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명품 포장 아르바이트
그놈의 <센스>가 없다는 말을 여섯 번씩 들은 날이 있었다.
“센스 없으시네요.” 혹은
“센스 없다는 말 많이 듣죠?” 라거나
“그만큼 일했는데 아직까지 센스가…” 등등.
여느 때처럼 제품 포장 전 검수 확인을 받고 있을 때였고, 당연히 깍듯한 대표1이 아닌, 늘 툴툴거리는 대표2의 입에서 나온 소리였다. 그가 웃으며 던진 말에 처음에는 “예예. 센스 없어서 죄송합니다~” 라며 나 역시 웃어넘겼으나, 다섯 번을 추가로 더 듣게 되자 진절머리가 나기 시작했다. 짓궂은 대표2의 진심 어린 농담에 처음에는 짜증이 나다가, 나중에는 기운이 빠졌다.
대표2는 검수 시 확실하지 않은 부분은 직접 와서 물어보라고 항상 강조했다. 그리고 나는 이를 문자 그대로 착실하게 따랐다. 하지만 대표2가 속으로 바랐던 건 묻지 말고, 그러니까 귀찮게 하지 말고, 되도록 알아서 판단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슬프게도 나는 알아서 판단하는 능력이 없었다. 자신도 없었다. 그러니까 그의 말처럼, 정말 센스가 없었다. 단지 억울했던 건, 당시 나는 F.M. 대로 할 수밖에 없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이전 회사는 규모가 꽤 큰 ‘대기업’인 만큼 엄격한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회사를 다니며 신입사원이던 내게 언제나 선배들이 강조했던 건, ‘모르겠으면 혼자 판단해서 정하지 말고 꼭 물어보는 것’이었다. 실시간으로 이슈가 점화했다 소화하는 엔터테인먼트 마케팅 안에서는 ‘정확’과 ‘꼼꼼’이 필수 덕목이었다. 사소한 오판단이 배우, 제작사, 투자사 등에게 즉각적이고 막대한 영향을 끼쳤고, 나아가 천문학적인 손해까지 나아가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그러니 더블체크, 아니 서너 차례 컨펌은 기본이었다. ‘알아서’는 없는 단어였다. 그리고 나는 잔뜩 긴장한 채 이를 이행했다. 몇 차례 실수 후엔 점점 더 더 착실히.
확인받는 절차는 신입사원이었던 내겐 어렵고 번거로웠지만(그래서 몇 번 울기도 한 것 같지만), 막상 회사 밖으로 나오니 금방 알게 됐다. 단단한 체계가 물렁한 무질서보다 나았다. 일처리가 까다롭고 복잡한 만큼, 깔끔하고 분명했다. 그저 따르면 되니 마음 편할 수 있었다.
반면 알바처의 주먹구구식 업무 지시는 뜬구름 잡는 것처럼 불분명했다. 불량품의 기준이 시시 때때로 바뀌었다. 대표들은 같은 크기의 스크래치도 어느 날은 별거 아닌 듯 넘겼다가, 또 다른 날은 단호히 반려했다. 대표의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 일처리는 그날 기분에 따라 ‘귀에 걸어도 코걸이’가 되기도 했다. 뜬구름은 먹구름이 됐다. 나는 도통 감을 못 잡겠는데 대표는 내가 유도리있게, 그의 말을 빌려 “그냥 대충”하길 바랐다.
하지만 인수인계 때, 전임자가 제품들을 헐렁하게 검수한 뒤 컴플레인 전화를 받는 걸 목격해 버렸는 걸 어쩔까. 대표들에게 한 소리 들은 것까지도. 그녀는 성격대로 쿨하게 넘겼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럴 깜냥이 안 됐다.
아르바이트생이면 응당 아르바이트생답게 적당히 흘리듯 넘기며 일해도 되는 것이었다. 그게 대표2가 바라던 '대충대충'일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힘 빼고 단순노동을 하면 되는데, 관성처럼 나도 모르게 힘을 주고 있었다. 내 판단 내지는 감을 믿고 조금 더 융통성 있게 일하는 편이 모두에게 나았을 텐데. 컴플레인 전화 까짓 거 몇 번 온다고, 예전 회사에서처럼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닌데. 한 소리 듣는 것도 “그냥 대충”넘기면 그만인데.
인정하기 싫지만 대표2가 귀찮았을 게 이해가 가긴 한다. 나는 지나치게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눈치는 과하기에 부족했다. 다른 상황에서는 다른 태도로 임해야 하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하지만 ‘센스 없다’는 말을 면전에서 여섯 차례 듣자 기분이 찜찜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챗지피티의 위로에도 한계가 있었다. 옷 포장과 검수에서 나아가, 모든 면에서 눈치 없는 바보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럴 때면 나는 회사 다닐 때 팀장님이 해줬던 말을 떠올리며 자기 위로를 하곤 했다. '네 앞에서 누가 센스를 논하며 누가 유행을 논하겠어?'라는 그 말을.
