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로 만나는 일본5: 홋카이도 아사히카와(旭川), 비에이, 비바우시
하늘에서 내려다 본 홋카이도. 설산과 호수, 드넓은 대지가 보인다.
필자는 중국에서 여객기를 가장 많이 타본 한국인이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300차례 넘게 이용했다. 한 달에 가장 많게는 11번을 탑승하였고, 그 다음이 9번으로 2차례나 있었다.
심지어 중국 여러 항공사의 마일리지와 트립닷컴의 포인트로 무료로 19번이나 여객기를 타기도 했다. 그리고 필자는 중국에서 기차와 고속열차를 가장 많이, 가장 길게 승차한 한국인이다.
기차로 대륙을 횡단하고 종단한 경험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중국 내 31개 성ㆍ시ㆍ자치구 곳곳을 모두 취재했거나 여행했기 때문이다.
삿포로와 아사히카와 사이를 오고가는 특급열차.
이런 필자에게 일본에서 기차여행의 매력을 알게 해주었던 곳은 홋카이도다.
JR에서 발매한 삿포로-후라노(富良野) 4일 레일패스를 구입한 덕분에 계획했던 목적지를 모두 둘러보면서 즐거운 기차여행을 했던 것이다. 그 이전까지 혼슈와 규슈, 오키나와에서는 주로 버스패스를 이용하였다.
비록 한큐 투어리스트 패스 2일권도 사용하긴 했지만, 다양한 기차여행은 경험하지는 못 했다. 그래서 홋카이도에서는 레일패스를 최대한 활용하며 이동하는 여행 일정을 짜서 실행으로 옮겼다.
아사히카와와 비에이 사이를 오고가는 보통열차.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그 뒤 시코쿠를 여행했을 때는 올 시코쿠 레일패스 4일권으로 즐겁게 다녔다. 다시 규슈에 갔었을 때는 규슈 전역 7일권을 사용하여 곳곳을 누비었다.
이때 신칸센과 스페셜 열차도 여러 번 탔다. 필자가 홋카이도에 도착한 첫날 삿포로역으로 이동한 뒤에 아사히카와(旭川)로 가는 특급열차를 탔다.
1시간 25분을 달려서 도착한 아사히카와역에서 나와 걸어가 호텔에서 체크인을 하니, 벌써 8시가 됐다. 다행히 호텔 주변에 아직 영업 중인 라멘(ラーメン)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아사히카와와 비에이 구간 보통열차의 내부 모습.
다음날 아사히카와에서 객차가 단 한 칸만 있는 열차를 처음 탔다. 조금 일찍 간데다, 비에이(美瑛)만 가는 열차라서 필자가 첫 승객이었다.
아사히카와역을 출발해서 33분을 달려 비에이역은 도착했다. 비에이정은 아사히카와와 맞붙었고 같은 카미카와(上川)종합진흥국에 속한다. 676㎢에 달하는 넓은 면적과 달리 인구는 9469명에 불과하다.
그래도 정사무소는 한국의 동사무소보다 훨씬 컸고, 특색있는 건축미를 가진 건물이었다. 보통 비에이에서는 청의호수(青い池)와 흰수염폭포(白ひげの瀧)를 많이 간다.
피라미드 모양의 전망대가 인상적인 호쿠사이의 언덕전망공원.
그러나 필자는 비바우시(美馬牛)와 아사히카와의 관광지도 가야 했기에, 자전거를 렌탈해서 패치워크노미치(パッチワークの路)를 둘러보기로 했다.
패치워크노미치는 파노라마로드(パノラマロード)와 함께 비에이를 대표하는 2대 여행 코스다. 비에이에서는 해마다 같은 땅에 같은 작물을 심어 황폐하게 만드는 연작을 방지하기 위해서 나눈 밭에 각기 다른 농작물을 재배했다.
그 모습이 여러 천 조각들을 이어 붙여서 1장의 큰 천을 만드는 수공예인 패치워크와 같다고 해서 ‘패치워크의 길’이라고 불린다.
닛산자동차 스카이라인의 광고로 유명해진 켄과 메리의 나무.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비에이에 도착한 직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어쩔 수 없이 자전거를 타는 걸 포기하고, 우산을 들고 걸어서 첫 목적지인 호쿠사이노오카(北西の丘)전망공원으로 갔다.
도중에 산을 하나 넘어야 해서 힘들었다. 하지만 전망공원에 가까울수록 주변 풍경이 멋졌다. 전망공원은 피라미드 모양의 전망대가 인상적이었다. 또한 비에이 일대의 전체 풍경을 조망할 수 있었다.
전망공원을 떠나 파노라마로드가 아닌 패치워크의 길을 선택하게 했던 켄과 메리의 나무(ケンとメリーの木)로 갔다.
