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개밍 Aug 14. 2022

지구 반대편의 크리스마스


<토레스  파이네> 떠나 < 칼라파테> 도착한 것은 크리스마스날이었다. 남미에 도착한 이후로 하루도 쉬는 날이 없이 계속해서 이동해왔다. 하지만 이날만큼은 모든 관광지도 문을 닫았기 때문에 나도 덩달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시간을 보낼  있었다.



여기  칼라파테는 초콜릿이 유명하다고 해서 시내에 나가 카페에서 따뜻한 초콜릿을 시켜 먹었다. 간만에 보내는 한가한 시간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어쩌다 지금 이곳에 오게  걸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남미에 오게  것을 의미하는  아니라, 어떻게 지금의  자신이 되었는지 - 솔직히 나는 내가 직장인으로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새 어엿한 5년차 직장인이 되어 있다.

 

 나는 숫기도 없고  버는 데는  재주가 없는데, 지금은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엄청나게 많은 전화를 하고 어떻게 하면  매출을 올릴  있을지 고민하며 살고 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적성에 맞는 일인가, 하고 자문하면 반반이다. 어떤 것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선 적성에 맞는  같은데, 숫자는 아직도 약한  같다. 그래도 회사 아저씨들이랑 능청스럽게 농담도 주고받고 가끔 화가날  소리높여 싸울  있게  데에는 나름의 뿌듯함을 느끼고 있다. 물론 힘든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쩌면 무엇을 해야할지 몰라 막막해서 울고 싶었던 대학시절보다도  행복한  같기도 했다.  인생  어느  순간에라도,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삶을 살고 있는데 행복한게 어리둥절하기까지  정도로.


아무튼, 여기까지 생각에 이르다 우습지만 이번에는 프린세스 메이커를 떠올렸는데, 새삼 돌이켜보면, 대부분의 경우에 게임 속의 딸들은 비록 공주가 되지 못했어도 행복해했던  같다. (예를 들면 : 아버지 저는 농부가 되었어요! 축하해주세요...) 근데 빈말로 그냥 행복하다고 한게 아니라, 정말로 그때 그녀는 진심으로 행복했던 거구나, 하고  칼라파테의 카페에서 비로소 마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굳이 반짝반짝한 공주의 삶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있을 곳을 찾게 되어서 행복할  있었던 거구나. 게임 속의 딸은 18살에 깨달은  나는 29살에 깨달았다.


얼마 남지 않은 29살을 보내면서, 9, 19살이 어땠는지 떠올려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마 39살의 나는 지금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 지금 이순간도 흐릿해질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9 , 19 때의 나보다, 나는 29살의 내가 좋다. 그러니까... 괜찮을  같다.   있다. 지나가는 것을 굳이 붙잡으려 노력하지 않아도, 변해가는 것을 굳이 안타까워 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다.



이전 15화 굳이 산을 오를 필요는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