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면, 사랑한다거나 미안하다는 말
어릴 땐, 엄마 속상하라고 종종 밥을 굶었다.
엄마와 다투고 나면 방문을 쿵 닫고 들어가서 화났으니까 밥 안 먹어, 하고 보이지 않는 시위를 했다. 그래 봤자 배가 고픈 건 나 인데도 엄마는 자식이 배곯는 것을 못 견뎌했다. 아무리 속이 상하고 화가 났어도 밥때가 되면 거르지 않고 밥을 차려 나를 불렀다. 차려주지 않아도 먹을 수 있을 만큼 컸지만 그래도 굳이 밥통에 있던 따뜻한 밥을 정확하게 내가 먹을 만큼 그릇에 퍼 두고 냉장고 속의 반찬을 꺼내어 뚜껑을 열고 식은 국을 데워서, 따뜻할 때 먹어, 했다.
져주고 싶은 날에는 목소리를 살살 구슬려서, 그러지 말고 밥 먹어, 삐졌어? 하고.
속이 상한 날에는 차갑고 단호하게, 밥 먹어. 하고.
사춘기의 반항아는 울퉁불퉁한 마음으로 책상 두 번째 서랍 안쪽에 엄마 몰래 식량 창고를 만들었다. 엄마랑 싸우고 나면 오기를 부리며 굶어야 하니까. 결국은 엄마가 차려준 밥을 먹지 않고 내가 이겼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초코바나 라면 따위를 서랍에 숨겨두곤 했다. 엄마는 내가 굶었다고 생각할 테니까 걱정을 하겠지. 엄마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그래서 결국 져 줄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도 엄마가 내게 와서 배고프지 않냐고 달래는 말이 듣고 싶었다. 그러니까, 그것도 사랑한다는 말 같아서. 아니면 미안하다는 말이거나.
언제나 나의 감정을 이해받고 싶었다. 세상에 이유 없는 감정은 없다고 하니까. 그것이 비록 올바른 표현이 아닐 수는 있어도 이유는 있었다. 나는 갈등이 생기면 그 이유를 조곤조곤 설명하지 못하고, 말할 기회를 줘도 그냥 눈물만 뚝뚝 흘리며 우는 아이였다. 어쩌면 다 커서 부릴 수 없는 응석을 그런 식으로 부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다 그렇게 살았어. 다들 그러니까 그런가 보다 했지.
옛날이야기를 꺼내면, 엄마는 늘 그래야 하는 줄 알고 살았다고 했다.
그 시절의 다른 엄마들처럼, 자식과 남편이 손과 발이 없는 것도 아닌데 밥을 안 차려주면 굶게 될 것 마냥, 우리 집 애들은/남편은 안 차려주면 안 먹어. 하면서 매끼 밥을 차렸다. 그 밥을 차리러 그들끼리 수다를 떨다가도 자리를 박차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쩌다 짧은 여행이라도 갈라 치면 며칠 치의 반찬과 요리를 챙겨두느라 바빴다. 나는 그 수혜를 입는 것이 어떨 땐 당연하고 어떨 땐 감사하면서도 어떨 땐 못마땅했다.
엄마는 잠깐 외출이라도 할라치면 내게 남은 식구들의 밥을 차려주면 안 되겠느냐고 부탁했고, 나는 얼굴이 굳어 조건 반사처럼 싫은 소리를 냈다. 당연하게도 시킨 일을 하지 않았지만 억울했다. 딸이라고 밥을 차려야 한다는 법이 어디 있어? 그거 차별이야, 도끼눈을 뜨고 바락바락 따지면 엄마는 말을 바꿨다. 네가 누나잖아. 엄마 봐서 한 번만 해줘. 아무도 그래야 한다고 하지 않는데도, 엄마는 자신이 책임을 소홀히 한 기분이 되는지 꼭 그런 부탁을 했다. 겨우 한 살 어린 남동생은 나보다 밥을 더 잘했고, 부친도 내게 무엇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부탁을 듣고 행하지 않은 것에 대한 불편한 마음은 내 몫이 되었다. 동생은 늘 뭔가를 행하면 칭찬을 받았고. 그런데도 이게 뭔가 잘못되지 않은 건가.
