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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월모일 Oct 23. 2021

떠나야지만 알 수 있는 것들

아직 한 번도 떠나보지 않은 당신에게


“취미가 뭐예요?” 


이 질문, 살면서 참 많이 받지 않아요? 학창 시절만 생각해도 매년 새 학기면 종이에 취미, 특기, 장래희망 적어서 내곤 했었잖아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저는 세 단어 하나를 돌아가면서 적었던 것 같아요. 독서 / 영화감상 / 음악 감상. 실제로 세 가지를 좋아한 건 맞아요. (심지어 저는 영화과로 진학을 했을 정도로요!) 근데 성인이 되고 나서,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에 취직했을 때에도 취미를 말할 때 참 어렵더라고요. 딱히 즐기는 스포츠가 있는 것도 아니고, 콕 집어서 잘하는 무언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콕 집어서 말할만한 취미가 없는 것뿐인데 꼭 제 자신이 특색 없는 사람이 된 것처럼 특별한 취미 하나 없는 게 좀 아쉽긴 했어요. 


사실 한 가지 고백하자면 제가 겪은 실패가 있는데요, 그게 저를 참 힘들게 했어요. 그때 아마 제가 아무 일 없이 평범하게 일을 하고 있었거나, 무언갈 준비하고 있었다면 언니가 제게 굴업도 사진을 보내 줬을 때 선뜻 대답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우선순위를 중요시하는 저에게 있어서 여행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면 말이죠. 근데 그때의 저는 무작정 떠나고 싶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언니에게 고민도 하지 않고 굴업도에 가자고 대답할 수 있었고 그게 시작이었어요. 이제 보니까 고마운 실패같이 느껴지네요.


저는 체력도 사실 별로예요. 근력도 약하고. 그런데 또 하필 맥시멀 리스트라 배낭도 항상 무거워요. 15킬로 이하로 떨어진 적이 정말 세 손가락에 꼽을 정도랄까? 제일 심했을 때는 22킬로까지 매 봤어요 심지어 저는 겁쟁이라서 항상 같이 산을 올라가는 언니랑 남자 친구한테 얼마나 찡찡거리는지 몰라요. “힘들어 쉬었다 가자, 멧돼지 나오면 어떻게 하지? 언제 정상 도착하지?” 등산도 힘든데 정상에서 딱딱한 바닥에서 춥게 자면 다음날 얼마나 몸이 쑤시는지 몰라요. 근데 그 몸을 이끌고 또다시 하산해야 하잖아요.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에요. 


그런데 왜 백패킹을 하냐면, 이상하게 참 좋아요. 


만약 당신이 벌레, 불편한 잠자리와 화장실, 씻지 못하는 찝찝함을 감당하실수 없다면 솔직히 말해 백패킹은 좀 힘드실 수 있어요. 하지만 이 정도쯤은 괜찮다고 말씀해주신다면 저는 “배낭부터 사시죠”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잠깐 일상에서 멀어져 하루를 보내는데 말이죠, 그냥 여행이랑은 좀 다른 것 같아요. 일단 나의 의, 식, 주를 배낭 하나에 다 넣고 온전히 그 하루만큼은 내가 나를 책임져야 하는 거예요. 산에 오르는 동안 하나의 목적만 존재하다 보니 생각보다 잡념이 사라지게 돼요. 상쾌한 공기는 덤이고요! 정상에 도착해서 바라보는 풍경은 몇 분 전까지만 해도 힘들어서 죽을 것 같았던 신체의 피로함을 토닥토닥 달래주는 거 있죠. 멍하니 쳐다보고 있으면 어쩔 때는 순간 겸손해지는 마음이 들어요. 그리고 어김없이 다음을 기약하게 되는 거 있죠.

“취미가 뭐예요?” 


이 질문, 이제는 만나는 사람마다 제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이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거든요. “아~ 저 취미는 백패킹이에요. 배낭 하나면 충분한 여행을 즐기고 있습니다.” 저는 백패킹 하나 시작했을 뿐인데 제가 바다보다 산을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고, 제가 생각보다 자연을 많이 좋아하는 걸 느꼈어요. 저도 몰랐던 제 자신의 숨겨진 부분을 스스로 보게 되었어요. 산에 더 잘 오르고 싶은 마음으로 운동을 시작했고, 백패킹을 통해 위로받고 누군가를 위로하고 싶어 졌어요. 


대단한 걸 하지 않아도 충분할 수 있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더라고요. 따뜻한 라면과 커피 한잔이 그렇게 맛있고, 가끔 마시는 맥주 한 캔과 막걸리 한 모금은 예술이고요. 나도 모르게 올라가기 전의 마음과 내려오고 난 후의 마음이 나뉠 거예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한 번 떠나보는 거 어때요? 아마 당신도 좋아할 거 같아요. 분명 그럴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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