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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영 Sep 08. 2023

수미의상실

성장소설 <낭만 10세> (5)

    초아는 등교 시간이 참 좋았다. 배고프고 무서운 밤이 수시로 집안을 헤집어놓긴 했지만, 아침이 밝으간밤의 슬픔은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새 출발의 여정이기 때문이었다.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인사하며 나설 수 있는 곳이 있지 않은가! 나를 알아주는 친구들이 있는 곳, 학교가 있었다. 하여, 학교로 향하는 내 발걸음은 날마다 봄날의 소풍길이었다.

    물론 김구단 씨가 ‘담임선생님’이 되면서부터 종종 진흙탕길이 되었고 허허벌판도 되었다. 그렇다고 발걸음을 멈출 순 없었다. 어떻게 해도 담임 선생님의 칭찬을 받긴 글러먹었다면? 굳이 그에게 목 맬 필요가 없었다. 내겐 반 아이들이 있지 않는가? 자영, 명진, 수정, 유리, 상필, 형균, 대수. 일곱 명... 내 편이라 불릴만한 친구들이 너무 적어 보였다. 그렇다면? 응암동! 시장통 아이들?

    내 시선은 자연스럽게 동네 아이들에게 향했다. 때맞춰 따스한 봄볕이 아이들을 집밖으로 불러내주었다. 코 밑에도 옷소매에도 까만 땟자국이 가득한 아이들이 시장통 여기저기를 쏘다니기 시작했다. 어른들은 “얘들아, 저쪽으로 가서 놀아라!” 소리치곤 했지만 그렇다고 아이들을 실제로 딴 곳으로 몰아낸 어른은 없었다.


    수미의상실은 우리 가족에게 방 두 칸을 세 준 주인집이었다. 시장통에서는 제법 큰 가게였다. 흰색 바탕의 간판이 달려 있었는데, 파란색 페인트로 그려진 궁서체의 가게 이름이 인상적이었다. 그 아래에는 유리와 나무틀로 조합된 낡은 미닫이문이 늘 반쯤 열려 있었다. 그 열린 틈에선 주인집 아주머니의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가 새어 나오곤 했다.

    그녀는 나의 모친보다 한 뼘은 더 컸고 몸집은 깡말랐다. 큰 눈과 하이얀 피부, 오똑한 콧날까지, 시장통에서는 볼 수 없는, 아니 사방천지에서 처음 보는 외모였다. 지나치게 고와서 그녀가 길에 나오면 사람들이 다 쳐다볼 정도였다.

    이상한 점은 그녀의 낯빛이 ‘항상 흐림’인 것이었다. 의상실의 운영자이자 아이 셋을 둔 다복한 어머니, 게다가 주인집 아주머니란 타이틀을 쥐고 있는데 뭐가 부족해서 그런 얼굴로 사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분명 그녀는 몸이 크게 아프던지 아니면 가족 중 누군가가 불치병에 걸렸던지 그도 아니면 고아일 거라고 생각했다. 부모를 잃어버리면 어른이라도 얼마든지 그렇게 불쌍한 얼굴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안녕?”

    토요일 오후, 의상실 문턱에 걸터앉은 여자애에게 말을 걸었다.  

    “난 요기로 이사 왔어.”

    아이가 고개를 들어 올리는데 검디 검은 단발머리가 찰랑거렸다. 머리카락에서 촤르르 소리가 나는 것만 같았다. 그 아이네 빨랫비누는 무슨 상표인지 궁금해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주인집은 '샴푸'란 것으로 머릴 감고 살았다.

    그때였다. 아이의 얼굴이 내 코 앞으로 들어왔다.  

    “흐메, 깜짝이야! 뭐, 뭐야? 너 눈이 왜 이래? 왜 이리 커?”

    정말 놀랐다. 사람의 눈동자란 것이 그렇게 클 줄이야! 그런 내 모습이 재미있는지 아이는 살짝 웃었다. 아이의 볼에 보조개가 피어났다. 자기 어머니의 하이얀 피부와는 정반대였다. 까무잡잡하고 동그란 얼굴이었다.

    “아하하! 너도 나랑 같구나? 너도 엄마한테 구박받지? 아빠 닮았다고?”