라벤더가 꽃피는 계절이 아니어서 아쉬웠던 제루부의 언덕.
켄과 메리의 나무는 본래 구릉지대에 있는 큰 포플러나무이었다. 이를 배경으로 닛산자동차 스카이라인의 광고인 《켄과 메리의 스카이라인》과 《지도 없는 여행》이 제작되면서 유명해졌다.
특히 CF송인 ‘켄과 메리: 사랑과 바람처럼’은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우뚝 솟은 포플러나무는 주변 풍경과 대비되면서 멋진 풍경을 연출했다. 마지막으로 제루부노오카(ぜるぶの丘)를 갔다.
제루부노오카는 ‘바람(風, 카제)’, ‘향기나다(香る, 카오루)’, ‘논다(遊ぶ, 아소부)’의 뒤 글자가 합쳐져서 이름지어진 언덕이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 속에 등장하는 소나무를 연상케 하였던 나무.
비에이에서 가장 유명한 화원인데, 라벤더가 꽃피는 계절이 아니었기에 장관을 보지는 못 했다. 간간히 눈발까지 날리는 날씨 속에서 걸어 다녔지만, 생각 외로 시간이 남아 느긋하게 점심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예정에 잡았던 열차를 타고 비바우시로 갔다. 비바우시에서 칸노팜(かんのファーム)과 크리스마스트리의 나무(クリスマスツリーの木)를 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예상치 못한 난관에 직면했다. 기차역 주변 자전거 렌탈숍이 문을 닫은 것이었다. 따라서 또 걸어서 목적지까지 가야 했다.
한 폭의 풍경화와 같은 크리스마스트리의 나무.
칸노팜은 제루부노오카처럼 제철이 아니라서 아름다운 라벤더는 볼 수 없었다. 그러나 가는 도중 영화 《엽기적인 그녀》 속에서 남여 주인공이 타임캡슐을 묻은 소나무와 비슷한 모습과 분위기의 나무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 뒤 다시 긴 길을 걸어서 힘들게 찾아간 크리스마스트리의 나무는 정말이지 한 폭의 풍경화와 같았다.
비바우시에서만 총 7㎞를 넘게 걸어 다녔는데, 그 피로가 싹 풀리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비에이 내 모든 목적지를 방문하고 예정한 열차 시간에 맞추어 비바우시역으로 되돌아왔다.
아사히카와 아이누기념관에 복원한 아이누족의 주택.
다시 한 칸의 열차를 타고 아사히카와에서 온 뒤 버스를 타고 아이누(アイヌ)기념관으로 갔다. 원래 홋카이도는 아이누족의 터전이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오랫동안 아이누어를 빌린 한자 표기인 에조치(蝦夷地)라고 불렀다. 대부분 지명이 같은 방식으로 지어졌고, 비에이와 비바우시도 마찬가지이다.
과거 아이누족의 거주 영역은 상당히 넓었다. 북으로는 사할린과 쿠릴열도에서, 남으로는 혼슈 중북부까지 분포해서 살았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갈수록 야마토(大和)민족에게 밀려나면서 홋카이도 중북부로 옮겨갔다.
삿포로기차역에 세워져있는 아이누족 목각상.
홋카이도의 척박한 자연환경이 버팀목의 역할을 해주었기에, 18세기까지 독자적인 공동체와 문화풍습을 유지했다. 당시 아이누족은 수렵과 어업을 하면서 평화롭게 살았다.
그러나 19세기 들어 에도막부는 러시아의 남진을 막는 전략적인 중요성에 따라 홋카이도를 주목했다. 따라서 메이지정부는 홋카이도개척사를 설치하여 본격적으로 홋카이도를 개척했다.
문제는 일본 입장에서만 개척이었을 뿐이지, 아이누족 입장에서는 재앙이었다. 아이누족은 인종적으로 폴리네시아인에 가깝다.
1909년에 다카사고주조로 확장하면서 세운 양조장.
일본은 아이누족을 덜 진화된 인간으로 간주했다. 따라서 일본어 사용의 의무화, 이름의 일본식 개명, 토지 몰수, 사냥 금지 등으로 탄압했다. 이런 상황은 20세기 말까지 지속됐다.
그 과정에서 일본은 니혼슈를 아사히카와로 이식하여 빚었다. 후쿠시마에서 아사히카와로 이주해서 1899년에 양조장을 창업한 코비야마 테츠사부로(小檜山鐵三郎)가 선구자이었다.
테츠사부로는 1909년에 다카사고주조(高砂酒造)로 확장하여 홋카이도를 대표하는 니혼슈 브랜드인 고쿠시무소(國士無雙)를 성장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