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통에 똬리를 튼 지 한 달이 다 되어갈 즈음의 어느 오후였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수주와 나는 의상실 문턱에 앉아 대화라는 걸 했다. 때론 둘이 나란히 앉아서 각자 따로 말을 하는 것도 같고 때론 우리가 내뱉는 말들의 진의를 파악하지도 않은 채 주절거렸지만 아무렴 어떤가? 우린 그저 그렇게 흘러가는 듯한 평화를 즐기고 있었다. 그때까진 시장통 아이들 품으로 뛰어들지 않았다. 시장통에 '새로운 스타탄생' 같은 뭔가 근사한 등장 타이밍을 기다렸던 모양이다.
의상실 건너편 골목 앞에서 아이들 떠드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왔다. 네댓 명의 여자애들이 고무줄놀이에 열심이었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남자애들이 몰려서 자기들끼리 쑥덕거렸다.
고무줄놀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수많은 동네를 전전하며 갈고닦은 실력이었다.
‘아니야, 그러면 안 돼. 더 가볍게 더 높이, 팡팡 뛰어야 해! 아, 얘들이 뭘 모르네.’하는 속엣말이 시끄러웠지만 그들을 주시할 따름이었다. 그때였다.
“아웃, 아웃! 야! 너 아웃이야!”
고무줄 놀이하는 아이들 중 하나가 소릴 질러댔다. 쩌렁쩌렁 울리는 게 공포스러울 지경이었다. 목소리뿐이 아니었다. 그 아이의 외양에서는 거칠고 독한 기운이 흘러넘쳤다. 서머슴 같단 소릴 듣는 나보다 더 짧은 커트머리의 아이. 흰색 티셔츠는 아버지들의 오래된 속옷처럼 축 늘어졌고 티셔츠 아래로 펄럭이는 남색 치마는 단 끝이 닳아 맨들거렸다. 하지만 얼굴 생김새 자체는 복스러웠다. 어느새 난 실눈을 뜨고 상상에 빠졌다. 그 아이의 어깨에서 황금보자기가 펄럭거렸다. 양손에는 빨간 장갑, 온몸은 파란 츄리닝, 이마엔 금빛 머리띠, 양 발엔 빨간 장화! 이미 그 아이는 날아다니고 있었다.
“쟤 말야, 남자 같니, 여자 같니?”
수주의 낮은 읊조림에 내 정신머리가 돌아왔다.
“응? 응~ 여자! 치마 입었잖아.”
“치마?... 넌 치마 한 번도 안 입잖아. 그럼 너도 남자니?”
“⋯⋯”
수주 말이 맞았다. 치마를 입었다고 여자라고 답하다니, 그건 아니었다. 그럼 뭐라고 말해야 한담? 머리가 멍해졌다. 뒤통수를 얻어맞는 기분이 그런 것이었을까?
“아악--!”
급작스러운 비명이었다. 구경하던 남자애들이 고무줄을 끊어버린 것이다. 끊기는 동시에 고무줄은 술래로 서 있던 아이의 종아리를 강타했고, 그 아이는 다리를 붙들며 비명을 질렀다.
곁에 있던 남색치마의 아이가 남자애들을 노려보고 뭐라고 소리를 치려 했다. 바로 그 찰나, 바람처럼 달려든 한 사내애가 “아이스께--끼!”라고 외쳤다. 그 자식의 손끝에서 남색 치마가 훌러덩 뒤집혔고, 치마의 주인은 ‘악’ 소리도 못 지르고 주저앉았다. 다른 여자아이들은 “꺄악!” 거리며 발을 동동 굴렀다. 그 사이, 소동의 주범들은 낄낄거리며 주변을 맴돌았다.
“우와! 봤어, 봤어? 쟤, 남자 빤스 입었어!”
그렇게 떠들어대면서, 도망가지도 않고 뻔뻔하게.
남색 치마의 아이가 벌떡 일어났다. 덩달아 나도 일어났다. 남자애들을 향해 그 아이가 악을 썼다.
“이 쌍놈의 새끼들, 니들 다 디졌어!”
주먹을 꽉 쥐고 고래고래 소릴 질렀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더 이상 무엇을 하지는 않았다.
30초나 걸렸을까? 순식간에 일어난 상황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여자애들은 다시 고무줄을 묶었고, 수주는 수미 언니가 부르는 통에 집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혼자 서성였다.
‘이 동네도 다르지 않아, 어딜 가나 저런 녀석들이 있지. 한 번만 뜨거운 맛을 보여주면 되는데... 가만 두면 안 되겠다. 가만, 쟤도 나처럼 가난한 집 막내딸인가? 아빠 빤스 입는 건 나뿐인 줄 알았는데... 욕을 되게 잘하네?’
비록 날마다 엄마한테 야단맞고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아도 욕설을 들어본 적은 없었다. 내 입으로 욕을 내뱉은 적도 거의 없었다. 간혹 ‘바보똥개’를 내뱉기는 했지만 그러고 나면 득달같이 후회가 밀려왔다. 그런 밤이면 자기 전에 꼭 무릎 꿇고 두 손 모아 회개 기도를 했다. 예수 믿는 어린이가 그런 말을 쓰면 안 된다고 생각한 덕분이었다.
