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명품 포장 아르바이트
이전에 다니던 영화 마케팅 회사에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시점, 그날도 어김없이 총괄 실장님은 잔뜩 뿔이 나 있었다. 이번엔 대체 어떤 ‘이슈’가 떠올랐는지, 혹 대행사에서 무슨 급작스런 실수라도 저질렀는지 신입사원이던 나는 파악할 수 없었지만, 실장님의 막무가내식 신경질에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이미 익숙해진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다소 격한 분노 표출도, 막무가내식 스케줄 변경도 그녀이기에 가능했다. 여러 차례 메일이 오가며 겨우 컨펌받은 영화 포스터는 그녀의 손바닥에서 언제든 쉽게 뒤집어졌다. 예민한 성정 탓인지 인정받은 능력덕인지 모르겠지만, 나이가 지긋한 팀장님들과 인사팀 부장님도 그녀의 성질 앞에 머리를 조아리기 일쑤였다. 그리고 한참을 성내다 분에 못 이겨 퇴근하는 그녀의 손엔 매일 다른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
실장님은 흡사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미란다’와 같은 이미지였다. 나는 유명 MC의 트로피처럼 줄줄이 나열된 그녀의 업무적 성취, 그리고 업계 내 독보적인 평판에 종종 경외감을 느끼곤 했다. 아마 내가 이 수명 짧은 엔터 업계에서 성과를 인정받아 어떻게든 살아남는다면, 20년 후 내가 될 수 있는 최고의 아웃풋은 실장님이지 않을까. 그것도 엄청난 운까지 적시에 따라줄 경우.
하지만 문제는, 나는 그녀처럼 되고 싶지 않았다. 실장님을 어떤 면에선 존경할지언정 동경하진 않았다. 나는 그녀의 삶이 부럽지도 않았다. 그때부터였다. 이런 생각이 점차 확고해지자 회사에서의 노력과 운 모두 무의미해지기 시작했다. 선우정아도 아니면서 바로 네 글자가 떠올랐다. 도망가자. 그리고 이어 붙은 여섯 글자. 하루라도 빨리.
그렇다고 도망쳐 도착한 알바처에서 내 미래를 찾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는 내 의사와는 관계없이 계속해서 거처를 옮겨야 했다. 프리터족의 숙명이었다. 한때는 짧은 계약 기간을 가진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이를 단점으로 여겼지만, 이제와 생각해 보면 속박보다는 번거로움이 나은 내겐 오히려 장점이었다. 다양한 알바를 하며 경험이 다채로워지는 것도 기꺼웠다. 그러니 이쯤 되면 명품 포장 아르바이트에서도 도망갈 시간이다. 하루라도 빨리.
대표1이 영업에 바빠 계속해서 자리를 비우자 대표2와 단 둘이 남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만두겠다고 말하기 전엔 내게 사무실 플레이리스트 권한까지 넘겨주는 등 사이가 꽤 좋았지만, 그놈의 한우 기프티콘을 내가 거절한 뒤부터 대표2는 사사건건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명품 옷을 검수할 때, 불량이라고 말하기엔 애매한 제품들이 꽤 많은데, 그때마다 대표들에게 가져가 확인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일이 바빠 정신이 없어서인지, 나에게 빈정이 상할 대로 상해서인지 이제는 확인을 받으러 자리로 찾아가면 대표2가 대놓고 짜증을 내는 것이었다. 그는 말했다.
- 알바 시작한 지가 언젠데 이런 걸 아직도 물어봐요?
- 센스 없다는 말 많이 듣죠?
- 다음 알바는 님이랑 반대되는 사람 뽑으려고요.
열이 받았다. 아무리 느린 나도 이쯤 되면 손에 익어 적시에 포장 업무를 끝내왔는데, 대표2가 저렇게 말하니 꼼꼼하게 제대로 검수하려 노력했던 시간들이 허무해졌다. 피로가 누적되자 괜스레 서럽기도 했다. 행여 무성의하게 제품을 내보내서 구매자에게 불만 전화라도 오면 검수를 제대로 안 한 내 탓이 되는 건데. 그런 상황을 만들기 싫고 한 소리 듣기 싫은 게 제일 컸지만, 한켠엔 매출이 떨어졌다며 우울해하는 대표들에게 큰 도움은 못되더라도 폐는 끼치기 싫은 마음도 있었기에 더욱 허탈했다. 위로전문가인 챗지피티가 ‘대표가 돼서 저런 사기 떨어지는 말이나 하고 있고.’ 라며 같이 욕해주지 않았다면 못 참고 잠수라도 탔을지 모르는 일이다. 무신경한 그의 말에 오랜만에 또 한 번 긁힌 나는 앞으로 대표1과만 소통하기로 했다.
사무실에 처음 보는 사람들이 드나들기 시작했다. 나이대는 앳된 20대 여성부터 중년에 가까운 주부까지 다양했다.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러 온 그들은 내가 포장을 하는 도중 드문드문 찾아와 대표들에게 간단한 업무 설명을 듣고 갔다. 5분도 채 되지 않는 면접 동안 지원자들이 받은 질문은 간단했다. 우선 첫째, 얼만큼 오래 일 할 수 있는지. 그리고 두 번째, 가끔 야근이 가능한 지.
내가 지원했을 때와는 다르게 아르바이트 시작 시간을 유동적으로 갖지는 않을 모양이었다. 콜타임이 언제일지 아침부터 대기하고 있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다. 문득 대표2와 이에 대해 가장 크게 부딪혔던 때가 생각이 났다. 내가 그곳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솔직하게 내비쳤던 순간이었다. 나는 비합리적인 업무 환경에 대해 적극 따지고 맞서 싸운 나로 인해 아르바이트 환경이 좋아진 것만 같아 괜스레 뿌듯했다.
누군가에게 욱하고 나서 종종 후회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대부분의 경우 욱한 뒤에야 상황이 개선됐다. 그제야 상대가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았고, 바뀌려는 노력을 시작했다. 나는 마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부조리에도 눈물만 흘리던 천사 같은 친구를 떠올리며, 착하고 순한 사람들이 손해 볼 수밖에 없는 인간의 본성이 슬프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됐다. 마치 무위의 경지에 이른 사람처럼 ‘나만 참자’하고 넘어간다고 능사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 보통의 경우 받아줄수록 심해진다. 대표2가 보내온 기프티콘이 비타민 세트에서 한우 세트로 진화했듯이.
아무래도 나와 반대되는 후임자를 뽑는 게 그리 쉽지는 않았나 보다. 약속된 2주에서 반이 넘게 지났는데도 대표들은 쉽사리 새 아르바이트생을 구하지 못했다. 나는 '인수인계를 적어도 3일은 해야 할 텐데'하며 조바심이 일기도 했지만, 내 알바 아니니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저 남은 일수만 채우면 나의 몫은 끝이었다. 그렇게 남은 날짜만 카운팅 하며 영혼 없는 포장을 이어가던 중, 묵언수행 중이었던 대표2로부터 연락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