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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일 Jan 17. 2024

혼란과 위기의 터닝 포인트

K팝에서 배우는 인생

2023년 K팝 음반 수출액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연간 누적 음반 판매량이 1억 장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입대한 방탄소년단(BTS)의 공백기라는 우려를 씻고 남녀 그룹 모두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판매량은 세븐틴, 스트레이 키즈, 투모로우바이투게더, NCT드림, 뉴진스 순으로 나타났다.      


시장 변화가 눈길을 끈다. 중국, 동남아 등 전통적인 아시아 시장의 수출액이 줄어든 반면, 미국, 독일, 영국 등 시장규모가 큰 북미와 유럽지역의 진출이 눈에 띄게 두드러졌다. 긍정적인 변화이면서 동시에 고민해야 할 과제를 던진다.     



K팝은 위기일까


BTS 이후 K팝의 성장을 이끌던 슈퍼 IP(지적재산권)들의 폭발적 성장세가 주춤하다. 마니아층(팬덤) 위주로 소비하는 음악이라는 인식도 여전하다. K팝에서 'K'가 사라지고 있어 K팝의 경계와 정의가 무엇이냐는 근본적 물음도 제기된다.


음악의 본고장이자 주류 시장인 북미와 유럽으로의 시장 확대는 K팝의 체질 개선이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K 없는 K팝, 한국인 없는 K팝이 나온 배경이기도 하다. 이제 K팝 아이돌은 멤버들의 국적과 언어가 다른 게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 DR뮤직의 블랙스완, JYP의 니쥬와 비춰, 하이브의 캣츠아이 등의 사례처럼 외국인 멤버들이 중심인 초국적 그룹이 즐비하다.  


메이저 엔터사들은 현지 레이블과 손잡고 서구권 공략을 위한 합작 그룹 제작에도 박차를 가한다. 바야흐로 K팝의 글로벌 확장성과 주류 진입여부가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K팝은 충성도가 높은 팬덤이 끌어왔는데, 이런 변화는 보다 광범위하게 본토 시장을 공략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한국 대중음악의 변천과정


여기서 K팝의 역사를 살펴본다. 한국 대중음악의 변천 과정은 크게 3단계로 정리할 수 있다(아래 그림 참고).

 



한국의 전통적인 대중가요 시대를 거쳐, K팝의 원형은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중반에 출현한다. 한국사회의 질적 전환과 함께 음악산업이 재편되면서, 모방단계를 넘어 '자기 음악'을 창출하려는 시도가 다양하게 이뤄지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의 팝 의존에서 벗어나 점차 현대적인 감각 위에 K의 느낌이 담긴 '한국 팝'이 형성되는 시기다.


한국형 아이돌의 태동이라고 할 소방차(1987 데뷔)와 김완선(1986)에 이어 K팝의 출발이자 기준점이라고 할 서태지와 아이들(1992~1996 활동), 최초의 K팝 아이돌인 H.O.T.(1996~2001 활동)를 보면 초기 K팝 역사의 무대가 그려진다.


한국적인 팝이라는 숙성의 단계를 거치며, 2000년대에 들어서면 팝의 보편적인 특징이 K팝에서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2010년대에는 세계적인 주목 속에서 빌보드와 유튜브 음악에 K팝 장르가 신설되는 등 국제적 공인을 받기에 이른다. 싸이의 '강남스타일'(2012)은 K팝 역사상 유튜브 최고 인기곡(50억 뷰 돌파)에 등극하고, BTS는 2020년 'Dynamite'로 빌보드 메인차트인 핫100 1위를 최초이자 유일하게 기록한다.



K팝의 성공 요인


한국 음악산업의 성장은 한국 사회의 변화와 맥을 같이 한다. 음악 자체와 이를 둘러싼 산업과 시장, 전체 사회문화가 맞물려 돌아간다는 의미다. 3가지 차원에서 이를 정리해 본다(아래 그림 참고).


K팝의 원형이 싹튼 1980~90년대 한국사회는 한마디로 격랑의 시대. 국내적으로는 민주화의 진통과 함께 거센 개방과 세계화의 물결이 외부에서 밀어닥친다. 국내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와 정책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만다.      


하지만 1980년대 민주화, 서울올림픽 등을 통해 얻은 정치적 자긍심과 경제 호황은 한국 사회의 내적 역량을 축적하는 계기가 된다. 이른바 '신인류'(X세대)가 소비 주체로 등장하고, 이들의 문화적 포식성은 새로운 문화와 음악을 향한 강렬한 욕망으로 표출된다. 유재하, 신해철, 015B 등 실력 있는 싱어송라이터와 뮤지션들이 대중음악계에 일대 변화의 바람을 일으킨다.      




K팝의 성공 요인을 다양하게 꼽을 수 있는데, 크게 3가지 차원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음악 - 보는 음악과 블랙뮤직의 수용, 아이돌 음악과 다양한 음악 장르의 조화

(2) 산업 – K매니지먼트 시스템 구축, 기술 트렌드(디지털 음원, 유튜브)에 신속한 대응

(3) 사회문화 – 새로운 생산/소비 주체의 등장(X세대), 한국사회의 문화적 역량 표출     



세계 음악 트렌드를 읽고 우리의 길을 찾다


세부적으론 따로 보기로 하고, 여기에선 2가지의 포인트를 살펴보고자 한다.

