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갔다오면 생각이 정리되거나, 이제까지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 된다거나 하는 환상이 있었다. 그동안 여러번 여행을 갔다 와도 그런 일은 없었지만 이번엔 왠지 남미여행이고, 더군다나 이십대 마지막 여행이니까, 무언가 특별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여전히 그냥 나는 나로 살아갈 뿐이다. 사람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고작 며칠 다른 곳에 다녀왔다고 사람이 바뀌는게 웃긴 일이다.
남미에서 돌아오고 나니 한국에는 비트코인 광풍이 불고 있었다. 남미에서 깨끗이 정화되었다고 생각했던 나의 마음은 순식간에 비트코인의 광기에 물들었고, 고점에 털어넣은 돈은 순식간에 가치를 잃었다. 우유니 사막을 바라보며, 하찮은 것에 연연해하지 말자고 다짐했던 마음과 다르게 매일밤 뜬눈으로 끝없이 떨어지는 그래프를 지켜보았다. 참으로 하찮기 그지 없는 일들이었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해서,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일까. 이 글을 쓰는 내내 계속 그런 생각을 했다.
그 모든 것들이 한무더기의 사진들을 남긴 것 외에, 정말 아무 의미도 없었던 것일까?
여행에서 우리가 다짐하는 일들이란, 초등학교 극기훈련에서 교관들이 촛불을 켜놓고 슬픈 노래를 들려주며 부모님을 생각하게 할때, ‘그래, 앞으로는 부모님 속 썩이지 말아야지 흐어엉’ 하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 날 밤엔 눈물 콧물 다 흘리면서 세상 절절하게 부모님을 생각하고서, 우리는 또 집에 돌아가서 부모님에게 버럭 짜증을 내고 만다.
그렇다고 해서 그날 밤 우리가 했던 생각들이 다 거짓이었을까. 우리가 흘린 눈물은 다 의미가 없던 것이었을까. 적어도 그 순간 우리는 모두 진심이었다. 여행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저 우리는 그 찰나, 그 순간에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진심을 발견할 뿐이다.
오랫동안 남미 여행에 대해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굳이 글을 써야 하는지 나 자신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오랫동안 글을 마무리 짓지 못한채 머물러 있었다. 그러다 코로나가 터지고, 여행을 가는 대신 지난 여행을 되돌아보자고 생각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오래되어 증발해버린 기억을 더듬어가며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때의 마음이 조금씩 되살아났다 . 비록 잠깐 스쳐갔던, 파편에 가까운 것이래도, 내 안에 살아있던 마음을 다시 발견하는 것, 단지 그것으로도 의미는 충분했다. 그리고 이제 나의 남미 여행기에 마침표를 찍는다. 이제야 여행을 마친듯한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