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혼자 어떤 볼 일을 보러 갈 때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당황하지 않기 위해서다. 당황하면 순간 내 머리가 고장 난 것처럼 얼어버리기 때문이다. 같이 사는 남편도 이런 나를 모를 것이다. 그래도 남편과 같이 나갈 때는 아무 생각 없이 나갈 수 있어 다행이긴 하다. 옆에 누군가가 있으면 나를 책임지는 힘을 덜 들여도 된다는 안도감이 생긴다.
요즘에 어떤 책들이 나왔나 궁금해서 서점에 간다고 치자. 그러면 먼저 사람이 없는 시간대는? 어느 서점을? 가는 길은? 주차장은? 무슨 책을 볼 거지? 책은 구매할 건가? 점심은? 집에 바로 올 건가? 아이들이 오는 시간은? 몇 시에 집으로 돌아올까? 등등의 수많은 질문을 혼자 던진 후 동선 결정 후에 나간다. 물론 집을 나서기 전에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나간다. 답답하다. 어질러져 있으면 안되는 걸까. 이런 것을 강박이라고 부르는 걸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들다 에잇! 그냥 집에 있자! 할 때가 많다. 직장을 다닐 때는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까 생각을 할 필요도 없었지만 지금은 많은 선택의 여지가 있으니 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집에만 있지는 않으니 답답해 하지 않아도 된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려면 집에 콕 박혀서 살 수 있는 삶을 가질 수는 없으니까.
이렇게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귀찮아 했던 나지만 남편과 둘이 되고 나서는 밖으로 밖으로 나간다. 결혼 후 집에 있는 것 보다 나가는 것이 남편과 아내를 위해 더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집에 둘이 있으면 좋은 하루를 보낼 때도 있지만 결국에 하루의 끝을 싸움으로 끝맺는 일이 더 잦았다. 특히 아이들이 있으면 집에 있는 것이 더욱 힘들다. 아이들의 에너지는 하루가 끝나도 결코 끝나지 않으니 밖으로 밖으로 나가는 횟수는 점점 늘어난다.
우리 가족은 애 셋을 낳고서야 해외여행을 가기 시작했다. 아이가 하나 일 때는 생각지도 않았는데 아이를 셋을 낳고 해외 여행을 가기 시작하다니 참 아이러니 했다. 첫 해외여행은 비행기에서 막내가 도착할 때까지 4시간 반 동안 쉴 세 없이 악을 쓰며 울었던 기억을 제외하고 성공적이었다. 나름 그렇게 믿는다. 그 때 같이 비행기를 탔던 분들에게는 정말 고개 숙여 사과한다. 노 키즈 비행기가 생긴다면 나는 키즈 비행기도 추천한다. 자녀가 없으면 탈 수 없는 비행기!
그 이후 우리는 여유가 되면 가까운 해외로 나간다. 막내 딸은 국내 여행조차도 항상 이렇게 질문한다.
“엄마, 비행기 시간은 몇 시야?” 아, 참 깜찍한 질문이다.
엄마 어렸을 때와는 정말 다르구나. 엄마 어렸을 때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질문이었는데. 가장 문명의 혜택을 많이 받는 막내지만 여행을 계획할 때 가장 많이 고려 대상이 된다. 아이들을 데리고 가면 어려서 기억을 할까, 그리고 힘들지 않을까 고민 하는 분들이 있다면 그냥 떠나라고 하고 싶다. 어리면 어린 대로 힘들면 힘든 대로 추억이 되고 항상 식사시간에 이야기 거리가 되고 가족으로 더 돈독해 지는 것 같다. 막내가 비행기 요금을 내지 않는 절호의 기회라고 해서 시작하게 된 해외 여행이지만 아이들은 기억을 한다. 큰 아이는 세세히 기억하고 막내는 기억이 나지 않아도 난다고 우긴다. 오빠들한테 지기 싫어서. ‘맞아! 정말 맛있었어.’
가족 여행 블로거 만큼 하지도 않았고 몇 번밖에 가지 않았어도 의미는 있다. 바로 일상의 탈출로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것이다.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에 이런 말이 있다.
“여행기는 이런저런 시련을 겪다가 성취하고자 했던 것과 다른 어떤 것을 얻어서 출발 점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여행의 경험은 켜켜이 쌓여 일종의 숙성과정을 거치며 발효한다.”
당장 눈 앞에는 보이지 않지만 살면서 이런 경험들은 나를 살게 해주는 힘이 된다. IMF 이후 지금까지 힘든 우리 집이지만 어렸을 때의 많은 여행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쓰러지지 않고 버티게 해 주는 역할에 한 몫 했다.
‘그래, 나는 어렸을 때 여행도 많이 했고 하고 싶은 거 다해 남들이 부럽지 않아.’
라는 주문으로 지친 삶을 일으키고 또 일으켰다.
여행지에서 겪은 에피소드는 밤새 얘기해도 시간이 모자란다. 파워 블로거들에 비하면 겨우 3번 간 해외여행이지만. 떠날 때의 설레임으로 비행기 예약을 했다는 즐거움으로 기대반 설레임 반 그리고 걱정 반으로 그 시간을 버텨낸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돌아와서 할 일이 산더미라 한숨이 나온다. 하지만 아직 벗어나지 못한 여운으로 하루하루 추억을 소환하며 다음 여행을 위해 또 살아낸다.
아무 곳이나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면 ‘나’ 가 존재함을 새삼 느껴진다. 돌아올 집이 없다면 여행도 의미가 희미할지도 모른다. 항상 여행에서 돌아오면 “그래도 집이 제일 좋지?” “응, 내 이부자리가 제일 편해.”라고 말하는 아이들이다. 나도 이 세상에서 내 집이 제일 편하다.
사람들은 왜 여행을 항상 꿈 꿀까. 하늘에 지나가는 비행기를 보며 부러워하는 하루가 되지 말고 오늘을 살아낼 힘을 얻기 위해 짧은 여행이라도 떠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