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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영 Sep 05. 2023

빌어먹을 이삿날, 만세를 외치다

성장소설 <낭만 10세> (2)

    생애 열 번째 봄맞이는 정말 다르길 기도했다. 걸어서 다닐만한 거리에서 등하교를 하고 싶었고, 지난겨울 내내 붙어 지낸 동네 친구들과 봄볕 아래서도 다방구 놀이를 하고 싶었다. 새로 맞닥뜨린 낯선 동네에 껌딱지처럼 달라붙으려 얼마나 애를 썼는데 또?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아버지는 ‘빌어먹을 이삿날’을 홱홱 통보하기 바빴고, 어머니는 계절이 바뀌는 횟수보다 자주 이삿짐을 싸야 했다. 맞다. 어머니는 꼭 ‘빌어먹을 이삿날’이라고 말했다. 교회 다니는 사람은 나쁜 말 하는 거 아니라고 가르친 어머니가 예외적으로 구사한 거친 말들 셋 중 하나였다. 다른 두 가지는 그녀가 자신의 남편을 가리킬 때 쓰는 ‘웬수’, 그 웬수의 막내딸에게 화낼 때 내뱉던 독설이었다. 

    “쟤는 생긴 거나 하는 짓이 꼭 지 애비를 빼닮았어!”      


    가만, 아버지는 어디에 있었지? 분명 그는 신체건강한 남편이요 아버지였다. 그리고 이사의 원인 제공자! 그런데도 이삿날이면 번번이 자취를 감췄다. 그 신통한 능력 덕분에, 그의 외모를 거의 완벽하게 복사한 내가 그를 대신해서 엄마의 욕받이가 되어야 했다. 으레 그럴 줄 알았으면서도 난 엄마 곁을 떠나지 않았다. 갖은 구박에도 그 자리를 지켰다. 그녀의 스트레스를 누군가는 받아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나의 본분이라도 되는 냥.      

    때로는 나 홀로 버려진 듯한 외로움에 눈물짓기도 했지만, 옛날이야기 속 주인공들이 응원해 주는 덕분에 금방 힘을 낼 수 있었다. 주로 콩쥐랑 신데렐라가 응원군이 되어주었다. 그들과 어떻게 말이 통했는지는 기억나질 않는다. 외모상으론 닮은 구석이 손톱만큼도 없었다. 그런데도 우린 찰떡같이 마음이 맞았고 즐겁게 떠들었다. 나의 자작곡 ‘초아 좋아’도 같이 부르곤 했다.    

    “초아는 특별하니까, 초아는 초록별에서 왔으니까, 초아는 괜찮아, 좋아, 좋아, 초아는 알아, 그래서 괜찮아, 초아는 좋아!”

    나만 그러고 노는 줄 알았다. 나중에 동네 아이들과 얘기해 보니, 다들 다 저마다의 이삿날 사연이 있었고 나 못지않은 현실타파용 혼자놀이가 있었다. 나만이 향유하는 특별함이 아니었던 것이다. 살짝 실망했지만 아이들도 나만큼 사는 게 쉽지 않구나 싶었다. 그들과 내가 뭔가로 연결돼 있는 것 같았다.   

    하긴, 당시에 그런 가정사는 유별난 이야기가 아니었다. 1970년대 중반, 서울은 도시살이가 버거운 서민들로 북적거렸다. 집집마다 가난이 상주하고 불화가 수시로 드나들었다. 가장의 불안정한 직장사로 이사가 잦은 집들은 어디에나 넘쳐났다. 어쩌면 우린, 사는 형편 비슷한 이웃들을 보며 ‘아하? 저 집도?’하는 안도감을 느꼈을 지도.      


   어머니와 삼 남매는 동 트자마자 서둘러 리어카에 매달렸다. 사십여 분을 걸어가야 했다. 집에 있는 방한용품은 총출동시켰다. 다행히 오전 햇살이 인심을 후하게 써줬다. 따스하니, 리어카 밀기 딱 좋은 날이었다.  

    어머니의 애지중지 장남, 안희준이 리어카 운짱으로 데뷔하는 날이기도 했다. 행여나 차가운 날씨에 감기 들면 어쩌나, 어머니는 그저 아들 뒤꽁무니를 살펴댔다. 어미의 넘치는 애정에 부응하려 열여덟 살 아들은 혼신의 힘을 다했다. 덕분에 어머니는 천덕꾸러기 막내를 째려볼 틈도 없었다. 내겐 기분 째지게 좋은 이삿길이었다. 

    작은언니 희수는 책받침 크기만 한 빨간색 가방만 메고 걸었다. 그걸로도 모자라 나중엔 아예 리어카 짐들 위에 걸터앉았다. 어머니와 내가 더 힘을 짜내서 리어카를 밀어야 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희수언니는 원래 몸이 약하니까 내가 보호해 주는 게 마땅하다고 여겼다. 아니, 실은... 그녀한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리어카를 미는 내내 나만의 상상세계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떠나온 초록별을 떠올렸다. 내 진짜 모습이 언제쯤 밝혀질지, 내가 우주에서 온 특별한 존재임을 알았을 때 가족들 반응이 어떨지, 내가 감춰두었던 능력을 언제쯤이면 세상을 위해서 사용하게 될까를 생각하면, 내 주변의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저 나와 내 상상세계만 존재했다. 

    “어머니, 이리로 들어가요?”

