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낭만민네이션 May 15. 2020

그대 늙었을 때

예이츠의 시를 읽으며

그대 늙어 백발이 되어 졸음이 자꾸 오고

벽로 가에서 고개를 끄떡끄떡할 때, 이 책을 꺼내어,


천천히 읽으며 그대 눈이 옛날 지녔던

부드러운 눈동자와 그 깊은 그림자를 꿈꾸어라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대의 즐거운 우아의 순간을 사랑했으며,

또 그대의 미를 참사랑 혹은 거짓사랑으로 사랑했던가를,


그러나 오직 한 사람 그대의 편력하는 영혼을 사랑했고,

그대의 변해가는 얼굴의 슬픔을 사랑했었음을


그리고 달아오르는 쇠살대 곁에 몸을 구부리고서,

좀 슬프게 중얼대어라, 어떻게 사랑이


산 위로 하늘 높이 도망치듯 달아나

그의 얼굴을 무수한 별들 사이에 감추었는가를.


그대 늙었을 때_예이츠




그대 늙었을 때

아름다운 눈망울로 하늘을 우러러 보기를


그대 늙었을 때

깜빡깜빡 졸음 중에서도


언제나 내가 저 바다처럼

깊고 넓은 마음을 가졌더라고 회상하길


사람들은 잊혀지고 자신도 잊혀지는 계절에

누군가의 얼굴이 문득 별처럼 떠올라서


저 산 위에 뿌리운 이슬처럼

반짝거리는 날이 오길


당신의 어두움을 사랑한 사람이 있었고

당신의 실수를 너그러이 받아주는 이가 있었으며


당신이 없는 자리에서

당신을 그리워한 이가 있었다는 것을


언제나 기차가 떠나고 나서

손을 흔들며 배웅하는 우리네 인생처럼


당신의 떠나고 난 자리에서

당신이 입던 코트에서 떨어진 단추를 집어 들어


그 사람이 이 코트를 좋아했었어

그래 맞아! 나에게도 아주 아름다운 사람이 있었지


라고 미소짓는 이가 있음을

그대 늙었을 때 젊음을 기억하듯


그 한사람을 기억하라

그 한 사람이 당신임을 기억하라


아름다운 눈망울로

미래를 응시하던 당신의 눈물을.


당신의 눈물이 얼마나 흐릿한 바다를

얼마나 투명하고 깊게 만들었는지를.


그대 늙어 당신의 뒷모습을

스스로 바라볼 때


아름다운 인생의 길이

당신의 등을 타고 허리를 지나가고


누군가 사랑을 느끼고 있었음을

그게 나였음을 기억하길. 

이전 02화 아내의 마술_심보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