    나도 모르게 그렇게 말했다. 동족을 만난 것 같았으니까, 너무 반가웠으니까.

    “... 아니. 구박은 안 받아. 그냥... 정수미가 엄마 닮았다고 정수미만 좋아해...”

    조용해졌다. 내가 뭘 잘못했나 싶어서 그 아일 물끄러미 바라봤다.

    “나 너 알아, 옆 방에 사는 안초아.”

    “헉! 너, 너, 내 이름을 알아? 너, 너, 나랑 칭구 먹고 싶구나?”

    얼마나 놀랬는지 나답기 않게 말을 더듬었다. 아이는 피식 웃고 말았다. 아차 싶었다. 내가 좀 들이댄 걸 알아차렸다. 엄마가 오버하지 말랬는데.

    “동네 애들이 니 이름 다 알 걸? 너네 엄마 목청이 엄청나시잖니.”

    “그치, 그치? 아유, 울 엄만 왜 그러니? ‘초아야~’ 그렇게 불러주면 안 돼? 꼭 ‘야! 안초아!’ 그렇게 불러요, 화난 사람처럼 소릴 박박 질러. 너네 엄만 안 그러지?”

    “응, 안 그래. 우리 엄만 정수미만 불러. 나랑 동생 수남이는 잘 안 불러.”

    “진짜? 우하하! 너네 엄마도 이상하다, 울 엄마만 이상한 줄 알았는데”

    “... 그게 웃을 일이니? 엄마들은 원래 이상하지 않니?”     

    “야아~, 아빠들이 더 이상해, 와하하!”

    "초아야, 근데 너만 왜 초아니?"

    수주의 질문에 내 웃음이 멈췄다,

    "봐봐, 너네 오빤 희준, 언니들은 희주, 희수. 희자 돌림이잖아. 넌... 초아? 뭐야, 왜 너만 달라?"

    "어?... 그러네?"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언니들과 오빠는 이름 가운데에 다 '희'가 들어가 있는데 왜 나는 초아?

    "여윽~시! 그래, 맞다니까! 난 말이야, 우하하, 당연히 이름도 다르지!"

     주변을 살피며 수주의 귓가에 속삭였다.

    "이거 너만 알고 있어, 있잖아, 난 초록별에서 왔어. 울 언냐들, 오빠랑은 달라. 내가 초록별에서 온 걸 아는 사람은 아빠밖에 없어. 내 이름이 초아잖아. 초록별에서 온 아이란 뜻이라니까. 수주야, 무슨 말인지 알지?"

    "...... 너 좀 이상해."

    '이 친구도... 초록별 얘기를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후우, 할 수 없지, 내가 이해해야지'


    수주의 본마음과 상관없이 나 홀로 실망했었지만, 동갑내기 친구와의 첫 만남은 갈수록 흥미로웠다. 수주는 보통 아이들과는 다르게 말했다. 간결한데 빠르지는 않게,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면서 말했다. 어른처럼 느껴졌다. 한참 대화하다 보면 내가 열 살 어린이와 말하는 건지 마흔 넘은 어른이랑 말하는 건지 헷갈렸다.

    그런데 그의 말투보다 더 신기한 게 있었다. 수주의 옷차림이었다. 만날 때마다 바뀌었다. 매번 바뀌는데 매번 깔끔했다. 시장통 어디에서도 팔지 않는 옷들이었다.  

    한 번은 수주의 노란색 원피스를 넋 놓고 쳐다봤었다. 개나리꽃이 만개했을 때처럼 곱고 맑은 노랑이었다. 하도 쳐다보니까 수주가 당황스러웠 했다.

    “이, 이상... 하니? 그렇지? 이상하지? 칫, 이래서 내가 엄마 옷 안 입겠다고 했는데. 엄만 꼭 자기가 만든 옷만 입으라네?. 다른 애들처럼 사 입으면 좋겠는데.”