그렇다고 남색 치마의 아이가 내지른 욕지거리에 부정적 판단을 내리진 않았다. 살짝 시원한 느낌도 들었다. 아니, 무척 시원했다. 거하게 트림을 하고 난 기분이었다. ‘아빠 빤스’란 말이 묘하게도 유대감이랄까 친근감이랄까, 호감지수를 올려주었다.
이튿날도 고무줄놀이는 계속되었다. 난 그들 무리 곁으로 다가갔다. 내 발걸음이 멈추자 아이들은 일제히 나를 쳐다봤다.
“안⋯녕? 얘들아, 안녕?”
어색했다. 오른손을 들지 말고 왼 손을 들 걸 그랬나 후회가 되었지만 이미 늦었다.
“뭐 해? 편 갈라야지.”
남색치마의 아이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자, 다 같이 데덴~찌!”
그녀의 구령을 외치면서 슬며시 내게 자리를 내주었다. 나는 얼렁뚱땅 그들 틈에 끼어들었다.
우린 다 같이 밥 먹는 손을 가운데로 쭉 내밀었다. 어떤 아이는 손등을 하늘로 또 어떤 아이는 손바닥을 하늘로 향했다. 전부 일곱 개의 손이 모였다. 내가 아니었으면 여섯 명의 아이들은 아무 문제 없이 두 편으로 나뉘었을 것인데 내가 끼어드는 바람에 아이들은 편 나누기가 어려워졌다.
나는 모른 척하고 버텼다, 내민 손을 거두지 않았다. 아이들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어우 야~, 너 때문에 짝이 안 맞잖아.”
콧등에 주근깨가 만발한 아이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난 동요하지 않았다. 이때 마음 약해져서 뒤로 물러나선 안된다. 첫 등장이 중요한 법이다. 이후 동네에서 어떤 이미지의 아이로 살게 될지, 어떤 위치를 점하게 될지가 결정 날 중요한 순간인 것이다. 엄마가 늘 일러주던 말씀 한 구절이 있지 않나,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고.
“난 깍두기 안 해, 나 고무줄 디따 잘해! 저번 동네에서도 내가 일등 먹었어, 진짜야!”
숨도 쉬지 않고 그렇게 말했다. 내가 너무 들이대서 놀랐는지 아이들 사이엔 짧은 침묵이 흘렀다.
“은형아, 니가 깍두기해. 너 오늘 발 아프다며?”
역시, 남색치마의 아이가 대장이었나 보다. 신속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그녀가 왜 내 말을 순순히 받아들였는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새로운 동네의 여자놀이단에서 고무줄 고수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데만 신경이 갔다.
현란하고 익숙한 몸짓으로 ‘장난감 기차’를 시작했다.
“장난감 기차가 칙칙 떠나간다, 과자와 사탕을 싣고서. 엄마 방에 있는 우리 아기한테 갖다 주러 갑니다!”
아이들의 노랫소리는 시장통을 뒤흔들었고, 내 몸은 고무줄 위로 펄펄 날아올랐다.
“와, 와! 진짜 잘한다!”
아이들의 환호성은 대단히 위력적이었다. 그 맛이 어찌나 달콤한지, 고무줄놀이 시간이 영원히 끝나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아무리 숨이 차고 발바닥이 아파도 멈출 수 없었다.
그런데 고난도의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이천봉’를 시작하려는 순간, “악!” 비명이 울렸다. 어제의 훼방꾼들이 다시 나타났다. 또 고무줄을 끊어버린 것이다.
“키히히! 약 올랐지 뿔났지! 메롱!”
녀석들은 약을 올리며 슬슬 도망치고 있었다. 내 눈에선 불꽃이 튀었다. 총알처럼 달려 나갔다. 내가 달리자 녀석들이 허둥지둥 뛰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당황한 기색이었다. 내 뒤로는 남색치마의 아이가 따라붙었다. 이어서 고무줄놀이 군단이 다다다-!
돌격대의 모습에 혼비백산한 녀석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나는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렸다. 약 올리는 소리가 제일 컸던 키 큰 녀석을 뒤따랐다. 이를 악물고 달렸다.
닭집 뒤 공터를 가로질러 옆 동네 입구에 이를 때, 드디어 녀석의 어깨를 잡아챌 수 있었다.
“아악!”
아이는 짧은 비명과 함께 땅바닥으로 쓰러졌다. 나는 재빠르게 그의 배 위에 올라탔다. 곧바로 녀석의 멱살을 붙잡고는 옥죄면서 으르렁거렸다.
“하지 마! 여자애들 노는 거 방해하지 마! 고무줄 끊지 말라고!”
내가 지을 수 있는 최고의 진지하고 무서운 표정으로 외쳤다. 녀석은 ‘켁켁’ 소릴 냈다. 얼굴이 허옇게 변했다. 내 힘이 그렇게 셀 줄은 몰랐다. 녀석보다 내가 더 놀랐다. 그래도 멈출 순 없었다. 항복을 받아내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녀석은 얼른 백기를 들었다.
