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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영 Sep 06. 2023

시장통 아이가 되다

성장소설 <낭만 10세> (3)


   사십몇 년 전의 응암동 대림시장은, 중앙에 긴 통로를 두고 상가들이 마주하고 늘어선 형상이 지금의 재래시장과 비슷했다. 하지만 가게들 사이의 틈새로 보나 통로의 넓이로 보나 요즘 시장들과는 달리 공간이 꽤 여유로워서 시장통 아이들에겐 최적의 놀이터였다. 중앙 통로 양쪽으로 헐겁게 늘어선 상가의 모습은, 무엇이든 지금보다 덜 풍족하고 덜 붐비고 덜 숨 가쁜 그 시절을 대변하는 듯했다. 

   우리 집은 의상실에 딸린 사글셋방이었다. 건너편에는 대폿집과 닭집이 있었다. 가느다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서로에게 옆집이 되었는데, 두 가게는 늘 내 가슴을 콩콩 뛰게 했다. 재미와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게 해주는 묘한 곳들이었다.


   대폿집은 간판도 없이 그저 유리문에 ‘안주일체’란 페인트 글씨만 적혀있었다. 어른들이 그 집을 왜 ‘대폿집’이라 부르는지 정확한 이유를 알진 못했지만, 가게에 드나드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 나름대로 그 의미를 짐작했었다. 입장할 때는 늘 “어이, 대포 한 잔 하고 가야지!”라고 또렷하게 말하던 아저씨들이 퇴장할 때면 휘청거리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곤 했다. 그것도 모자라 유리창을 깨트리고 의자를 던지고 술 취한 아저씨들끼리 멱살을 잡는 날도 드물지 않았다. 덕분에 대폿집의 상처 투성이 미닫이는 ‘드르륵’ 이 아니라 ‘덜커덩 덜컥’ 하는 거북스러운 소리를 냈고, 금 간 유리 위로는 테이프 조각들이 촘촘하게 붙어있었다. 그래서 나는 ‘대포’라는 말이 ‘사람들을 난폭하게 만들 정도의 많은 술’을 뜻한다고 확신했다. 

    그 난폭함이 정말 싫었다. 와장창 쨍그랑! 요란한 소리 울리고 아저씨들이 뒤엉켜 싸울 때면 내 심장은 조박조박 오그라들었다. 그렇게들 싸우다가 혹시라도 누가 다칠까 봐, 정말로 다칠까 봐 걱정되고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술 취한 아저씨들의 난동이 지나간 다음 날이면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대폿집 동세부터 살폈다. 주인 할머니가 무사한지, 간밤의 참상은 어느 만큼인지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그럴 때면 할머니는 아무렇지도 나를 맞이해 주었다. “안 선생님네 막내 왔구나! 밥은? 배 안 고파?” 

   할머니는 오히려 내 안부를 물어주었다. 그녀의 태연스러운 인사가 좋아서, 배고프냐고 물어봐주는 게 좋아서, 나는 부지런히 대폿집 앞을 서성이곤 했다. 


    대폿집 오른편으로 골목과 맞닿은 닭집은 시장통 안에서 제일 먼저 아침을 열었다. 닭집 아저씨는 내가 등교하기도 전에 비닐 앞치마를 두르고 가게 바닥을 물청소하곤 했다. 그가 부여잡은 호스에서 물줄기가 뿜어져 나올 때면 그 세찬 기운에 시장통의 아침이 후다닥 깨어날 지경이었다. 물론 ‘꼬끼오 꼬꼬!’ 하는 닭들의 소리도 울려 퍼졌지만, 도시의 닭들이라 그런지 아침이고 낮이고 대중없었다. 새벽을 깨우는 첫소리가 되기엔 그들의 일상이 너무 고단했나 보다. 

    닭들은 가게 바닥에서부터 천정까지 빈틈없이 쌓인 닭장 안에 갇혀 지냈다. 그들은 날갯짓 한 번 편히 하기 어려워 보였다. 그저 작은 머리를 들었다 내렸다 하는 게 전부였다. 결코 닭장 밖으로 나오진 못 했다. 딱 한 번, 고객의 선택을 받고 도마 위로 올려질 때를 제외하고는.      


    이사 온 이튿날 아침부터 부리나케 닭집으로 달려갔다. 은회색 함석문에 꽁꽁 가려졌던 가게가 열리는 순간을 목격하고 싶었다.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뭔가를 목격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닭집 아저씨가 함석문짝들을 떼어 담벼락에 차곡차곡 놓을 때면 가게 안이 훤히 드러났다. 나는 가게 우측에 서 있는 전봇대에 기대어 앉아서 아저씨의 날렵한 몸짓을 구경했다. 그는 꼬마 아이가 옆에 있거나 말거나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그저 두꺼운 팔뚝을 휘두르며 바닥 청소에 집중할 따름이었다. 

    바닥 청소를 끝낸 아저씨는 동그랗고 엄청난 게 두꺼운 도마와 복어처럼 생긴 반달 모양의 새까만 칼을 정성스럽게 씻었다. 그리고 이제 꿈에도 엿보지 못했던, 내가 기대한 새로운 뭔가가 그런 종류일 줄은 정말 몰랐던, 살벌한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다. 그 장면은 아저씨가 닭장 문을 열고 닭 한 마리를 꺼내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아니... 그건 꺼내는 게 아니었다, 사납게 낚아채는 것이었다.      

    그의 닭 잡기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닭 한 마리를 도마 위로 턱 올렸다. 얇은 닭목을 획 비틀더니 새까만 칼을 빛의 속도로 닭 목에 스윽 집어넣었다가 뺐다. 그의 손짓이 너무도 유려하고 자연스러워서, 그가 하고 있는 행위가 살생인지 무엇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강제죽임을 당한 닭은 곧바로 둥그런 은색 통 속으로 던져졌다. 내 키보다 훨씬 큰 그 통은 ‘구르르 구르르’ 소리를 내며 뱅뱅 돌았다. 빠르게 회전하던 통이 멈추면 닭은 털이란 털을 다 잃어버린 민몸뚱이 닭이 도마 위로 다시 올려졌다. 맨살의 닭은 무척이나 낯설었다. 난 심장이 조여드는 싸늘함을 느꼈다. 그러나 고개를 돌리지 않고 그 광경을 다 바라봤다. 무서워하면서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닭의 최후를 끝까지 함께 해주고 싶었다.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런데 닭의 목을 찌르는 아저씨의 얼굴은 수십 년 지난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생각과 느낌을 읽어내기 어려운 무색무취의 표정. ‘어떻게 저런 얼굴로 닭을 죽일 수 있지? 오늘만 그런가? 내일은 다를까?’ 하는 생각으로 매일 찾아갔지만 아저씨는 한결같았다. 

    기이한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동네 꼬마가 그렇게 자주 찾아오는데 아저씨는 “저리 가!” 혹은 “왜 자꾸 오니?” 하는 말을 내뱉은 적이 없다. 그의 말소리를 들은 적이 없는데도 나는 그것이 이상하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편안했다. 말없는 이의 마음을 내 편한 대로 해석하는 게 좋았던 건 아닌지...          





_____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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