    오빠의 목소리가 나를 현실세계로 불러냈다.      


    봄이 올 듯 말듯한 길에서 만난 동네는 응암동. 우리는 응암동 오거리를 지나서 재래시장 초입에 자리한 아주 작은 집으로 들어갔다. 집이라 부르기엔 많이 어설퍼 보였다. 허름한 가게터 같았다. 손바닥만 한 안방 한 칸, 그보다 훨씬 작은 부엌, 그리고 온돌도 안 깔려있어서 술 취해 귀가한 아버지 차지가 될 게 뻔한, 가벼운 문짝 하나만 밀면 바로 바깥 길에 맞닿은 건넌방 한 칸이 전부였다.      

    어머니는 먼지 난다며 문을 활짝 열었다. 아직 떠나지 않은 겨울바람과 함께 밝은 햇살이 그에게 닿았다. 어머니는 잠시 일손을 멈춰 문밖을 바라봤다. 그의 머리를 감싼 파란색 수건에 사르르 빛살가루가 피어났다. 그 반짝임은 엄마의 뺨 위로 내려앉았다. 어? 맞다! 그때 봤었던 김일선 씨, 내 엄마!  

    3년 전, 내 나이 일곱 살 때 우리 가족은 마당 있는 독채집에서 몇 달간 살았었다. 그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는, 넓은 집이었다. 엄마는 마당에 상추씨앗을 심었고 얼마 후엔 연둣빛 상추를 밥상에 올렸다. 그 무렵의 엄마는 나를 보고 웃어주기도 했다. 남편 판박이인 막내딸 초아를 보고 웃던 그의 두 뺨은 반짝반짝... 반짝거렸었다. 그 엄마가 되살아 왔나 싶었다.     

    “야! 안! 초! 아! 또 멍하게 있는 거야?” 

    어째 평화가 길게 간다 싶었다. 황홀한 회상에 빠져있을 신세가 아니었다. 

    “또또 무슨 공상을 하고 있어? 빨리 정리 안 해!”

    역시, 내 어머니는 그대로였다. 기억 속 일선 씨는 없었다. 일그러진 미간과 사나운 목소리로 나를 후드려패는 김일선 여사만이 현존할 따름이었다.

    그렇다고 겁먹을 내가 아니었다. 늘 그랬듯이 “오케이~.” 라고 대답할 따름이었다. 부모 입장에서야 한 번 말하면 새끼들이 곧바로 응답해 주길 바라겠지만, 어린 자녀들이 어디 그런가? 버틸 때까지 버티다가 잔소리나 꿀밤 정도를 받고 나서야 몸을 움직이기 마련이다. 나 역시 그런 습성에 젖은 탓에 더욱더 어머니의 부아를 돋우곤 했다. ‘설마 내 엄마가 나를 잡아먹기라도 하겠어?’ 하는 일종의 신뢰가 내 안에 자리해 있었나 보다.


    주섬주섬 물건을 집어올리는 시늉을 했다. 그때였다. 뭔가 내 손끝에서 버석거렸다.  ‘어?’ 태극기였다. 얇은 나무대에 돌돌 말린 종이태극기 하나. 그제야 알아차렸다. ‘세상에, 오늘이 그날이었는데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벌떡 일어났다. 두 눈을 부릅뜨고 외쳤다. 

    “대한독립만세! 대한독립만세! 대한독립만세!” 

    만세삼창 소리가 너무나 급작스러웠는지, 어머니는 놀라서 뒤로 자빠질 것만 같은 얼굴이 되었다. 

    “엄마! 우리, 태극기도 못 달았어. 오늘 삼일절인데 이러면 안 돼잖, 학!”

    무언가가 내 뒤통수를 강타했다. 머리가 띵-했지만 그리 큰 통증은 아니었다.  

    “쟤는 하는 짓이나 생긴 거나 꼭 지 애빌 닮아서는, 깜짝 놀랐잖아!” 

    어머니의 핀잔은 언제 들어도 날카로웠다. 허구한 날 듣는 말인데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굳이 기분 상할 필요는 없었다. 그보다는 어머니의 손에 들린 물건이 무엇인지 재빨리 확인해야 했다. 얇은 책 한 권이었다. 안도의 한숨이 터졌다. 어쩐지 덜 아프다 싶었다. 만일 그녀 가까이에 플라스틱 바가지나 빨래 방망이가 있었더라면? 생각만 해도 뒤통수가 저려올 노릇이었다. 

    나는 슬슬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더 큰 물건이 날아들기 전에 짐정리에 뛰어들어야 함을 알아차렸다. 다만 초아송을 웅얼거리는 것만은 포기하지 않았다. 

    “초아는 특별하니까, 초아는 초록별에서 왔으니까, 초아는 괜찮아, 좋아, 좋아, 초아는 알아, 그래서 괜찮아, 초아는 좋아!”      


    언제 끝나나 싶던 짐정리는 삼일절이 다 넘어가기 전에 끝났다. 그건 순전히, 아르바이트 현장에서 돌아온 큰언니 덕분이었다. 더할 나위 없이 바지런하고 영특한 희주언니. 그녀가 왜 그렇게 열심히 집안일을 돕는지 또 왜 그렇게 잘 해내는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난 그저, 어머니가 ‘정리 끝!’이라 외치며 만세 동작을 해서 감사할 따름이었다. 


                                                                                                  ___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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