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명품 포장 아르바이트
며칠 전 대표2가 말했다.
- 대표1은 원래 사람 많이 가려요. 오래 알던 동생들이나 친한 지인들한테도 다 존댓말을 하더라고요. 걘 왜 그러는지. 하물며 알바생이면 절대 말 안 놓을 걸요.
대표2만큼은 아니지만, 근래 어느정도 대표1과도 편해졌다고 느껴진 나는 말했다.
- 대표1님 요즘 저 막 대하시는 게 곧 ‘야, 너’ 하실 것 같던데요?
그러자 대표2는 말도 안 된다는 듯 웃었다.
- 죽어서도 못 볼 걸요.
- 오늘 보니까 하실 것 같던데.
- 왜요? 걔 오늘 기분 안 좋을 텐데.
- 좋아 보이시던데요?
- 그거 가식이에요.
그때 나는 대표2는 왜 대표1이 기분이 안 좋을거라 확신했는지, 늘 대표1의 칭찬만 하던 사람이 왜 가식이라는 부정적 단어를 썼는지 조금 의아했었다.
대표1과 대표2는 고등학교 때부터 친한 친구 사이였다고 한다. (그 때부터 둘 다 명품 옷을 좋아했다고…) 처음에는 약 20년을 함께 보냈다는데 어쩜 저리 안 친해보일까 의아했다. 늘 사무실을 채운 적막과 잔뜩 찌푸린 표정. 굳이 따로, 번갈아가며 가지는 수차례의 담배타임까지. 내가 다녔던 회사에서는 본 적이 없던, 적나라한 못마땅함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동업해지서라니. 가족 같은 사이인 줄 알았는데 한 음절을 뺐어야 했나.
그제야 돌이켜보니 어쩐지 이상하긴 했다. 두 대표는 원래부터 '메신저로 대화하나' 싶을 정도로 업무시간에 말을 나누지 않았지만, 2주전쯤부터는 같은 시간에 사무실에 앉아 있는 모습을 거의 볼 수가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대표1이 항상 틀어놓던 음악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동업해지서를 보고 난 뒤, 부담스럽게 느껴졌던 대표2의 행동이 다르게 해석되기도 했다. 아르바이트생에게 주는 명절 선물이라며 대표2가 기프티콘을 보내왔을 때, 대표1에겐 말하지 말라고 덧붙였던 일이 떠올랐다. 별 거 아닌데 대표끼리 그런 걸 뭘 굳이 비밀로 하나, 사적인 감정이 섞인 선물인가 조금 부담스러웠었는데 그냥 그 때쯤부터 둘이 말을 섞지 않았던 걸까.
안 그래도 대표2와 괜스레 부쩍 어색해 졌는데, 대표들 사이에 균열까지 생기니 그토록 애정했던 포장일도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사무실은 예전보다 정적이 잦아졌고 그 대신 대표2의 잔소리가 늘어났다.
이쯤이면 포장일에 요령이 붙었어 나름 잘해내고 있다 생각했는데, 대표2의 눈에는 여전히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대표2는 언제나처럼 ‘질보단 양’ 식의 포장을 요청했지만, 고가의 물품을 얼마나 대충 해야 할 지, 얼마나 대충 하는 게 맞는 건지 나는 여전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리고 대표2의 주먹구구식 지시에 자꾸만 헛심이 빠졌다. 그쯤되자 나 역시 먼저 웃으며 인사를 건네기가 싫어졌다.
와중에 건강 문제에 차도가 보이기 시작했다. 길고 지난한 과정 끝에 내게 맞는 병원과 내 몸에 맞는 약을 찾은 것이다. 활력이 생기고 생활이 편해지자 소박했던 통장잔액에도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르바이트 시간을 하루 두 시간에서 더 늘려도 되겠구나, 그렇게 해도 내 몸이 버틸 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이 붙었던 것이다. 문득 여행비가 부담돼 미루던 제주 여행을 가고 싶어지기까지 했다. 그러자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아, 이제 아르바이트를 옮길 때가 됐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