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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틂씨 Mar 21. 2022

연필을 깎으면 나무 냄새가 난다

그럴 때 어쩐지 엄마 생각이 나고




사각 사각 사각,

연필 끝에서 기다랗고 동그랗게 말린 작은 나무 조각들이 도르르 밀려 나올 때, 옅은 나무 냄새가 난다. 그 냄새를 맡으면 엄마 생각이 난다.




엄마는 연필을 잘 깎는 사람이었다. 아니, 사실 엄마는 손으로 하는 거라면 뭐든 잘했지. 요리, 바느질, 한지 공예, 글씨 쓰기와 연필 깎기까지. 섬세한 사람이니까. 엄마가 얼마나 호기심도 많고 재주도 많은 사람인지를 나는 아주아주 늦게서야 알았다.


어릴 때, 파란색 박공지붕을 얹은 집 모양의 반자동 연필깎이를 갖고 있었다. 지붕의 한쪽 끝을 주욱 힘주어 잡아당기고 철컥, 고정을 시키고 난 다음 열린 지붕의 가운데에 난 작은 구멍에 연필을 넣는다. 그리고 반대편의 손잡이를 빙빙 몇 번 돌리면 끝. 세상 쉽고 간단하지만 나와 동생은 엄마에게 자주 직접 연필을 깎아 달라고 조르곤 했다. 머리를 묶어 달라거나 귀를 파달라는 것처럼 작고 소소한 일들. 어른들에게야 귀찮았을 법한 일들이겠지만, 이상하게도 어린이들에게는 소중하고 따뜻한 기억으로 남는 일들 말이다. 동생은 아주 다 자라고 나서 까지도 오래도록 엄마 무릎에 누워 귀를 내어주는 일을 좋아했다. 나는 머리를 아주 짧게 자른 중학생이 되기 전까지 매일 아침 엄마에게 머리를 맡겼다. 그건 사실 사소해 보일지라도 낯선 타인에게는 절대 맡기지 않는 일들이다. 엄마가 아닌 사람은 그 누구도 내 머리카락에 손 델 수 없고, 동생의 귀를 팔 수도 없었다. 



엄마는 연필깎는 일을 의뢰받으면 차분하게 신문지나 네모난 크리넥스 휴지 따위를 펼쳐두고 대여섯 개의 연필을 한데 모았다. (와중에 동생과 나는 서로 자기거 먼저 깎아달라고 우기는 통에 엄마는 하나씩 번갈아가면서 깎아주었다) 연필 하나를 들고 심 밑에 드러난 나뭇결 조금 아래를 커터칼로 빙 둘러 육각형의 둘레에 얕은 홈을 판다. 커터칼을 대고 그 선을 시작으로 심을 향해 나무를 얇게 깎는다. 사각사각보다 더 나은 표현이 없을까. 심 주변의 나무가 조금씩 깎여 나갈 때면 은은한 나무 냄새가 났다. 그리고 스르륵 하는 나무 깎는 소리. 우리에게 아주 짧고 작은 최초의 공예 시간이 아니었을까. 요즘이었다면 아마도 좋은 ASMR감이었겠지.


미리 그어둔 선을 따라 일정한 높이로 나뭇결을 한 겹 걷어내고 나면, 이제는 반대로 연필 심을 바닥으로 향하게 세운 다음 심을 섬세하고 부드럽게 갈아낸다. 사사사삭 소리와 함께 날리는 흑연 가루를 구경했다. 이 심을 잘 깎아내는 것이 연필 깎기의 묘미인데, 이렇게 손으로 깎으면 기계로 깎는 것보다 조금 더 길고 일정한 두께의 심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쓸데없이 힘을 주거나 떨어뜨리지만 않는 다면 꽤 오래 쓸 수 있도록. 엄마가 깎은 그대로의 나뭇결이 살아있는, 손으로 깎은 연필이 좋았다.


엄마는 연필을 하나하나 깎을 때마다 우리에게 물었다. 이 정도면 돼? 그러면 응! 하고 고개를 끄덕이거나 아니, 쪼금 더 길게! 얇게! 같은 말을 고객처럼 요구한다. 엄마에게 허락을 내어주는 일이 좋았다. 왜냐면 나는 엄마가 늘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거든. 무엇을 원하든 정확히 내가 원하는 만큼, 원하는 형태로 만들어 줄 거라는 걸 알았지. 사랑과 신뢰는 어떤 커다란 선물 같은 것이 아니라 이렇게 작고 소소한 순간들이 쌓여서 만들어지는 거라는 걸, 그때의 어린이도 본능적으로 알았을까. 고학년이 되어 샤프펜슬을 쓰기 전까지는 자주 엄마가 깎아주는 연필을 들고 학교에 가서 친구들에게 자랑하곤 했다. 

우리 엄마는 뭐든 다 잘하지만, 연필도 예쁘게 잘 깎는다!






그동안 연필 쓸 일이 없었는데, 요즘 가끔 연필을 쓴다. 책에 밑줄을 치거나 메모를 적어두려고. 책은 내게 너무 소중한 것이라 대게 끝까지 펼치지도 않은 채로 곱게 보고 다시 꽂아두는 존재였는데, 영어책을 읽으면서 모르는 게 너무 많다 보니 밑줄을 긋거나 글씨를 적기 시작했다. 그래도 여전히 펜으로 무엇을 영원하게 박제하는 일은 할 수 없어서 연필을 쓴다. 흐릿하고 작게, 그리고 언젠가 필요 없어지거나 어쩐지 부끄럽게 느껴지는 날이 오면 지울 수 있도록. 가끔 쓰는 연필은 딱 하나뿐이라 심이 닳고 나면 엄마가 했던 것처럼 커터 칼로 연필을 직접 깎는다. 


연필 하나마저도 비뚜름해지는 게 싫어서 미리 실금을 그어 두고 그 선에 맞춰 연필을 깎아주던 엄마. 그러고 보면 엄마는 머리도 꼼꼼히 매일 다른 머리끈으로 다양한 형태로 묶어 주고, 도시락도 늘 다른 반찬으로 색색깔로 싸주는 사람이었지. 그런 사람의 자식으로 태어난 내가 좀 더 멋대로 살지 못한 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다. 보고 자란 세상이 전부 너무너무 단정했으니까. 자주 단정하기밖에 하지 못하는 내가 좀 답답했는데, 어쩔 수 없는 일이었구나 싶다.  




어떤 기억은 이상하리만치 선명하다. 이를테면 그 장면만큼은 영상으로라도 구현할 수 있을 정도로. 일곱 살쯤 된 아이와 엄마가 해가 진 저녁에 베란다 옆 거실 바닥에 주저앉은 모습. 옅은 노오란색이 섞인 촌스러운 에메랄드 빛 리놀륨 장판 위 신문지에 스르륵 깎이고 있는 어떤 연필과 나무 조각들, 흩어지는 흑연 가루, 그리고 나무 냄새. BGM은 아이유가 불렀던 어떤 오래된 노래들 중 하나인 것으로 하자. 가끔 열린 베란다 창문으로 느슨한 바람이 불어오던 어느 여름밤, 그렇게 평화롭고 행복할 수 없었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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