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바라보며 함께 보낸 2주
아빠가 떠난 지 2년쯤 지났을 때,
내 삶이 어느 정도 회복되면서 비로소 아빠의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 떠오른 사람은,
아빠가 떠난 후 혼자 남겨진 할머니였다.
이혼 후 아빠와 함께 살고 계셨던 할머니는
이제 그 집에 홀로 계셨다.
고모들이 가까이 살며 잘 챙겨드리고 있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엄마의 마음을 생각하니
감히 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가슴이 저려왔다.
마침 그 시기에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위해
2주간의 실습을 해야 했다.
나는 우리 집이 아닌,
할머니가 계신 고향에서 실습을 하기로 결심했고
그 시간 동안 할머니 집에서 지내기로 했다.
지금 돌아보면,
내 인생에서 정말 잘한 선택 중 하나였다.
나는 매일 아침 할머니와 마주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저녁이 되어 돌아와서도 같은 이야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그런데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 시간이 너무 행복하고 감사했다.
아빠는 떠났지만, 오히려 그 이후에
아빠의 가족들과 나를 더 깊이 이어주고 있었다.
신앙이 없던 시절의 나는 달랐다.
할머니와 나눌 이야기도 많지 않았고,
할머니 집에 가면 언제 집에 돌아갈지만 생각하며
미리 시간을 정해두고 마음은 이미 반쯤 떠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달랐다.
할머니와의 이야기가 너무나 재미있었다.
할머니의 젊은 시절 이야기,
신앙을 붙잡아 오신 시간들,
외우고 계신 찬양들,
할아버지와의 에피소드까지.
한 번 들은 이야기라도
두 번, 세 번 들을 때마다
마치 처음 듣는 것처럼 새롭고 따뜻했다.
그러면서 알게 된 사실이 하나 더 있었다.
내가 우울증으로 힘들었던 그 시기,
할머니 역시 깊은 우울감 속에서 힘들어하고 계셨다는 것이었다.
교회에 가는 것도, 사람을 만나는 것도 버거워
한동안 예배조차 드리지 못하셨다고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새벽에 일어나 예배를 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그 길에서 하나님의 치유하심을 경험하셨다고 하셨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깨달았다.
사랑하는 사람과 살아 있는 동안
후회 없이 사랑을 나누는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래야 그 사람이 떠날 때
후회와 미안함이 남지 않는다는 것을.
그 후, 할머니는 하나님 품으로 가셨다.
할머니는 거실에서 주무시다가 일어나시면
항상 무릎을 꿇고 한참을 기도하셨다.
그리고 성경을 읽고, 찬양을 부르셨다.
그것이 할머니의 삶이었다.
할머니의 기도 중 하나는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게,
치매 없이 삶을 마치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 기도를 늘 내게도 말씀하시곤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어주셨다.
돌아가시기 한두 달 전,
몸이 불편해지셨던 할머니는
딸이 일하고 있는 주간보호센터에 다니게 되셨다.
그곳에서 마지막 시간을 딸과 함께 보내며
기쁨 속에 하루하루를 살아가셨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배가 아파 일어날 수 없다는 연락이 왔다.
급히 응급실로 향하시면서도
집에 있는 국이 상할까 걱정되어
“퇴원하면 못 먹으니 지금 먹어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
할머니는 천국으로 가셨다.
할머니의 마지막을 보며
나는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드릴 수밖에 없었다.
장례의 시간 또한
슬픔보다 감사로 가득 차 있었다.
할머니와는 이미 준비된 이별을 했고,
무엇보다 함께 하나님 이야기를
마음껏 나눌 수 있었던 그 시간이
너무나 감사했다.
천국에서 만나요 할머니.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