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다시 돌아오는 시간

나를 항상 다시 멈춰 세우고 본질로 돌아오게 한다.

by 한별


사람들은 한 해의 끝에서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고,

다가올 시간을 준비한다.


누군가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누군가는 여행을 떠나고,

각자의 방식으로 한 해를 정리한다.


나에게도

그 시간을 다시 마주하게 되는 이유가 있다.


아빠는

2019년 12월 30일에 떠났다.

그다음 날부터 새해 첫날까지,

나는 장례식장에서 시간을 보냈다.


한 해의 끝과 시작을

아빠를 보내는 시간 속에서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그 이후로 매년 이 시기가 오면

나는 자연스럽게 멈추게 된다.


그리고 생각하게 된다.


나는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바쁘게 흘러가던 시간 속에서는

붙잡지 못했던 질문들이

이 시기가 되면 다시 또 내 앞에 놓인다.


나는 그 질문들 앞에

조용히 앉게 된다.

그리고 다시 기억하게 된다.


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존재라는 것,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

이 땅에서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그래서

지금 내가 붙잡고 있는 것들이

정말 붙잡아야 할 것인지,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다시 돌아보게 된다.


그러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내 삶에서 덜어내야 할 것들과,

끝까지 붙잡아야 할 것들이.


그렇게 나는

내 삶을 다시 정리한다.


아빠의 죽음은

나에게 멈춤을 남겼다.

그리고 그 멈춤은

나를 본질로 돌아가게 했다.


그래서 나는

이 시간이 올 때마다

슬픔만이 아니라

조용한 감사도 함께 느낀다.


아빠는 떠났지만,

그가 남긴 이 시간은

지금도 나를 다시 살게 한다.


언젠가

모든 시간이 끝나고,

하나님 앞에 서는 날,

그리고 아빠를 다시 만나는 날,


그때

“수고했다”는 말을 듣고 싶다.

이전 07화나의 열심으로는 안 되던 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