    수주는 의상실 사장님의 둘째 딸이었다. 서민들 사는 형편이 여러모로 소박하고 허술하던 시절이라 옷을 사 입는 것도 수월치 않았지만, 의상실이나 양복점에서 옷을 맞춰 입는다는 건 더더욱 낯설었다. 가난한 집 아이들에겐 지구에서 화성만큼이나 멀게 느껴지는 이야기였다. 나는 평소에 부잣집 아이들을 부러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가 손수 만들어주는 옷을 입는다는 대목에선 눈물 나게 부러웠다.  

   “넌 좋겠다⋯.”

   “뭐? 왜?”

    수주가 진짜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을 무렵, 건조하고 까칠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정수주! 너 누구랑 얘기해? 엄마가 아무 하고나 말하지 말랬지?”

    수주는 자기 뒤에 서 있는 존재를 거칠게 노려보았다.

    “아무 아니야! 내 친구, 초아!”

    나는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큰 두 눈을 빼고는 어디 하나 닮은 구석이 없는 자매였다. 아하, 수주 어머니와 판박이인 큰 딸이었다.

    “난 초아. 넌⋯, 아니, 언니?”

    “언니 맞아. 열두 살, 정수미. 의상실 간판에 써있는 이름, 우리 엄마가 좋아하는 이름.”

    수주는 일사천리로 대답했다. 그 빠르기가 대단했다. 수미 언니는 놀란 기색도 없이 나를 힐끗 쳐다볼 따름이었다.  

    “지금 몇 신데 놀아? 엄마가 얼른 숙제하래!”

    그 한 마디가 전부였다. 수미 언니는 홱 돌아서 의상실 안쪽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꽁무니에 대고 수주가 말했다.

    “야! 정수미! 네 숙제나 신경 써!”


    식겁할 수준이었다. 언니한테 ‘야?’, ‘너?’, 이름까지 막 불러댄다? 우리 집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얼마나 놀랐는지, 쩍 벌어진 내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우린 그냥 이름 불러. 내 동생도 나한테 누나라고 안 해.”

    수주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그런데 묘하게도 난 청량감을 느꼈다. 박하사탕을 처음 맛보았을 때처럼 시원했다.  


    수주와 어울리는 시간이 쌓이면서, 실은 그 친구네 현실이 박하사탕의 맛과는 전혀 다름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우선 수주의 어머니를 보면, 그녀는 늘 서늘한 표정으로 재봉틀 앞에 앉아 일할 뿐, 시장통 어른들과 담소를 나눈다거나 누구와 왕래하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거의  없었다. 그녀가 애지중지 아끼는 첫 딸 수미 역시, 방과 후엔 집에만 틀어박혀 지냈다. 이제 겨우 열두 살 난 아이가 도무지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법이 없었다.

    수주는 그래도 가게 문 앞까진 진출했다. 딱 거기까지 만이었다. 길 건너편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바라만 봤지 다가서진 않았다. 아이들도 수주에게 다가서지 않았다. 아, 수주 옆엔 종종 수남이가 함께 있었다. 두 살 아래 남자 동생인데, 그 아이는 제 나이보다 훨씬 어려 보였다. 말할 때면 그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수남아! 크게, 좀 더 크게 말을 해야 남들이 듣지!” 라며 내가 누나 행세를 하기도 했다.  


    아무튼 수미의상실의 눈이 큰 세 아이는 언제나 깨끗하고 화려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 지나다 보니, 그 옷들 때문에 세 아이가 슬퍼 보였다. 나보다 더 큰 집에 살고 나보다 훨씬 근사한 옷을 입고 나보다 한참 잘 생겼는데, 방에는 흑백텔레비전까지 있는데 대체 왜 슬퍼 보였는지...       

    그러고 보니 수주네 아버지를 본 적이 거의 없었다. 딱 한 번, 짙은 카키빛 군복을 입은 훤칠한 사내가 수주의 어머니를 향해 “애들 잘 봐라. 당신 몸도 잘 챙기고.”라고 말하는 소리를 엿들은 게 전부였다. 수주 말로는 아빠가 군인인데 너무 바빠서 집에 못 온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었고 그 후로는 신경 쓰지 않았다. 실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우리 집이나 옆집이나, 아버지란 존재는 일상적으로는 그다지 관심을 끌만한 존재가 아니었기에...          



                                                                      ____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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