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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에 미친놈이다

범죄만 아니면 뭐든 미치면 좋다.

by 이준성공
솔직히 게임에 미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이 자리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일하고 있는 회사는 게임 회사이고

게임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애시당초 지금의 회사를 동경하고 바라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저 리니지라는 게임이 너무 좋아서 지금의 회사를 다니고 있는 것처럼

게임에 내 인생이 전부였고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즐겁고 재밌는 시간

혹은 순간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 0.1초에 망설임도 없이 게임을 하는 시간 혹은 순간"이라고 말하고 싶다.


운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되기 전부터 게임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동네 문방구에 가면은 작은 게임기가 있었는데

30원을 넣으면 너구리와 너클조 같은 게임을 플레이 할 수 있었다.


그때 물가가 쭈쭈바라는 아이스크림이 50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게임이 그렇게 저렴하진 않았던 것 같다.


동네에 오락실들이 많았는데 지금의 PC방 같은 장소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게임을 너무 좋아해서 오락실이 오픈하기 전에

셔터가 닫힌 오락실 앞에서 기다리는게

주말 동안 나의 일이었다.


얼마나 게임을 좋아하고 사랑하면

그 누구도 나한테 일찍 일어나라고 강요한 적도 없고 시킨 적도 없는데

오락실 오픈 시간 전에 셔터 앞에서 죽치고 기다리는게 내 즐거움이었다.


그만큼 게임을 좋아했고 그 설레임으로 하루하루 즐겁게 살았던 것 같다

오락실을 얼마나 좋아했냐 하면

학교에 다녀오고 나머지 모든 시간은 면목동에 있는

우주오락실에서 시간을 보냈던 거 같다.

오락실마다 할 수 있는 게임이 다르다 보니

오락실을 바꿔 가면서 원정을 다니기도 했다.

사가정에 있는 오락실에가 보기도 하고

상봉에 있는 오락실에가 보기도 하고

초등학교 1 2학년 시절이었기 때문에 내가 갈 수 있는 구역이

면목동 사가정 상봉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락실에 가면은 내가 플레이할 수 있는 돈은 한정적이었다.

아버지께 하루에 용돈을 얼마 받았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데

내 기억으로는 500원에서 1,000원을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이것도 매일 받았던게 아니라

아버지가 택시 운전을 하시다 보니까

매일매일 현금이 들어왔고

그 현금 중에 일부를 어머니한테 드리고

나와 내 동생에게 천원짜리 지폐를 주시거나

운전하시면서 받은 동전들을 우리에게 주셨던 기억이 난다.


그 돈을 가지고 오락실에 가서 오락기 앞에 앉는 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설레이고 행복했던 순간이다.

예전에는 실내에서 흡연도 하고 지금은 볼 수 없지만

동네 불량한 청소년들이 대부분 오락실에 모여서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체어샷과 욕설이 난무하는 잠재적 범죄소굴이었던 것이다.


나는 모범생도 아니었고 그냥 지금으로 따지면

활발한 덕후 예를 들면 히키코모리 같은 경우에는 방구석에 처박혀서 덕질을 하는 사람이라면

나는 MBTI가 E라서 밖에 나 돌면서 덕질하는 인간이었다.


오락실에서 가장 많이 했던 게임은 서유항마록이라는 게임이었다.

서유항마록 / 출처 : 나무위키

영어로 차이나게이트였는데 그 당시에는 이런 단어를 잘 몰라서

그냥 우리는 서유기라고 불렀다.

이 게임에는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이렇게 세 명의 캐릭터가 나오는데

보스들이 귀신이었다.

이게 너무 재밌어서 동전을 쌓아 놓고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다음으로 많이 했던 게임이 더블 드래곤이라는 게임이었다.

더블 드래곤의 스토리는 주인공 빌리와 지미라는 두 형제가

여자친구인 마리를 구출하는 게임인데(왜 형제가 한 여자를 좋아하는 거지...?)


빌리는 노랑머리고 지미는 빨간 머리였던 걸로 기억한다.

2인용 게임이었는데 음파라고 하는 기술을 쓰는데

지금 리그 오브 레전드에 리신이 사용하는 Q 스킬이 아니라

팔꿈치를 이용해서 상대방을 공격하는 기술을 사용할 때

나오는 효과음이 음파라는 발음과 비슷해서 우리는 이것을 음파라고 불렀다.


더블 드래곤을 잘 하면 원코인으로 엔딩을 볼 수도 있는데

오락실에 수지 타산이 떨어지는 작품 중에

가장 유명한 게임이 던전앤드래곤스라는 게임과 바로 더블 드래곤이었다.

던전앤드래곤스

아마 오락실 사장님들은 드래곤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게임들을 극혐하지 않았을까?

원코인으로 죽 때리고 가성비 떨어지는 재능있는 아이들은

사장님이 돈 주고 내쫒기도 했다고...


오락실 사장님들이 가장 좋아하는 게임은

경쟁과 승부가 난무하는 그리고 단시간에 돈을 소비하게 되는 격겜이 아니었을까?

예를 들면 스트리트파이터 시리즈나 용호의권, 아랑전설

이후에 3D 게임으로 발전한 버추어 파이터나 철권 같은 게임 말이다.

스트리트파이터2

언제부터인가 오락실에서 할 수 있는 게임을

집에서도 플레이 할 수 있게 되면서

오락실이라는 우리가 사랑하고 좋아했던

추억의 장소들은 조금씩 사라져갔다.


간혹 어머니 말을 듣지 않거나 사고를 치면

어머니는 나를 팬티만 입혀 놓고 집 밖으로 쫓아내셨다.

나는 부끄러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은 엄청 치욕스러운 상황인데

팬티만 입고 쫓겨나는 경우에는 집 앞에 있고

옷을 입고 쫓겨나는 경우에는 오락실로 향했다.


오락실을 가서 어머니한테 혼났는데 또 오락실로 도망가는 미친놈이었다.

그만큼 오락실을 사랑하고 게임에 미친놈이었다.


물론 이후에 컴퓨터에 미쳐서

세진 컴퓨터랜드라는 컴퓨터 유통과 제조를 하는 회사가

매장을 오픈하는 곳마다 쫓아다닌 그런 놈이었기 때문에

하나의 꽂히면 그냥 다른 거는 눈에 뵈지도 않고 한 곳만 판다.


국민학교 시절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그냥 오락실에 미친놈이었다.

만약 누군가 나와 오락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면

2박 3일 밤을 새서라도 이야기할 수 있는 소재들이 무궁무진하지 않을까?

그만큼 나는 게임에 미친놈이라는 뜻이다.


내가 몇 달을 졸라서 삼성 겜보이를 샀는데

그때 충격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팩이라고 불리우는 카트리지를 게임기에 꼽아서 하는 게임기였는데

오락실에서 할 수 있는 게임을 집에서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완전히 빠져들었다.


주변에 게임기를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 얼마 없었기 때문에

나의 인기는 대단했다.

집에 비디오플레이어도 없는데 게임기부터 산 것을 보면

우리 부모님이 선견지명이 있으신 것 같기도 하고

내가 갖고 싶은 것은 절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쟁취하는 그런 집요함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결국 어린시절 부터 게임을 향한 집착 혹은 집요함이

지금 내가 엔씨소프트라는 게임회사에 입사하게 된 원동력 된 것이 아니었을까?

리니지에 미친 사람의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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