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명품 포장 아르바이트
친구들은 퇴사한 내가 부럽다고, 자신은 용기가 없다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반대로 나는 친구들이 가진 용기가 없었다.
일을 그만두고 연기를 업으로 삼고 싶다며 매일 같이 죽상이던 친구는 얼마 전 대출을 받아 방 두 개, 화장실 두 개짜리 반전세집을 마련했다. 나는 안락한 미래를 위해 회사에 장기간 묶일 수밖에 없는 선택을 한 친구의 용기가 전혀 없었다.
또 다른 친구가 내게 말했다. 너 참 생각보다 오래 버틴다고. 모아둔 돈이 이미 대부분 소진됐을게 뻔한데 이 악물고 재취업하지 않고 아르바이트만으로 버티고 있는 내가 용하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 못 버틸 것도 없더라고.
대충 대답하자 친구가 조심스레 물었다. 전남친이 떠오르는, 한두 번 들어본 적 있는 질문이었다.
- 사람들 만나기 안 창피해?
친구는 허슬러(사전적 정의: 치열하게 일하고 기회를 스스로 만드는 사람)였다. 다른 말로 갓생러. 그가 얼마나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열정적으로 살고 있는 지를 알기에 나는 그의 의문과 논리와 생각들이 이해가 갔다. 하지만 내 대답을 듣고 싶지도, 믿고 싶지도 않은 것 같았기에 나는 굳이 그에게 나를 이해시키지는 않았다. 열심히 사는 게 옮을라, 대답하지 않고 슬쩍 자리를 피할 뿐이었다.
마치 대표1, 2처럼, '시간은 빠듯하고 돈은 풍족한 삶'을 영위하는 친구들이 반대로 '시간이 풍족하고 돈이 빠듯한 내 삶'을 이해 못 하는 것은 당연했다. 이처럼 [적게 일하고 적게 버는 30대 아르바이트생]의 삶에 절대 만족할 수 없는 유형이 있는 반면, 외려 성향에 꼭 맞아 그 생활을 유유자적 오랫동안 누려갈 수 있는 사람도 있다. 큰 용기 없이도 이 생활을 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오래 버틸 수 있고, 이 생활이 창피할 이유를 모르겠는 사람들.
우선 성향적으로는 성취목표가 크지 않은 사람이 있겠다. 이들은 대표1, 대표2와 같은 갓생러들에게 쉬이 물들지 않는다. 닳고 닳은 성인이면서도 갓 스무 살이 할법한 비정규직 혹은 단기알바에 만족하며, 친구들이 모두 집을 사고 아이를 낳는 시점에서 시간당 만원 언저리의 수입이 충분하다 여긴다.
혹은 꿈꾸는 미래가 따로 있어, 이를 준비하기 위한 예열 과정이 필요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렇게 큰 수입보단 내 시간을 마련하는 게 더 가치 있는 사람이 아무래도 프리터족으로서 지속 가능성도, 만족감도 클 확률이 높다.
이 밖에 자율성이 높은 사람, 불안정성에 스트레스 저항력이 높은 사람, 도전력과 탐험력이 많은 사람이 프리터족으로 버티기에 유리하다. 그리고 그 외에도 여러 요소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했을 때 프리터족에겐 중요 포인트가 있다. 네 개가 없는 사람이 프리터족에 적합하다.
1. 목돈 들어갈 일이 없다
2. 주변 인맥이 거의 없다
3. 물욕이 크게 없다
4. 보살필 생명이 없다
1. 목돈 들어갈 일이 없다
다시 말하지만, 어엿하게 독립한 친구들마냥 내 집이라도 사기 위해 대출을 받았다면 퇴사는 엄두도 못 냈을 거다. 이에 더해 최소한 부모님의 노후준비와 병원비까지, 보험 등으로 걱정 없는 상태여야 마음을 놓고 프리터족으로 살 수 있다.
2. 주변 인맥이 많지 않다
슬프지만 기쁘게도, 내향형 인간은 외식비 및 취미생활비가 나갈 일이 거의 없다. 배달음식을 지르고 싶은 충동만 어느 정도 다스리면 된다. 그리고 내향인은 지인을 자주 만나지 않기에, 평균치에서 벗어난 자신의 삶과 남들의 평균적인 삶을 비교하게 될 일도 현저히 적다.
