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져요

겨울 조아름 2019-2020 세 번째

by 피츠로이 Fitzroy


그와 헤어지고 나니, 지하철이 문이 열리는 순간에도 내가 짐을 푼 곳의 현관문이 열리는 순간에도 눈물이 쏟아졌다.
그와 함께 지냈던 집에서 내발로 당당히 나왔는데, 쫓겨난 것 같은 초라한 기분이 줄곧 엉덩이에 붙어 다녔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을 맥주와 1Q84로 버텼다. 여자가 사라지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 없었다면 뭘 해야 할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 매일을 붙잡고 더욱 힘든 시기를 보냈을 것이다. 고맙게도 그 소설을 끔찍이 길었다.
9시간의 노동을 마치고 집에 들어와도 지친 기운 없이 정신은 갈수록 또렷 해졌다. 버림받았다는 느낌이 온몸을 꿀렁꿀렁 흘러 다녔다.
4명 중 제일 마지막에 집에 들어오는 나는 컴컴한 집에 최소한의 불을 밝혀 맥주 캔을 땄다. 방 두 개엔 친구들이 나눠서 들어있고 그들은 또 고단해질 내일을 위해 일찍 잠들었다.
나는 일부러 더 늦게 들어와 아무와도 아무 얘기를 나누지 않길 바랐고, 혼자서 긴 밤을 견디며 맥주 마시는 시간을 이별을 한 이가 마땅히 받아야 할 고통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마음은 텅텅 비어갔고, 마음이 가벼운 걸 뱃속이 가볍다고 느껴 친구가 끓여 높은 김치찌개에 밥을 비벼 놓으면 시곗바늘은 새벽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친구들이 깰까 봐 방에 들어가지 못하고 입은 옷 그대로 어두운 부엌에 바로 누워 어둠 속 천장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으면 시간은 끔찍이 천천히 흘렀다.
나 괜찮은 걸까.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시간은 나를 조금씩 아주 조금씩이지만 괜찮게 만들어 주었다. 그게 또 마음에 썩 들진 않지만 그래도 안심은 됐다.
응, 나 괜찮아지고 있어.

당신의 이별도 나의 이별도 이렇게 힘들었다. 사람이 사람이랑 헤어지는 일은 탄수화물을 금지하는 일만큼 정말 힘든 일이다. 힘나는 건 다 탄수화물이니까.
그에게 이별통보를 받고 차라리 그가 좋아했던 청소기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나. 그러니까 인간으로 태어났는데 차라리 청소기가 되고 싶다고 아직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면 당신은 아직 지극히 정상이다.

#다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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