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경력 1545일째
우리가 살던 켄터키 주는 12월 말에 한파가 들이닥쳤다. 5년 반을 지내는 동안 겪어본 적 없는 한파로 눈이 무시무시하게 쌓였단다. 우리는 그 한파를 겪기 전에 따뜻한 플로리다로 이사했다. 지난겨울, 남편은 5년 반의 긴 공부를 마치고 드디어 졸업했다. 졸업을 앞두고 남편은 한국과 미국 가리지 않고 자신의 가진 재주와 우리 가족 상황에 맞는 곳을 여럿 지원했다. 이서와 나는 한국에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며 기도했지만 남편이 가장 원한 것은 진솔한 담임 목회자, 그리고 일이 너무 바쁘지 않은 곳이었다. 그래야 가족과 시간도 보낼 수 있고 햇병아리인 자신이 혼자 좀 더 공부할 시간을 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첫 전임 사역지로 플로리다에 오게 됐다. 일련의 일들을 겪으며 많은 관계가 떨어져 나갔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우리를 찾아주고 아쉬워하는 이들이 많이 있었다. 익숙하고 가까운 이들과 부지런히 만나 시간과 마음을 나누느라 바쁜 연말을 보냈고 성탄절 내내 짐을 싸고 하루 뒤에 집을 비웠다. 많은 사람들이 와서 함께 짐도 날라주고 마지막 식사를 함께했다. 다시 돌아와 또 도움을 받아 집을 청소하고 집 앞에서 사진을 남겼다. 우리 가족은 덤덤하게 사진도 찍고 사람들과 헤어졌고 남편은 짐을 실은 유홀 트럭을 몰고 나는 아이들을 우리 차에 태우고 이사를 도와주기로 한 친구의 집으로 향했다.
밖은 컴컴하고 남편의 트럭을 뒤따라 운전하는데 뒷자리에 앉은 이서가 "우리 집을 떠나서 아쉬워요. 집이 슬플 것 같아요. 우리가 제일 좋은 친구인데 이제 없으니까."라고 했다. 이서는 그동안 좋아하던 사람들과 헤어지고 그들이 울 때 애써 웃으며 장난치고 자리를 피하곤 했다. 이서의 친구들이 이제 이서랑 못 논다고 아쉬워서 울어도 이서는 한 번도 울지 않았다. 종종 이사 가기 싫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새로운 곳에 가면 이서가 좋아하는 수영도 실컷 하고 바다에도 놀러 갈 거고 무엇보다 엘사 집에 가볼 수 있다고 했더니 그럼 괜찮다며 얼른 눈 감고 코를 골며 자곤 했다. 그런 이서가 처음으로 자기 마음을 제대로 표현한 거였다. 나는 이서의 말에 못 참고 울어버렸다. 한 달 남짓 거의 매일 사람들을 만나며 헤어지는 게 아쉬워 눈물짓는 사람들 앞에서도 눈물 한 방울 안 났는데 한 번 시작되니 그간 눈물이 쌓였는지 자꾸만 흘렀다. 사람들과 헤어지는 것, 익숙한 거리를 떠나는 것, 많은 것이 후련하면서도 서운했지만 우리의 집을 떠난다는 것이 빈 둥지를 남기는 것 같아 마음이 저몄다.
이 집은 우리 부부에게 진짜 첫 집은 아니다. 한국에서 잠시 살았던 신혼집도 있었고 미국에 건너와 남편이 다니는 학교에서 기숙사를 구하지 못해 옆 학교의 기숙사 작은 집에서 잠시 살기도 했다. 이 집은 우리 부부에게 세 번째 집이지만 우리 네 식구가 살았던 첫 집이다. 우리 이서와 이한이가 나고 이만큼 많이 자란 우리 가족의 첫 집이다. 남편과 나 둘이 살 때 우리는 분명 연결돼 있지만 가족이라 소개하기에는 비어있는 것 같았다. 아이들이 태어나고야 정말 우리를 '가족'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 미국에 와서 임신 중에는 0순위라던 기숙사도 한 번도 못 들어가고 가난한 중에 남편이 고민하며 매일 새벽까지 집을 구했는데 우연히 참 감사하게 만난 좋은 집이었다. 울고 웃고 슬프고 행복했던 모든 기억이 있는 4년 반을 보냈다. 그동안 우리 형편에 알맞고 따뜻한 집이 되어줘서 고맙다. 수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이곳에서 우리는 많은 고비를 넘고 수없이 많은 싸움과 눈물을 딛고 진짜 가족이 됐다.
한국을 떠나 미국에 처음 와서 외롭고 낯설어서 모든 공간이 서늘하게 느껴지는 시기가 있었다. 늘 적응이 느린 내가 어렵게 적응한 이곳을 떠나 새로운 곳에 가면 또 그런 느낌일까 가끔은 겁나기도 했다. 하지만 타국에서, 또 사역자의 아내로 살며 외로운 것은 평생의 일로 여기기로 했다. 무엇보다 우리의 첫 집에서 힘겹게 묶은 우리 가족의 끈끈한 띠를 믿으며 용기를 내기로 했다. 멀리 떠나와 보고픈 이들도 있고 우리를 그리워해주는 사람들도 있지만 모두가 오래 슬퍼하지 않고 얼른 적응해서 각자의 삶을 잘 살아가자고 했다. 새로 온 곳도 아직 집을 구하지 못해 교회의 숙소에서 지낸다. 하지만 차가 한 대라 남편이 출근하면 아이들과 집에서 지내는데 집이 넓어 아이들이 질리지 않고 뛰어놀았고 이사 왔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이서도 나도 힘겨운 시간이 있었지만 또 시간이 지나며 나아지고 있다. 그 사이 이서는 마음을 더 풍성히 표현하게 됐고 이한이의 새로운 단어들을 척척 알아들어 주며 진짜 멋진 누나가 되고 있다. 이한이는 말이 엄청 늘면서 이전에 떼쓰던 것이 많이 나아졌고 누나를 졸졸 쫓아다니며 누나가 하는 말을 그대로 메아리친다. 남편은 새로운 곳에서 바삐 적응하며 힘들어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좋은 분들과 함께 일하게 되어 기쁘다. 나는 할머니가 되면 하와이에서 아이스크림 팔며 동화를 쓸 거라고 말하곤 했는데 야자수가 가로수인 곳에 살게 되어 지금을 잘 누리기로 했다. 작은 것 하나도 사기 망설이고 넉넉하지 않지만 그래도 잘 적응하고 있다. 앞으로 이서와 이한이가 엄마 아빠를 따라, 또 자신의 인생을 따라 얼마나 많은 집을 떠나고 사람들과 이별할지 모른다. 익숙한 곳을 떠나고 정든 이들과 헤어지는 건 어른인 우리에게도 너무나 힘들다. 하지만 그때마다 우리 가족이 함께 있는 곳은 어디든 우리 집이다. 우리 가족 새로운 곳에서 또 많은 어려움과 웃긴 일들이 있겠지. 이서 말대로, 우리 다 같이 안고 파이팅! 힘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