3. 물욕이 크게 없다
물욕이 없는 사람이 프리터족으로서 사는 데 큰 불만이 없다는 건 너무나 당연한 소리지만, 일단 내 경우를 풀어보자면, 누군가 고가의 물품이나 럭셔리한 휴양지를 뽐내듯 전시해도 크게 부럽지가 않다. 화려한 사람, 혹은 보여지는 화려함을 중요시하는 사람은 내 기준 별로 멋이 없기 때문이다. 누릴 수 없는 사람들의 불필요한 박탈감이 신경 쓰였고, 무엇보다 나는 다른 종류의 허세에 끌렸다. 나는 물욕이 없는 게 멋져 보였다.
나는 미니멀리즘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이 또한 허세인데, 내가 '멋지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깔끔한 인상에 깨끗한 셔츠를 입고, 비누 향이 나고, 책을 많이 읽고,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분하는 사람이었다. 내게는 그렇게 뭔가 많이 '없는' 사람들이 '있어' 보였다. 그리고 이는 다행히도 돈이 없는 프리터족으로서 비교적 손쉽게 도달할 수 있는 추구미였다.
4. 보살필 생명이 없다
자녀는 말할 것도 없고, 반려동물을 키우기엔 프리터족의 지갑은 늘 너무나 얇다. 해를 지날수록, 아깽이에서 노묘가 될수록 동물병원 지출 금액은 몇 십만 원 대에서 몇 백만 원 대로 훌쩍 뛰어 감당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나에게 드는 돈만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펫보험을 알아보고 있다.
그러니까 프리터족이 자유로운 자신의 삶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선, 기본적인 경제적으로 큰 고민이 없어야 하고(1, 4), 스스로 선택한 생활방식에 대해 확신이 있어야 한다(2, 3). 더 간추리자면, 빚 없고, 물욕 없고, 딸린 식구 없는, 내향형 인간 정도일까? 하지만 이 모든 조건이 갖춰져도, 평균에서 벗어난 삶은 쉽지 않다.
그래도 뭐 계속 이렇게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극강의 워라밸을 계속해서 추구하며, 조금 일하고 조금 가져가도 되지 않을까? 쉬는 듯 일하고 사사로운 가치에 여전히 만족할 수 있다면? 우선 저 쪽에서 끊임없이 한숨 쉬며 담배 피우는 두 대표의 생활보다는 만족스럽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서는 자꾸만 걱정이 스멀스멀 일었다. 후회하면 어쩌지. 추후에 소위 저런 '갓생러'들과 물질적인 격차가 현저히 벌어졌을 때, 그때에도 이 삶의 방식과 신조가 유지될까? 지금의 선택들을 뼈저리게 후회하고 내 처지를 한탄하게 되면 어쩌지.
아무리 은둔하고 있어도 핸드폰만 열면 내 삶의 방식을 의심할 거리가 물밀듯이 쏟아진다. SNS란 없던 욕망까지 이끌어내는 위험한 요소라는 걸 진작부터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팔로워수를 30명 내외로 둬도 변질된 욕망이 내 미니멀 라이프를 자꾸만 방해한다. 나 뭔데, 화려함은 내 기준 별로 멋이 없다며?
그저 욕심만 조금 내려놓고 살면 쉽게 가능한 줄 알았던 30대 프리터족의 삶. 하지만 욕심을 한 번 내려놓는 걸로는 부족했다. 계속해서 나를 시험에 들게 하는 현실적인 문제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쩌면 크게 후회하지 않기 위한 가장 안전한 방법은, 남들이 가장 많이 추구하는, 보편적인 길로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정도를 걷는 이들이 가장 현명한 것이다. 훗날 그 방향이 예상치 못한 곳으로 이끌더라도, 도착지엔 같은 길을 걸어온 동지들이 대부분일 테니 그리 외로울 것도 억울할 것도 없을 테다.
'사람들 만나기 안 창피하냐'라고 물었던 친구를 떠올렸다. 그 친구는 사실, 언제나 나를 당당하고 멋지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솔직한 내 대답을 듣고 싶지도, 믿지도 않을 것 같았다.
사실 가끔, 아주 가끔은 창피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