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빠가 아닌 한 사람으로

그럴 수도 있겠구나..

by 한별

한 사람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온전히 바라보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히스토리’를 봐야 한다.


나는 그동안 아빠를 ‘한 사람’으로서

바라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와 아빠의 관계 안에서

오직 ‘아빠’라는 이름으로만 바라봤다.


그 하나의 관점,

그리고 내가 만들어 놓은

‘아빠의 기준’으로만 바라보니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내가 세운 ‘아빠의 기준’으로

다른 집 아빠들과 비교하곤 했다.


우리와 자주 놀러 다니지 않는 아빠,

교회와 교회 사람들을 더 챙기는 것 같은 아빠,

엄마를 힘들게 하는 것 같은 아빠,

화를 잘 내는 것 같은 아빠.

그래서 아빠가 미웠다.


애석하게도

아빠를 미워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아빠를 떠올리면 좋은 기억보다

미움이 먼저 떠올랐다.


분명 따뜻했던 순간들도 많았을 텐데,

나는 아빠를 ‘미워할 대상’으로 규정해 버린 채

그렇게 바라보고 기억해 왔다.


사람은 종종

숨겨져 있던 진실을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알게 된다.


아빠가 떠나고 나서야

나는 ‘아빠’라는 관계를 넘어

‘한 사람’으로 보기 시작했다.


아빠도 누군가의 아들이었고,

누군가의 남편이었고,

누군가의 형이자 오빠였다.


한 사람을 중심으로 이어진

수많은 관계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내 마음에

그 사람을 향한 긍휼함이 생겨났다.


나는 살아오며 종종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나는 부모님에게 이런 걸 받아보지 못해서…”


하지만 돌아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던

그 한 사람의 삶의 배경이 있었다.


내가 살아가는 시대와

부모님이 살아온 시대는 너무나 다르다.


한 세대만 차이가 나도 이렇게 다른데,

그 위의 세대는 또 얼마나 다를까.


북한에서 넘어와

치열하게 살아가며 자식들을 키워낸 할아버지,

그 아래에서 자라며 형성된 삶의 방식,

운동권 시대를 지나며 겪었던 시간들,

원하는 길이 있었지만 이루지 못했던 꿈,

그리고 재능과는 상관없이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가야 했던 시간들.

그 한 사람의 히스토리를 따라가다 보면

그의 투박함도, 연약함도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한다.


나는 이제

사랑하는 사람들을

‘관계’로만 보지 않고

‘한 사람’으로 바라보려 한다.


내 기준에서는 이해되지 않는 말과 행동들도

어쩌면 내 시선에 갇혀 있었기 때문일 수 있다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예전에도

“그럴 수도 있겠다”라고

노력해서 생각하려 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해되지 않는 순간이 올 때마다

그 사람을 한 사람으로 바라보며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올라온다.


이 또한 하나님의 은혜다.


이런 마음을

어릴 때부터 가질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사실 그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수없이 넘어지고, 다치고, 부딪히며

자라 가도록 하신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우리를 낮추시고,

겸손하게 다듬어 가신다.


그 안에

이런 지혜를 숨겨 두셨다는 것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지난 시간들에 대한 아쉬움은 내려놓고,

한 사람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는 은혜를 주신 하나님과 그리고 나의 아빠에게

감사한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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