“아, 아, 알았어, 안 할게⋯.”
아이가 더듬더듬 말했다. 그 사이, 고무줄 군단이 속속 현장에 모여들었다. 흩어졌던 남자아이들도 쭈뼛거리며 나타났다. 나는 느릿하게 일어나 녀석들을 향해 우뚝 섰다.
“니들 이제 고무줄 그만 끊어라! 한 번만 더 그러면 내가!”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남자애들이 순간 움찔거리자, 남색 치마의 아이가 그때를 놓치지 않고 일갈했다.
“짜식들! 니들 이제 초아한테 혼나니까 까불지 마! 얘, 전 동네에서 대빵이었대!”
깜짝 놀랐다. 그 아이의 입에서 내 이름이 나올 줄 몰랐고, 또 옆동네 대빵이었다는 소리에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되는 순간이었다. 한바탕 일었던 소란의 마무리를 인상적으로 해야 할 때였다.
“그리고 니들, 아이스께끼도 그만해라! 또 그러면 내가 니들 가만히 안 둔다!”
남색치마 아이의 뻥카드가 효력을 발휘했는지, 녀석들은 내 눈치를 보며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친구들아! 가자! 우리 아직 안 끝났잖아, 고무줄 뛰러 가자!”
입에서 술술 나왔다. 함께 놀기 시작한 지 한 시간밖에 안 지났는데 ‘친구’란 단어를 편하게 쓰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 역시, 아무렇지도 않게 장단을 맞춰주었다.
“그래그래, 초아랑 같이 가자!”
의기양양하게 고무줄 놀던 자리로 걸어가다가 불쑥, 내 머릿속 전구에 불이 반짝였다. 나는 얼른 뒤돌아서 남자아이들을 향해 외쳤다.
“야! 너희들 말야, 우리랑 놀고 싶으면 와도 돼! 함께 놀 게 많으니까!”
내 착각일 수도 있었겠지만, 기운 빠져 자기들끼리 웅얼거리는 녀석들에게서 ‘우리도 니들하고 놀면 안 되니?' 하는 마음을 느껴졌던 것이다.
고무줄놀이는 해 질 녘까지 계속되었다. 땀에 젖고 노을에 익어 얼굴이 발개진 무렵에서야 아이들은 저녁 밥상을 찾아 제각기 떠나갔다. 남색치마의 아이와 나, 둘만 남게 되었다. 그 아이는 양손으로 까만 고무줄을 돌돌 말고 있었다.
“넌 집에 안 가?”
“어? 어~, 괜찮아. 우린 저녁 늦게 먹어. 넌?”
“바로 요기, 수미의상실 옆방이 우리 집이잖아. 엄마가 부르면 그때 뛰어가도 돼. 근데⋯ 내 이름 어떻게 알았어?”
“어? 어~, 니네 엄마 목소리 엄청 커. 맨날 ‘야! 안초아!’ 이렇게 부르잖아. 히히히!”
“우씨, 창피하게. 근데 너 우리 엄마 흉내 잘 낸다, 히히히.”
“난 하나, 둘, 셋의 세나. 박세나야.”
“진짜로 하나, 둘, 셋의 셋이야? 그럼 네가 세 번째?”
“응. 첫째 언니가 하나, 둘째 언니가 두나, 내가 세나. 딸은 아무렇게나 이름 지어줘도 된다던데? 할머니는 우리 보고 맨날 쓸모없는 기집애들이래. 칫!”
“우씨, 뭐 딸들은 어디 밖에서 주워왔나? 왜들 우리한테 나쁜 말을 하는 걸까?”
“그지? 그거 나쁜 말이지? 할머니가 나쁜 거지? 우하하! 근데 초아야... 진짜 이름이니? 초아가 니 이름이야? 내 이름도 이상한데 니 이름도 디따 이상해.”
“... 그렇지? 이상하지? 아하하! 나도 이상해! 아하하!"
나 홀로 파안대소에 세나는 눈을 껌뻑거렸다. 난 얼른 딴청을 부렸다.
“근데 아까 말야, 너 잘못 말했어. 나, 전 동네에서 대빵 아니었어. 난 그냥”
“내가 뻥쳤어. 상관없어, 걔들 다 니가 어디서 살았는지 몰라. 나도 모르고."
“그래도 거짓말하면”
“거짓말은 개뿔. 아, 괜찮다니까. 그 새끼들은 겁 좀 먹어야 해. 글구 너 싸움 잘할 거 같은데?”
“내, 내가? 내가 싸움을?”
처음 듣는 말이었다. 내가 얌전한 쪽은 절대로 아니지만 그렇다고 싸움꾼이라 할 수도 없었다.
“... 너 싸움 못 하는구나? 괜찮아, 아깐 디지게 멋있었으니까. 우하하!”
세나가 소리 내서 웃었다. 처음 듣는 그 웃음소리가 참말로 좋았다.
“디지게 멋있었어? 진짜 진짜? 파하하!”
우린 치아를 훤히 드러내며 웃어제꼈다. 사방이 시원해졌다. 내 칭구 세나가 데려온 새파란 바람 덕분이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