(1) 먼저 '보는 음악'의 적극적 수용이다. 1980년대 세계 음악계는 MTV 개국(1981년), 마이클 잭슨을 상징으로 한 블랙뮤직 득세, 랩/힙합의 주류 부상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역사적인 격변의 시기다.


패스트 팔로워의 나라인 한국은 세계 음악계의 흐름과 긴밀하게 호흡하며 팝 뮤직 본토의 감각을 흡수해 나간다. SM의 설립자인 이수만은 미국 유학 중 MTV를 접하고 아이돌의 매력을 인식했다고 알려진다. 1990년대 일본의 J팝이 세계적 흐름과 멀어지기 시작한 것도 경종을 울린다. 한국의 아이돌이 일본형에서 미국형으로 방향 전환을 한 계기다. 이렇듯 세계 팝의 감각을 추구한 것은 오늘날 K팝으로 이어지는 결정적인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다.    


(2) 또 한 가지는 기술 변화에 대한 신속한 대응이다. 문화시장의 개방과 함께 음악산업은 혼란과 위기에 직면한다. 음반 중심의 전통적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이제 음악은 디지털 파일(음원)을 통해 손쉽게 스트리밍과 공유가 이뤄지면서 유통문제가 핵심으로 부상한다. 새롭고 혁명적인 상황 앞에 전통적인 음악기업과 산업은 생존의 위기에 빠진다.


IT강국 한국은 디지털 음악시대에 발 빠르게 대응한다. 2005년 출범한 유튜브라는 엔터테인먼트 유통의 공룡 플랫폼에 올라탄 것이다. 세계 음악계에 참신한 매력으로 등장한 K팝은 유튜브를 통해 날개를 달게 된다. 전 세계인이 K팝을 보고 들으면서 커버댄스, 굿즈 등을 통해 특유의 감각과 스타일을 따라하게 된 것이다.



K팝의 성공에서 배우는 인생


K팝의 변천 과정은 외부의 것을 받아들여 진정한 자신을 만들어 가는 성장과 도약을 보여준다. 모방하던 단계에서 자신의 색깔과 목소리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미국과 일본의 영향에서 벗어나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통해 기초를 다지고, 동시에 세계 음악의 흐름을 수용하면서 점차 팝의 보편에 접근하는 것이다. 이는 한국가요 -> 한국 팝 -> K팝의 변화가 잘 설명한다.


한 인간이 성장하는 과정 또한 유사하다. 모방과 학습에서 시작해 점차 세상을 알고 적응해 가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 가는 게 인생 여정이다. 여기엔 나와 외부, 자아와 타자, 자국과 세계 간의 상호작용과 교류, 갈등과 충돌이 있게 마련이다. 혼란과 위기 앞에 사람들은 때로 방황하고 좌절한다. 상처와 인내를 딛고 단단하게 일어서기도 한다.


어떻게 이겨내야 할 것인가. 현재의 자신과 상황을 정확히 읽는 게 중요하다. 이를 통해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결정과 선택을 한다. K팝이 처음에 오늘날의 성공을 예견하고 장담할 수 없었듯이, 무엇이 올 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게 바로 인생이다. 정해지지 않은 '길 위의 인생'이 삶의 본질은 아닐까.      

 


내 인생의 위기와 선택


내 인생을 돌아보니 2번의 혼란기와 터닝 포인트가 떠오른다.

20대, 나는 세상을 몰랐고 뭘 해야 할지 막막했다. 주위에서 진지하게 미래를 조언해 준 사람도 없었다. 그렇게 별생각 없이 들어간 대학에서 현실은 한없이 불안하고 불확실했다. 많은 청춘들처럼 나는 매일 흔들리면서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고민 끝에 내가 선택한 건 공무원 시험이었다. 한 가지 목표를 잡고 내 힘으로 뭔가를 해보고 싶었다. 세상만사 잊고 고시원에 틀어박혀 책을 외웠다. 그렇게 시작한 공무원 생활은 30여 년 평생 직업이 됐다. 평범하고 성실한 편이었던 내게, 공직 생활은 과연 천직이었을까.


30대 후반에 번아웃이 왔다. 다행히 2년 간의 해외 연수를 가게 됐다. 영국 생활은 내게 여행의 즐거움이 뭔지를 선사했다. 영어는 별로였지만 원어민 교정을 거쳐 제출한 에세이가 좋은 평가를 받았을 때는 공부의 진짜 즐거움이 뭔지를 느꼈다.


최고의 인생 여행지인 스코틀랜드 풍경



제2의 선택으로 새로운 인생을


나를 바꾼 건 제2의 선택이다. 40대에 공부를 시작해 6년 만에 영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공무원 생활은 계속했지만, 관심 있는 분야의 논문이나 보고서를 읽으며 야간에는 틈틈이 대학에서 강의를 했다. 하나씩 배우며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고, 남들과 조금씩 나누는 그런 생활이 갈수록 좋아지는 걸 느낀다.        


이제 K컬처를 주제로 브런치에 글을 쓰고, 대학의 강의자료를 준비하며 학생들을 만난다. 나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며 여유를 느끼는 지금, 이 순간의 자유로움이 좋다. 그간 층층시하로 꽉 짜인 조직생활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새삼 돌이켜보게 된다.


뭐가 됐든 잘할 수 있고 즐겁게 할 수 있어야 행복하다.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아나가는 일, K팝이나 우리 인생이나 진정으로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혼란과 위기일수록 우리의 선택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Life is a journey



#보는음악 #블랙뮤직 #유튜브 #K매니지먼트 #X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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