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디자이너로 살아가기
# 디자이너라면 강박증 편집증 하나쯤은 있어야
디자이너에게 정리벽이나 결벽증(작업적인)이 있다면 하늘이 내려준 선물(?) 같은 것이 아닐까. 디자인 작업은 사방이 정리해야 할 것 투성이다. 작업을 진행하는 와중에 가장 많이 받는 피드백 98%는 좀 더 정리가 필요하다는 사수님의 전갈이다. 군더더기 없는 작업을 위한 끊임없는 정리의 시간. 마치 도를 닦는 승려와 같고 한 땀 한 땀 방직을 하는 장인과도 같다. 설사 모든 것이 끝났다 하더라도 정리는 끝난 것이 아니다.
우선 작업적인 측면이 아니더라도 데이터 자체의 진행과 보존을 위한 파일 정리도 디자인의 큰 일환이다. 막무가내로 작업하고 혼자만 볼 수 있는 파일을 작업하는 사람은 예술가라면 모를까 디자이너는 아니다. 인쇄라면 출력 데이터가 인쇄소로 넘어가야 하고 모바일 웹이라면 개발자에게, 영상이라면 효과 링크가 매끄럽게 호환이 되어 누군가와 작업을 같이 해야 한다. 설사 어딘가로 보내지는 작업이 아니더라도 데이터 정리를 해야 파일 자체의 무게를 줄여 효율적이게 사용할 수 있고 본인 스스로도 정리된 레이어에서 작업을 정돈되게 진행할 수 있는 것이다. 이미지 시안이 완료되었다 한들 아직 데이터 정리의 시간이 남아있다. 때때로 그 시간은 작업 시간보다도 절대 시간을 요구하기도 한다. 인고의 시간.. 하지만 집착적으로 정리벽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시간들이 얼마나 희열감이 있을까..? 마치 미친 듯이 청소를 좋아하는 이가 늘 정리해야 할 공간을 발견하는 마음처럼.
흔히들 디자이너들끼리 1픽셀을 고려한다는 말(정말 디자인 잘하는 사람은 픽셀 단위로 조정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왜냐하면 무능한 이들이 이쪽으로 한 칸만 저쪽으로 한 칸만 하면서 디자이너를 마우스로 조정하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모든 상황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없는 말은 아니다.) 이 자조적인 이야기는 우숩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작업에서 그 오차 범위로 인해 피곤해지는 일이 보통이 아니다. 정리한다는 것은 정말 말 그대로 이러한 오차범위들을 완전히 픽스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보이는 이미지를 정리하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 사실 정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한 3번 들으면 이 작업을 그냥 던져버리고 싶어 진다. 이미지를 정리한다... 위치, 크기, 도형, 형태, 레이아웃, 서체, 행간, 자간 고려야 할 정리의 대상은 넘쳐흐르고 설사 정리의 대상이 점과 글자 하나일지라도 정리의 시간이 절대 적게 소요되는 것은 아니다. 잘 보여야 할 것을 잘 보이게 잘 보일 필요가 없지만 꼭 들어가야 하는 것들을 적절하게, 효율적이게, 컨셉에 맞추어... 물론 답은 없다. 정리라는 것은 방을 그대로 두고 물건 가지들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때때로는 방의 모양까지 전부 바꿔가면서 새롭게 정리하는 것이다. (으악..!)
이미지 정리 데이터 정리도 끝났다면, 폴더 정리가 필요하다. 너무나도 뻔하지만 뻔하게도 중요하다. 디자이너 입장이 아니라도 직장인들에게 돌아다니는 짤 중에 최종 최종 2 최최종과 같은 다양한 방식의 도미노 같은 폴더명을 흔히 보았을 것이다. 그저 웃어 넘기기에는 지나치게 현실적이고 비극적인 일이 아닌가... 드라마 미생에서 장그래가 회사에 처음 들어가 하던 폴더 정리는 사실 앞으로 해야 할 모든 일들의 기초이며 한번 잘 길들여 놓으면 아주 이상적인 습관이다. 귀찮다고 생각하는 순간 어느 날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를 느끼게 될 것이다...
때때로 마구 정리하고 싶다가도 게으르다. 무엇이든 꾸준히 그 순간순간 정성을 다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