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녀석

겨울 조아름 2019-2020 네 번째

by 피츠로이 Fitzroy


그 녀석은 내가 마음이 상한 걸 뒤늦게 깨닫고 나를 만나러 왔다.
새벽 3시 45분에 조치원에서 수원으로 가는 첫차를 타고 왔다. 조치원역 대합실에서 3시간쯤 기다렸다고 했다. 무궁화호, 주황색 선이 그려진 열차다.
나는 연락을 받고 동트기도 전의 거리로 나와 그를 만났다. 집 앞 공원에 쑥스러운 듯 나무에 기댄 긴 그림자가 보였다.
머리를 짧게 자른 그가 상큼한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이 시간에 집 밖에 나가는 걸 아빠한테 뭐라 설명해야 하나 걱정했던 마음은 진작에 잊어버렸다. 여기까지 온 그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24시간 여는 고깃집에 데려갔다. 손님은 우리밖에 없었다. 새벽 5시 30분에 숯불을 피워서 고기를 구웠다. 그가 고기를 맛있게 먹으니 또 사랑스러워 미칠 것 같았다.
고기를 한 점 입에 넣고 상추를 따로 집어 한 장을 그대로 입안에 넣는다. 이렇게 먹으면 싸 먹는 거랑 똑같아,라고 한다.
주문한 냉면이 도착하자 위에 놓인 채 썬 오이를 보며 울상을 짓는다.
-오이 먹어줘.
오이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을 태어나서 처음 봤다.
-미안해.
늦게, 그리고 어렵게 말하는 본심. 밤을 넘어 새벽을 뚫고 기차를 타고 달려온 이유.
내가 속이 상했던 이유가 뭐였는지 기억이 안 나는 건, 그만큼 사소한 것이라 그렇겠지.
아침에 고기를 구우며 찍었던 그의 사진이 나의 하얀 서랍 맨 아랫칸에 있다. 그는 깻잎 한 장을 들고 멋쩍게 웃고 있다.
13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오이는 못 먹는지, 아직도 상추를 싸 먹지 않고 따로 먹는지 그런 게 궁금하다.



2006.07.02 23:38
방명록을 열고..왠일이래요ㅎㅎ
누난웃는모ㄷ습이젤이뻐요
항상웃어요^^


이전 14화괜찮아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