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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끼리 Nov 03. 2024

누구나 한 번쯤 시련을 겪는다_2 (삶의 의미)

한 번의 절망이 지나고 잠시 평온한 생활을 이어 갔지만 그저 흘러가는 하루 말고 나를 찾기로 한, 두 번째 시련이자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때는, 올해 2월

키우던 고양이가 하루사이에 기력도 없고 밥도 잘 안 먹어서 왜 그런가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평소에도 워낙 식탐이 없고 많이 안 먹는 편이라 하루 지나면 괜찮아지려나 하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동물병원을 데려간 그날부터 모든 게 달라졌다


매달 병원에서 심장사상충약도 바르러 다니고 건강검진도 지속해 와서 활력이 떨어진 게 아닌가 정도로 봤었는데, 긴급상황으로 바뀌며 동네 병원에서 시내에 큰 2차 병원으로 입원까지 하게 되었다


신장에 결석이 생기면서 수신증이라는 병명으로 당장 수술까지 하게 된 상황


2월 5일 저녁 입원

2월 6일 다행히 내가 휴무일이라 병원에 들러 면회도 하고, 수술을 결정하게 된다


2월 6일 수술

2월 7일 상태가 개선되지 않아 바로 재수술

이때부터 휴무일 빼고는 거의 연차를 매일 썼다


활력은 점점 괜찮아졌고, 병원에서도 곧 퇴원 준비를 하면 될 것 같다고 했다. 퇴원하고 한 동안은 케어가 필요해서 난 퇴사를 서두르며 퇴원할 날만을 기다렸다.


여느 때처럼 면회 다녀오고 집에 돌아와 잘 준비를 하는 2월 14일 자정, 병원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설마 하는 마음에 받은 전화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심폐소생술 중이라 빨리 병원으로 오라고.


그렇게 도착한 병원에서는 심폐소생술을 30분 넘게 하고 있었고, 그렇게 허무하게 작별 인사를 했다


원인은 모른다

원인을 분석하려면 또 개복을 해서 한다고 하는데 그렇게 까지 하고 싶지가 않았다. 깨끗이 닦여서 나온 우리 고양이는 언제 아팠냐는 듯 평온하게 누워 있었다. 심폐소생술로 눈도 못 감고, 배에 수술자국과 그대로 만져지는 몸속 기계가 한없이 무거워 보였을 뿐. 왜 너에게, 우리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건지. 내가 조금만 더 일찍 퇴원시켰다면, 수술을 하지 않았더라면, 뭔가 아픈 신호를 더 빨리 알아챘더라면, 수많은 만약과 자책에 휘감겼다


그렇게 병원에서 한참을 울다 집으로 돌아와

마지막으로 집 앞을 한 바퀴 돌고, 집 안에서도 좋아하던 공간 곳곳을 보여주고 안아주고 하루를 보냈다


동트기 전 새벽녘에 김포에 있는 화장터에서 정말로 작별을 고했다


정확한 나이도 모르는 3-4살경에 유기묘를 입양해서 고작 4년 너무 짧게 살다 간 우리 고양이

여전히 나의 프로필 사진, 닉네임은 너로 가득하다


네가 우리 집에 첫 발을 내딛던 순간

마치 여기 살 걸 알았던 것처럼 유유자적 돌아다니기도 했고, 첫날부터 침대 한가운데에 앉아 그루밍하던 모습. 바로 무릎에 누워 평온하게 바라보던 너의 눈 모든 게 선명하다


항상 나와 붙어서 쉬어야만 했던 너

얼굴은 너무나 잘 떠오르지만 이제 널 만져줄 수 없는 게 가장 속상하고 서글픈 일이다.



그로부터 2주 동안 우리 집은 암흑이었다. 남편과 나 둘 다 일을 쉬었고 종종 숨 죽여 울기도 했다

퇴원을 준비하던 무렵에는 이사도 예정되어 있어서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지금도 잘 기억이 안 난다.


달이 바뀔 때쯤에서야 세상밖으로 다시 나왔고,

이제부터라도 하루의 소중함을 더 깨닫고 의미 없는 하루로만 보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 후회뿐인 건 너무 슬프잖아. 좋아하는 것만 해도 시간이 너무 짧다"


"그 좋아하는 게 뭔지 모르지만 이제부터라도 하나씩 해보자"


마음 한편에 꿈틀 하는 그런 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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