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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밍 Aug 12. 2022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다음날은  페드로  아타카마를 떠나는 날이었다. 근처에 공항이 있는 칼라마로 가는 버스가  시에 있어서, 나는 버스가 올때까지 숙소에 짐을 맡겨놓고 마을을 돌아다닐 생각이었다. 체크 아웃을 하는데 숙소 직원이 내게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그녀는 한국인들은 신기하게도 피부가 다들 좋았다며 한국 화장품에 굉장히 관심이 많다고 했다. 어쩐지 전날부터 내가 쓰는 화장품에 대해 이건 뭐니 저건 뭐야 하며 물어보더라니 싶었다. 그래서 한국에서 가져온 마스크팩 하나를 줬더니 기뻐하며 활짝 웃었다.


마스크팩을 계기로 그녀와 잠시 수다를 떨었는데, 그녀는 원래 칠레의 수도인 산티아고에서 살았다고 했다. 그러다 숙소 주인이 친한 친구라 일을 도와주러 여기  페드로  아타카마까지 왔는데, 이제는 여기에 남자친구가 생겨서 떠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녀는  조그맣고 한가로운 마을에 흥미를 잃었는지 남자친구와 헤어지면 당장 산티아고로 돌아갈 것이라고도 했다.



그녀와 잠깐 수다를 떨고  , 나는 숙소에 짐을 맡기고 광장에 있는 카페에 가서 아이스커피를 시켜 먹었다. 그리고나서 광장 근처에 있는 성당에 갔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성당에는 마구간이 차려져 있었고, 아기예수, 마리아와 요셉을 동방박사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바깥에는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고 날은 무더운데, 크리스마스라니 왠지 여름에 앙고라 니트를 입은 것처럼 기분이 묘했다.



나는 나이롱 신자지만 천주교가 성당이라는 공간을 통해 보여주는 세계는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아름다운 조각상과 그림, 높은 천장에서부터 떨어져 내리는 빛은 이유 없이 마음을 숭고하게 만들었다. 성당들은 하나의 세계관을 공유하면서도 각자의 개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성당은 작은 마을에 있어서 그런지 평소 여행하면서  성당들과는 많이 달랐다. 대리석이 아닌 붉은 흙과 벽돌로 지어져 있었고, 천장에는 거칠게 마감된 나무로 만든 들보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그리고 동네 떠돌이개가 마치 자기 집인 것인  제단 앞에 자리를 잡고 낮잠을 자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자유분방한 모습 역시 좋았다.



성당은 이따금 구경하러 오는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은 성당을 둘러보고 자리에 앉아서 조용히 기도를 하고 떠나갔다. 문득 내가 지금 건강하다는 사실에 대해, 그리고  가지 행운들이 따라줘서 지금 이곳에 올수 있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눈을 감고 기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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