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한 편에 꿈틀 -탁구꿈틀이
3월, 봄이 되고 난 아주 오래전부터 마음에 꿈틀 하던 것을 실행에 옮겼다.
내가 좋아하는 예능에서 아주 예전부터 종종 탁구 치는 장면이 나오곤 했었다. 대부분 칠 줄 아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탁탁 테이블과 채를 맞고 튕길 때의 그 소리도 묘하게 좋았다
호기심으로만 언젠가 한 번 해보면 좋겠다는 게 생각으로만 있었는데 이번엔 진짜 해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새롭게 이사 간 동네에서 네이버지도를 열어 탁구장을 검색했다. 너무 낙후되지 않은 시설이었으면 좋겠고, 레슨비가 비싸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2가지 조건만 있었다. 그 외는 탁구라는 세계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으니까
그렇게 집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탁구장에 쉬는 날 무작정 찾아갔다
평일 1시쯤이었는데, 탁구장에 사람들로 가득한 걸 보고 신기했었다.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쭈뼛거리고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앞에 있는 어떤 분이 묻는다.
“어떻게 오셨어요?”
"탁구 배워보고 싶어서요"
그렇게 관장님을 만나게 된다
탁구를 해 본 적이 있는지. 레슨을 어떤 요일에 받을 수 있는지 간단하게 물어보고 생각보다 손쉽게 등록을 했다. 월회비 6만 원, 레슨비 한 달에 매주 2회 20분씩 10만 원. 생각보다 저렴했다. 탁구채는 꼭 있어야 한다고 해서 쿠팡에서 2만 원짜리로 주문했다
레슨 첫날, 탁구는 복장이 중요한 걸 몰랐다
집 앞 골목에 배드민턴 치러 가듯이 운동복 바지에 통이 넓은 반팔을 입고 갔는데, 아직 추웠던 3월임에도 불구하고 탁구장 안은 열기로 가득했고, 바지는 내 다리를 무겁게 하고 넓은 팔은 자세를 잡기에 매우 불편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20분이라는 레슨시간은 굉장히 긴 시간이다. 고강도에 쉴 새 없이 움직이다 보면 다리가 저절로 풀리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강렬한 첫 레슨을 마치고 나서 든 생각은 ‘힘든데, 재밌다. 정말 너무 재밌다!’
공이 제대로 맞진 않아도 이 공간에 내가 있는 게 좋았다. 탁구장 가득 울리는 신발과 바닥이 만들어내는 마찰음, 제각각의 박자로 뛰는 경쾌한 공 튕기는 소리, 후덥지근한 공기 모든 게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운동복과 탁구화에 무지했던 그날의 나
그 길로 주말에 나는 남편을 끌고 운동복과 탁구화를 사러 갔다
-매장에서 구매한 깔끔한 내 첫 탁구화
그 이후로도 난 주 2회씩 꾸준히 탁구장을 다니고 있다. 동네 탁구장이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관장님도, 탁구장에서 열심히 운동하시는 분들도 제법 연세가 있으시다
40대도 거의 없고, 50대 -80대 정도 보이는 분들이 대부분인데, 내가 레슨 열심히 받고 있는 모습을 보고 지나가시면서 칭찬 한 마디씩을 꼭 해주신다
"젊은 사람이 어떻게 탁구 배울 생각을 했어"
"내 딸도 이렇게 같이 다니면서 배우면 얼마나 좋아"
"젊어서 조금만 하면 금방 잘할 거라고, 일찍 시작하길 너무 잘했다" 라며 나의 용기를 북돋아 주신다
어느 곳에서 내가 이렇게 황송한 대접을 받을 수 있을까
거기에 다행히도 회차를 거듭할수록 내 실력이 나날이 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탁구가 자존감도 올려주고 성취감도 키워주는 운동이라니. 운동 한 번 제대로 골랐다
물론 같이 운동하시는 어르신들보다도 체력이 안 따라주고 가끔 풀리는 내 다리가 야속할 뿐이다
다들 매일 몇 시간씩 쉬지도 않고 하시는 건지 정말 대단하다. 그 순간에는 오히려 내가 제일 고령자가 된 기분이라 더 의지를 불태운다
어느덧 7개월 차, 지금까지 배운 기술은 포핸드, 백핸드, 서브, 커트서브, 커트, 커트 풀기, 스매싱.
여전히 탁구 규칙은 잘 모르지만 꽤 많은 기술을 배웠고 이제는 처음보다 공이 잘 칠 수 있게 됐으며 아주 가끔 내 공을 관장님이 못 받으실 때 짜릿하기도 하다. 승부에는 크게 관심이 없어서 랠리만 계속했으면 좋겠지만 사람이 붐비는 탁구장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한결 가벼워진 복장
-손때 묻은 내 2만 원짜리 라켓
랠리를 하고 싶을 땐 종종 남편과 무인 탁구장을 찾는다. 시간만큼 결제하면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있으니 값은 좀 나가도 마음이 편해서 좋다.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분야라 시작 전까지 ‘할 수 있을까?’ , 사실 등록하고 나서도 첫 레슨을 가기 전까지는 ‘역시 괜히 했나’라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런 우려가 무색할 만큼 그 과정과 현재까지의 결과가 꽤나 만족스럽다. 시도도 안 해봤다면 여느 날처럼 티비를 보며 ’ 나도 언제 한 번 해보고 싶은데 ‘라고 되뇌거나 하지 않을 막연함에 묻혔을게 뻔하다.
역시 꿈틀 해보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