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고 또 기다려도 지루하지 않는 건 서로에 대한 믿음
3. 멋진 기다림 - 기다리고 또 기다려도 지루하지 않는 건 서로에 대한 믿음
나의 첫사랑. 큰 아들 하나만 잘 키우자가 결혼하면서 내 목표였다. 하나라도 잘 키우자!
아이가 하나이니 여행을 정말 많이 했고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 삼촌, 고모 온 식구의 첫째였으니 사랑도 독차지 했다. 하지만 엄마와 아빠가 맞벌이라 매일 놀아줄 수는 없었다. 물론 외할머니와 함께 있었지만 그래도 혼자 노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또 엄마, 아빠의 사랑만으로는 또래와 함께하는 즐거움을 채워주기 어려웠다. 아이가 컸을 때 외롭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종종 하게 되어 결국 둘째를 낳기로 했다. 둘째를 낳기 6개월 전, 직장을 그만두고 첫째와 시간을 보냈다. 남산만한 배를 해서 큰 아이를 안아주기도 많이 했던 것 같다. 11월 출산이라 4개월 전에는 둘째 태어나는 것을 대비해 드디어 어린이 집을 다니기 시작했다. 4살 후반기에 들어서야 또래 아이들과 함께 생활을 했으니 오죽이나 즐거웠을까. 어린이 집 소풍을 마치고 데리러 갔더니 엄마 가라고 더 있을 거라고 어린이 집 사랑이 가득했던 아이였다. 하지만 참, 아이의 마음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둘째를 낳으러 병원에 가면서 친정에 아이를 맡긴 그 날부터 어린이 집에 가지 않겠다고 죽어라 울고 차에 타지 않겠다고 발버둥을 쳤다고 한다. 아이에게 엄마와 잠시 헤어짐이 이렇게 큰 일인지 몰랐다. 자기만 바라봐주던 엄마였는데 직감적으로 알았던 걸까. 엄마의 사랑이 더 이상 자기에게만 향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밖에도 아이만 슬픈 일이 아니었다. 엄마인 나도 나의 첫사랑 큰 아이가 너무 보고 싶고 미안했다. 아빠와 큰 아이가 나를 보러 잠깐 왔다가 가는 큰 아이의 뒷 모습을 보고 얼마나 울었던지. 어떤 감정이 복받쳐 왔는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 큰 아이는 엄마와 같이 크는 끈끈한 애정이 있어서 일까. 동생이 생겨서 큰 형으로 살아야 하는 무게가 안쓰러워서였을까. 그래도 엄마를 보고 간 뒤 큰 아이는 다시 어린이 집을 한 달간 잘 다녔다. 둘째와 집으로 돌아온 뒤, 큰 아이는 어린이 집을 더 이상 다니지 않고 그 겨울, 셋이서 도란도란 잘 보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어리고 작은 아이지만 엄마가 다시 자기에게 돌아올 거라는 믿음으로 기다리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둘째를 낳은 것을 후회하고 자책하면서 출산한 그 시간을 힘들게 보냈을지도 모른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있지만 우리는 서로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시간이 많다.
연락 없이 늦는 남편 귀가를.
사춘기로 멀어져 방문을 굳게 닫은 아이들.
우울증으로 아내가 다시 예전으로 돌아오기를.
출산한 엄마를 기다리는 첫째들.
병으로 입원한 가족을 기다리기도 한다.
수많은 기다림으로 가족은 세월을 함께 한다. 각자 겪는 힘든 시기를 믿고 기다려 주는 것은 다시 ‘나’를 찾는 순간이 있다는 믿음이 있어서 일 것이다. 우리 가족이 지금 이만큼 서로에게 여유로운 시간을 가질 때까지 많은 고난이 있었다. 지금은 일상에 쫓기지 않고 각자의 생활을 하고 있다. 다만 엄마만 아직 제자리를 잡지 못했다. 큰 아이 때는 일을 했으니 결혼하고 둘째 낳으면서 경력단절이 되면서 8년 째다. 물론 엄마도 자신의 일을 찾아가고 있다. 아이를 키우면서 집안일도 하면서 해야 되는 일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아니 눈 씻고 찾기가 힘들다. 하지만 나는 엄마라는 이름을 뒷전에 두고 일을 하기는 싫다. 나의 욕심일까. 얼만큼은 포기를 하고 내 일을 선택해야 하나 포기하기가 힘들다. 이삼 년 전부터 아이들에게 ‘엄마 일하러 나갈 거야.’ 라고 하면 눈들이 동그래져서 ‘그러면 나는 학교 갔다 와서 어떻게 해?’ 자기들 걱정이 먼저 앞선다. 남편은 듣는 둥 마는 둥. 자신의 일상은 바꿀 생각은 없는 것 같다.
나의 일을 찾기 위해 8년을 기다렸다. 둘째를 낳았을 때는 남자 아이 둘 키우는데만 전념했지만 셋째를 낳고 나서는 더 이상은 내가 없는 삶을 살기 힘들었고 싫어졌다. 이렇게 집에서 육아와 가사를 하려고 결혼한 걸까. 점점 더 우울해지고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는 그런 엄마가 되는 내가 무서웠다. 밤마다 자는 아이들을 보며 미안해 하지만 아침이면 또 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하루하루가 힘들고 버거웠다. 그렇다고 우리 사회가 경력단절 아줌마에게 절대로 관대하지 않다. 냉정한 현실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어떻게 해서든지 그곳을 뚫고 가려고 계속 노력 중이다. 노력보다 더 중요한 건 부딪히는 실천! 생각이 많은 것은 절대로 좋은 일이 아니다. 바로 바로 부딪혀야 조금이라도 열리는 것 같다. 돌아오는 반응이 냉담해도 돌아서서 나도 투덜대며 털어버리면 그만.
기다림의 끝은 언제 열리는 걸까.
남들은 쉽게 열리는 것 같은데 막상 나에게는 쉬운 일이 결코 아니다. 하지만 무엇이든지 도전하는 사람이 하나라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아이들도 그런 엄마를 보며 ‘엄마도 하는데 나도 할 수 있어!’라는 긍정마인드를 갖기를 바라면서 오늘도 이곳 저곳 두드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