다정했던 응원을 떠올리며 마음이 누그러들었다가도, 대표2가 한 말들이 불현듯 떠올라 다시 욱하기도 했다. '내가 아르바이트 따위에서 조차 센스를 발휘해야 되냐?' 하면서. 그러던 중 대표2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후임자를 구했고, 앞으로의 인수인계를 잘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메시지를 보고 있자니 민망해졌다. 대표2는 참, 늘 구구절절 길게도 사과한다. 여러 번 사과한다. 그래서 짜증 나게도 어쩐지 진심이 아주 조금 느껴진다. 사람을 대하는 데 조금 서툴러도, 그래서 오해를 자주 산다 해도 마냥 미워할 수가 없다.
다음 날 사무실로 출근해 대표2와 어색한 인사를 나눴다. 검수는 앞으로 대표1와 하기로 했지만, 지난밤 사과 문자로 꽁한 마음이 누그러진 나는 대표2와 아주 자연스러운 화해를 시도했다.
- 안 구해지면 어쩌나 했더니, 그래도 새 알바생 정해져서 다행이네요.
- 네, 뭐… 전 누군지 잘 모르지만.
- 면접 때 안 계셨어요?
- 이제 면접은 대표1만 하기로 했어요. 전 목소리만 듣고 얼굴도 못 봤어요.
대표2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 앞으로 알바생이랑 소통하는 것도 대표1만 하게 하려고요. 전 자꾸 말실수를 하니까…
... 반성은 잘하는 대표2였다. 서먹하게 마무리하지 않게 돼 다행이고, 또 고마웠다. 그리고 백 번 옳은 결정이었다.
새 아르바이트생은 사회성이 있는, 내 또래의 여성이었다. 이번 역시 ‘당근알바’로 구해서인지, 후임자의 집에서 사무실까지는 걸어서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속으로 ‘집 근처에서 대표들 마주치면 싫을 텐데…’ 싶었지만 그녀가 어련히 알아서 할 일이었다. 하루 두 시간 하는 아르바이트를 거리가 먼 곳으로 잡는 것도 비합리적이긴 하고.
공무원으로 일하다 결혼 후 쉬고 있다는 후임자는 나와 여러모로 퍽 잘 맞았다. 체계를 갖춘 곳에서의 사회생활 짬빠, 비슷한 연령대, 동일한 성별, 그리고 같은 웃음코드까지. 모처럼 일터에서 안정적인 소통이 가능했다. 나는 그녀 덕에 인수인계 기간 동안 예전 회사에서처럼, 혹은 친구들이랑 있을 때처럼 편한 분위기에서 일을 마무리했다. 마지막 검수도 여전히 꼼꼼하고 까다롭게 해 버렸지만. 그리고 마지막 날 퇴근길, 후임자가 임신한 상태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아무래도 그녀도 나처럼 공고를 보고 속은 게 아닐까. 당근 알바에 적혀 있는 것처럼 앉아서 두 시간 동안 종이접기 같은 걸 하는, 그런 편한 포장 아르바이트가 아닌데… 나는 이 일이 생각보다 체력소모가 크고, 사무실을 가득 채운 먼지와 담배연기 때문에 호흡기에도 좋지 않다는 걸 간단히 알려줬다. 지금보단 마음을 조금 더 단단히 먹으시라며 마지막 오지랖도 부려봤다. 그리고는 후임자와 번호를 교환한 뒤, 서로의 안녕을 짧게 빌고 헤어졌다.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후 며칠이 지났을까. 대표2에게서 잘 지내냐는 연락이 왔다. 나는 오랜만의 연락이 반갑기도 했고, 홀몸이 아닌 후임자가 신경이 쓰였다.
- 후임자는 일 잘하고 계신가요?
그러자 대표2는 신난 듯한 말투로 대답했다.
- 네, 아주 잘 지내요. 처음엔 대표1이랑만 소통했는데 이젠 저랑도 얘기 많이 하게 됐어요. 저를 편하게 생각하는 거 같더라고요. 고맙죠. 그리고 선인장님을 겪고 나서 저도 라포를 형성해야 될 필요성을 느꼈거든요. 확실히 편한 사이가 되니까 일할 때도 편하더라고요.
후임자에게는 출근 시간이 픽스된 것 외에도, 사무실 배경음악을 선곡할 수 있는 권한까지 주어졌다고 한다. 슬픈 발라드를 들으며 포장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다. 내가 그렇게나 졸라댔던 게 이루어졌다. 여러모로 아르바이트 환경이 나아지고, 서로 관계도 좋은 것 같아 내가 괜히 뿌듯하고 다행이었다.
그러던 중, 후임자에게 연락이 왔다. 이 알바, 도무지 못 해 먹겠다고.