이 있으나 입으로 막상 나오지 않고 도로 삼키는 사람들처럼 가끔 답답하다.


시원시원하게 뻥 뚫린 사람이 아니라 그래도 다행이다. 거북이처럼 늘보처럼 느려도 조금씩 앞으로 걸어가고 있으니 다행이다. 뚜벅뚜벅 걷다 보면 그래도 주위를 둘러볼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어 다행이다. 하나하나 졸린 눈으로 보면서 저 사람은 이렇게 느끼고 우리 아이들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그나마 느낄 수 있으니까. 총알처럼 빠른 사람이었다면 분명히 놓치고 갔을 것이다. 나만 보고 가느라 더 편한 삶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나를 보면 바빠 보이지 않고 좋은 말로 여유롭다고 한다. 하지만 사실 내 안은 굉장히 복잡하고 바쁜 삶을 살고 있다. 혼자 생각하고 혼자 말하고 혼자 계획하고 혼자 실천하고 혼자 행동하는 일이 많아서 일까. 겉에서 보기에는 ‘저 여자는 할 일이 없이 유유히 사는 것 같다’라고 여길 수 있을 것이다.


나의 하루를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육아에 가사에 지쳐 하루를 겨우겨우 보내고 있을 때다. 도통 나에게 쓰는 시간들은 없었다. 나라는 존재는 이제 이 집이라는 공간에 없는 것일까. “엄마!” 라고 부르는 말에만 반응을 하고 체력 고갈로 내일 일어나야 하니 또 일찍 잔다. 남들은 아이들 자는 시간을 잘도 쓰지만 내 체력은 그리 단단하지 못하다. 내가 아프면 일어나지 못하면 대신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 버티는 거다. 하지만 나에게 양분을 주지 못한 채 버티기만 하니 고스라니 나의 짜증과 화는 다시 집 안으로 들어온다. 이런 감정들을 다스리지 못하면 나도 가정도 탈출할 수 있는 구멍이 없을 것 같았다.


곰곰이 내 일과를 생각한다. 시간대별로 적어본다. 하루는 어찌보면 굉장히 짧은 시간이다.

하지만 24시간 중 2시간만 나에게 쓴다고 해보자. 일주일이면 14시간 한 달이면 420시간, 일 년

이면 대략 5000시간. 어머! 일만 시간의 법칙도 깰 수 있겠네.


아무 생각 없이 하루를 주어진 일만 하다가 시간표에 내 일과를 적어보았다. 남는 시간이 많이 있었다. 그냥 흘려 보내는 시간은 주로 핸드폰 보기, 텔레비전 보기, 그냥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 등이다. 남는 시간을 모으면

나에게 시간이 자는 시간 빼고도 6시간 정도 아니면 8시간은 쓸 수 있는 시간이 나왔다. 그런 시간은 자투리 시간이 아니다. 충분히 내게 투자할 수 있고 무엇인가를 해 낼 수 있는 시간이다. 어떤 일이든지 노력 없이 거저 되는 일은 없다. 아가들도 걸으려고 수십 번을 넘어져도 걷고 또 걷지 않는가. 보는 엄마는 안쓰럽지만 아기는 넘어질 것을 알면서도 다시 일어난다.


차곡차곡 모든 노력들이 쌓이다 보면

‘엄마’, ‘아내’, ‘며느리’라는 타이틀 말고 내 이름 불릴 날이 오지 않을까.


뚜벅뚜벅 걸어 본다. 천천히 걷다 보면 주위의 것들이 보이고 내가 갈 길도 보인다. 어느 날 내가 원하는 것을 하고 있고 원하는 내가 되어간다. 이곳 저곳 기웃거리지 않고 똑바른 길로 발을 내딛어 걸어보자.


오늘도 물처럼 하루를 흘려 보냈는가.


하지만 늦은 때란 없다.

알았으면 그 순간부터 다시 시작하면 된다.

행동으로 하지 않은 자는 느리게 걷는 사람을 쫓아올 수조차 없다.


물처럼 하루하루를 흘려 보내던 일을 멈추고 뚜벅뚜벅 그 시간을 주어 담아 나에게 쓰길 바란다.

나를 위한 시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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