화가 났을 때엔 엄마가 굳이 밥을 먹으라고 챙겨주는 것이 좋았으면서, 밥 차리기에 절절매는 엄마를 보는 것은 싫었다. 엄마가 그렇게까지 희생을 하니까, 내게 희생을 (아주 조금이라도) 강요하는 것을 거부할 정당성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네가 싫으면 엄마가 다 할게, 하는 사람이니까 나의 엄마는. 그걸 그냥 지켜보게 되는 것이 너무 괴로웠다. 집안일은 늘 내가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 된다.
내가 가부장제와 그 불합리성에 대해 설파할 때마다 엄마는 나의 분노를 애써 자제시키거나 모르는 척했다. 애정 하는 사람을 위해 불합리에 항의하고 싶어도 정작 당사자인 엄마는 원래 그렇게 살아온 세상을 어쩌겠느냐고 했다. 그보다는 내가 이 구역의 미친년이 될까 봐, 엄마는 늘 가부장제의 화신 같은 부친과 과격한 급진주의자 딸 사이에서 전전긍긍했다. 양쪽에게 참으라고 말하면서. 엄마는 나 때문에 늘 가슴이 두근두근하다고 했다. 나는 잘못하지 않은 것 같은데, 왜 엄마는 나 때문에 마음이 아프지. 잘못된 건 가부장제인데 왜 우리는 그 탓을 할 수 없나. 나는 정말 이 가정의 문제의 근원인가? 엄마는 싸우는 것보다 포기가 안전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매번 마음이 엉망진창이 되었다. 사랑하는 엄마가 늪에 빠지는 것을 속절없이 바라보는 느낌. 나는 K-장녀로서 엄마의 마음에 너무 깊이 몰입했던 걸까.
전업 주부인 엄마의 외출은 헬스장, 약수터, 시장뿐이었다. 자주 만나는 친구도 없고 혼자서 카페에 가서 커피 한 잔 사 마실 줄도 몰랐다. 엄마는 언제나 강아지처럼 집에 있거나 산책을 하고 금세 집으로 돌아왔다. 술을 마신 적도 일탈을 한 적도 없었다. 그녀의 이름에는 '순'자가 들어가는데, 그래서 성격이 순한가 했다는 말이 너무 듣기 싫었다. 엄마가 순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억울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아니, 적어도 부당함을 이야기하는 내 말을 부정하지만은 않았으면 좋겠어. 엄마가 애틋하면 할수록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태도가 서운하게 느껴졌다.
사실, 우리는 싸우고 나면 미안하다는 말을 서로에게 쉽게 하지 못했다.
나의 가족은 내내 고맙다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아 버릇했던 사람들이라, 그 말들이 입에 붙은 적이 없었다. 듣지 않았던 말을 쉽게 내뱉을 수 있을 리 없다. 미안하고 멋쩍은 마음이 생기면 말로 전하지 못하고 주변을 얼쩡거렸다. 밥을 다 먹고 나면 냉장고로 달려가 후식으로 먹는 요구르트 하나를 꺼내어 엄마에게 내밀뿐이다. 그게 내 어줍잖은 사과의 전부였다.
그게 아니면 차를 탔다. 집에 있는 홍삼액이나 유자차, 인삼차 같은 유리병에 담긴 꿀과 설탕에 절여진 끈적한 차를 꺼내어 찻 잔에 두 스푼쯤을 넣고, 전기 주전자로 끓인 뜨거운 물을 부어 티스푼으로 저었다. 말없이 차를 내밀고 뒤돌아 선다. 어떤 말들은 연습하고 뱉어보지 않으면 영영 할 수 없게 된다. 차 속에 담긴 엄마, 미안해. 하는 내 마음이 들렸을까. 우리는 왜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게 되었지.
말할 줄 모르는 우리는 미안하다는 말 대신 밥과 요구르트를 나누어 먹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줄 줄 알았지. 그런데, 더 많이 직접 말했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색하고 멋쩍어도, 미안하고,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내 목과 혀와 입술을 떠나서 상대의 귀에 들리도록. 내가 듣고 싶었던 만큼 엄마도 어쩜 듣고 싶었을지도 모르는 말들이니까. 지금도 나는 사랑한다고 소리 내어 말하는 대신 쑥스러움을 참고 하트가 달린 이모티콘을 보낸다. 사는 동안 엄마가 차려주었던 밥상만큼 더 많이 말해주어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