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종호 Oct 25. 2023

항산 없이는 항심도 없다.

無恒産而有恒心者 惟士爲能 若民 則無恒産 因無恒心 

무항산이유항심자 유사위능 약민 즉무항산 인무항심


-일정한 생업이나 재산이 없어도 마음을 한결같이 유지하는 것은 오직 선비만이 할 수 있습니다. 백성의 경우에는 일정한 생업이나 재산이 없으면 그로 인해 한결같은 마음도 없어집니다. - 양혜왕 장구 상(梁惠王 章句 上)



맹자와 양혜왕은 긴 대화를 이어갑니다. 그들의 대화 속에 우리에게 익숙한 '오십보백보'나 '연목구어'같은 유명한 표현들이 등장하지요. 맹자는 비유의 달인입니다. 촌철살인의 비유 덕에 맹자의 유장한 언변은 설득력을 발휘합니다. 


결론적으로 위나라에서 쓰임을 얻지는 못했지만 맹자에게는 양혜왕에 대한 애정이 있었습니다. 비록 그가 전쟁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어도 그것은 전국시대의 제후라면 누구도 예외일 수 없는 사항이었지요. 새로 주조한 종에 제사를 지낸 후 동물의 피를 바르는 의식을 치르기 위해 끌려가며 두려움에 벌벌 떠는 소를 본 양혜왕은 소를 놓아 주고 대신 양으로 바꾸라고 합니다. 눈 앞에 보이는 대상의 딱한 사정을 외면하지 못하고 측은지심을 일으켜 구제한 것이지요. 맹자의 눈에 그것은 인의 실천이었습니다. 맹자가 인보다 의를 중요시했다고 하지만 맹자의 사단(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 가운데 으뜸은 역시 측은지심입니다. 그가 성선설의 철학자로 평가 받는 근거는 우물에 빠질 뻔한 아이를 구하려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마음에 대해 얘기했기 때문이지만, 맹자가 양혜왕과의 대화를 이어가는 데에는 그의 천성 안에 서 인간에 대한 연민을 발견한 이유가 큽니다. 그것은 곧 민본주의에 근거한 왕도정치의 가능성 인자이기 때문이지요.  


우리 모두에게 측은지심의 대상은 구체성을 띠고 다가옵니다. '내'가 살아가는 현실 안에서 생생하게 감각되는 대상에게조차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에게 사랑과 연민의 대상이 확장될 것을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물론 우리는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 일가친척이나 반려동물 등에 국한하여 발현되는 편협한 집착과 가까운 이들의 고통을 외면하고서라도 공동체를 위한 대의의 길을 선택했던 큰 사랑을 말입니다. 전자에 얽매인 자들은 이익을 위해 서로의 죄를 감싸 주면서도 증명되지 않은 타인의 흠결에 대해서는 날카로운 칼을 들이미는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나라를 위해 눈에 밟히는 식구들을 뒤로 하고 목숨 바쳐 희생한 순국 선열들의 삶을 폄훼하는데 망설임이 없습니다. 이런 자들이 공직을 맡고 있는 나라의 꼴이 정상적이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맹자는 '무항산무항심'이 백성의 본래 성정이라고 말합니다. 백성이란 먹고 사는 일이 힘들어지면 도덕성을 잃기 쉽다는 것입니다. 언뜻 백성을 무시하는 것 같지만 맹자의 말은 백성들에게 '항산'을 제공하지 못하는 임금을 향한 비판입니다. 백성의 안녕을 파괴하는 정치로 인해 죄를 저지른 백성들을 그물질하여 잡는 짓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백성을 그 지경에 이르게 하는 것은 정치의 실패라는 것이지요. 


나랏님을 모시고 사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을 직접 선출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가 올바른 기능을 수행하게 만드는 힘은 국민에게 있습니다. 국민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정치는 필연코 실패하게 됩니다. 국민의 어리석음을 확인한 무능한 리더는 국민을 얏보기 마련입니다. 그런 자가 국민을 위한 정책을 펼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망상에 불과합니다. 국민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패도 정치를 일삼는 리더에 대해 맹자는 "갈아 치울 수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른바 맹자의 혁명론입니다. 지금 이 시대, 우리가 우리 삶과 나라의 당당한 주인이 되기 위해 맹자를 읽어야 하는 까닭입니다. 

이전 02화 혼자 즐기는 자는 리더가 아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