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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환 Aug 27. 2019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에필로그

에필로그


눈 앞에 펼쳐진 풍경에 잠시 넋을 잃었다. 여러 겹으로 레이어드(layered) 된 산등성 사이로 피어오르는 운무. 그리고 바람이 만들어낸 역동적인 풍경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수묵화 삼원법의 정석이 바로 이거야"

나는 지금 해발 1885미터 독일의 알프스 '로트반트'(Rotwand)에 서 있다. 물론, 알프스 등정이 처음은 아니다. 앞선 두번의 등정은 문명의 도움을 받았다. 세 번째 만에 오롯이 나의 두 다리로 정상까지 올라왔다. 하루 반나절에 걸쳐 몇 개의 산등성을 오르고, 내렸을까 비탈진 마지막 난코스를 가까스로 기어 올라 마침내 10평 남짓한 정상을 밟았다. 레이어드 된 것이 눈앞에 펼쳐진 산등성뿐이겠는가 입고 있는 청록색 반소매 티셔츠도 등정의 고락(苦樂)을 고스란히 담아 땀의 레이어드를 만들어냈다.

시원한 산바람을 마주하고 있다.

평소 등산을 즐기는 편은 아니다. 그런데 지금 흐르는 땀이 싫진 않다. 몸 밖으로 흐르는 것은 땀이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를 배출해내는 것 같아 시원함 마저 든다. 잠시 돌바닥에 앉아 시원한 산바람을 마주하고 있다. 시원한 필스너(Pilsner)맥주 생각도 난다. "나 원래 산체질인가?" 혼잣말로 중얼거리면서 사방으로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산 정상(Spitz)의 숫자를 세고 있다. 하나, 둘, 셋... 스물, 스물하나, 스물둘... 숫자 세는 것을 포기한다. 너무 많다. 옆에 있는 안내판의 도움을 받아보자. 알프스 정상들의 이름과 해발고도가 표시되어 있는데 너무 촘촘하게 쓰여 있어서 일일이 세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그나마도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알프스 정보만 기록되어 있다. 동쪽의 슬로베니아와 오스트리아에서 시작해서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 리히텐슈타인을 거쳐 서쪽의 프랑스까지 유럽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산맥, 알프스. 이 많은 알프스의 정상들을 다 올라 본 사람이 있을까? 나는 앞으로 몇 개의 정상을 더 오를 수 있을까?

안 좋은 기억을 오래 붙잡고 있으면 무엇에 쓰겠는가.

분명 산을 오르는 과정은 힘들었다. 흐르는 땀은 자꾸만 시야를 가렸고, 비탈길 위에서는 등산화와 스틱을 준비하지 않은 탓에 미끄러지기 일쑤였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때는 살갗을 파고드는 상처의 고통보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짜증이 나를 짚어 삼켰다. 그러다가 평지에 접어들면 언제 그랬냐는 듯 펼쳐진 풍경과 들판 너머에서 들려오는 워낭 소리에 매료되어 연신 "아! 좋다"를 남발했다. 또다시 오르막길. 내 미간(眉間)은 자동으로 반응한다.

등산이 익숙하지 않은 나에게 온몸으로 전해져오는 통증은 녹록지 않았다. 그럼에도 정상에 올라, 고통을 지나간 것으로 여기고 이처럼 생각의 장(場)을 펼칠 수 있는 내가 대견하다. 눈 앞에 펼쳐진 알프스의 멋진 풍경을 보고 있자니 산을 오르면서 느꼈던 아프고 불쾌했던 기억은 적당히 윤색해서 기억하게 되었다. 망각도 축복이다. 안 좋은 기억을 오래 붙잡고 있으면 무엇에 쓰겠는가. 그래서 되도록 안 좋은 일이라도 좋은 것을 찾아 기억하려고 애쓴다. 지난 7년간 독일에서의 생활 덕분에 생긴 능력이다.


2013년. 나와 아내는 삶의 공간을 옮기기로 하고 한국을 떠나 독일에 왔다. 신생아를 데리고 외국으로 나간다니, 누가 봐도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텐데 나와 아내는 너무 쉽게 그것을 선택했다. 그만큼 공간의 변화가 절실했고, 그 변화가 만든 크고 작은 기적에 감사하며 살아왔다.


베를린의 낯선 환경 덕분에 나는 처음으로 누군가를 서너 걸음 뒤처져서 쫓아가는 사람이 아닌, 있는 모습 그대로의 나를 찾을 수 있었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공부를 시작한 만큼 부담도 컸지만, 오히려 그 부담감에 때문에 중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항상 힘이 되어준 아내와 딸이 있었기에 외롭지 않고 견딜 수 있었다.


통장의 잔고가 제로를 찍은 날도, 작은 기적이 찾아왔다. 그날 이후 나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한국에서의 직업이 방송 제작 PD였던 것이 도움이 되었다. 국내의 모 언론사 베를린지국에서 촬영 기자로 일을 시작했고, 상근직이 아니었기 때문에 학업도 이어갈 수 있었다.

2016년 말. 대한민국 전체를 뒤집어 놓은 '국정농단사건'이 터졌다. 사건의 주범들이 독일을 배경으로 활약(?)한 탓에 나는 우리 근현대사에 가장 큰 사건으로 기록될 사건 한가운데에 서게 되었다. 평소 한반도에 관심 없던 독일의 언론들도 이 사건 만큼은 비중 있게 보도했다. 덕분에 나의 토론식 발표 수업의 내용도 풍성해졌다. 삼성, 엘지 등 IT 강국으로 평가받는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기이한 정치 사건에 유럽 친구들도 흥미를 보였다. 이참에 최!순!실! 이라는 이름을 그들에게 각인시켰다.

폭풍이 지나가고,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다. 그러자 갑작스럽게 한반도에 평화의 순풍이 불어왔다. 연이은 남북정상회담과 사상 처음 열린 북미정상회담까지...한반도의 비핵화와 종전(終戰)이 좀 더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최근의 한반도 상황은 또다시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70년 넘는 세월 동안의 한반도 분단이 어디 쉽게 풀릴 일인가.) 그래서 나는 '한반도 분단이 만든 공간의 이질감'에 대해 논문을 쓰기로 했다. 남북 간, 공간의 이질감을 극복해야 진정한 통일이라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몇 번의 위기가 있었지만 논문은 통과되었고, 졸업을 했다. 처음엔 생각할 수도 없었던 결과를 얻었다. 여기까지가 윤색된 지난 7년간의 기억이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었다.

이제 산에서 내려가야 할 시간이다. 새삼 알프스는 아름답다. 7년 전, 공간의 변화가 없었다면 상상할 수 없는 호사(豪奢)를 누렸다.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알프스의 정상들을 또 오르려면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나는 다시 산을 향하여 눈을 들었다. 산을 오를 때, 고통은 어김없이 따라올 것이다. 그러면 정상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면서 시원하게 땀 한번 흘리면 그만이다. 반드시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까지 상쾌해지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글을 쓰다 보니 산악인이 다 된 것 같다. 그래도 산악인보다는 글 쓰는 사람으로 남고 싶은데... 그 바람을 안고 새로운 등정을 시작해보자.

당신! 그것을 아는가. 알프스에서 가장 높은 정상이 4,810미터, 몽블랑(Mont Blanc)이라는 사실을... 내가 오른 정상은 그것에 절반도 미치지 못한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이제 고작 낮은 산 정상에 올랐다. 저 너머엔 어떤 공간이 존재할까? 몹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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