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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밍 Aug 12. 2022

달의 계곡의 어글리 코리안



 페드로  아타카마는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작지만 아름답고 생명력 넘치는 마을이었다. 사막을 건너온 여행자들은 나른한 표정으로 노천 카페 앉아 있거나, 아무런 목적도 없이 이곳 저곳을 걸어다녔다. 그래서인지  마을에는 바닷가 휴양지 같은 몽롱하고 여유로운 분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내겐 그런 느긋함을 즐길만한 시간은 없었다.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바쁘게 환전을 하고, 숙소를 잡고, 달의 계곡을 보러갔다.



 마을 근처에 있는 달의 계곡은 지구에서 가장 건조한 곳으로, 이름 그대로 달처럼  세상 같지 않은 기이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실제로도 외계 행성의 환경과 흡사 해서, 화성 탐사를 위한 테스트가 이곳에서 진행되었다고도 한다.


하지만 달의 계곡을 돌아보는 내내  신경은 온통 다른 곳에 집중되어 있었다. 우유니 사막부터 시작된 설사가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정말 기이하고  세상 같지 않은 경이로운 풍경이었지만 나는 온통 화장실을 찾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고, 괄약근을 조이는데  모든 집중력을 쏟아부었다. 투어 도중 위험했던 순간들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적절한 곳에 화장실이 있어 그럭저럭 아슬아슬하게 넘길  있었다.


하지만 투어가 끝날 때쯤 가장  위기가 찾아왔다. 조금만 걸으면 화장실이 있는데,  발자국도 걸을  없을 정도가 되어버린 것이다. 심지어   하나 숨길  없는 황무지 한가운데서 말이다.  자리에 만약 가시덤불 하나라도 있었다면 나는 바로 덤불 속으로 뛰어들고 바지를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이지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순간 정말 진지하게 바지를 내릴까 고민했다...하지만 남의 나라 자연유산에 똥을 쌌다가는 뉴스감이 될지도 모른다...아니 어쩌면 달의 계곡을 더럽힌 죄로 잡혀갈지도 모른다...그런 생각으로 마지막까지 남은 초인적인 힘을 쥐어짜서 화장실을 향해 비틀거리며 걸었다.


  인생을 통틀어 그렇게 최선을 다한 적이 없었다...그리고 마침내 화장실에 도착하는  성공했다! 더럽기 그지 없는 화장실이었지만 천국이 바로 그곳에 있었다. 이렇듯 나의 남미 여행에는 줄곧 행운이 따라주고 있었다. 리마에서는 모자를 되찾았고, 우유니 사막 한가운데서는 여권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아타카마에서 나는  바지와 팬티, 나의 존엄성, 그리고 우리나라의 국격을 지킬  있었다.


이 멋진 풍경을 맨정신으로 봤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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